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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순의 아무르 답사기 35] 하얼빈에서 만저우리까지 940km…중동철도에 실린 제국의 역사와 독립투사들의 발자취

어둠의 하얼빈 중앙역사, 제정러시아의 문화 유산이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하얼빈 중앙역’이다. 황혼이 깃든 북만주의 저녁, 관문에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인파가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다. 마치 우리의 옛 명절 귀향 풍경을 보는 듯하다. ‘하얼빈 중앙역’은 매일매일 이렇듯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 가방과 배낭, 보따리를 꾸려 자신의 꿈과 현실 속으로 들어간다. 인구대국, 먹는 입이 아닌 인력(manpower)으로 전환된 중국의 웅대하면서도 숨 가쁜 삶의 현장을 목격한다.

개찰을 끝낸 하얼빈역 2층 대합실에는 중국인들의 시끄러운 소음이 압축된 황량한 혼돈 속에 열차를 기다리는 질서가 혼재하고 있다. 이 많은 인구가 먹고 자고 입고 움직이는 데 드는 비용은 어느 정도일까? 이 많은 유동인구를 질서 있고 쾌적하게 관리해야 하는 중국 당국의 어려움을 알 만도 하다.

인구는 식구(부담)가 아니라 자원이다. 바로 중국의 힘이다.

인구는 식구(부담)가 아니라 자원이다. 중국의 힘

여행에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인 스마트폰의 배터리를 충전하러 공공 충전기 앞으로 가본다. 10여 개의 충전기 앞에는 콘센트를 선점한 동작 빠른 중국인들이 이미 두 줄, 세 줄로 기다리고 있다. 생존경쟁의 치열한 현장이다. 중국의 현대화는 16억 인구를 모두 스마트폰 고객과 디지털 노마드로 바꾸어 놓았다. 그 기반을 마련한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일찌감치 충전을 포기했다. 대신 충전을 위해 3층의 한산한 맥도날드 매장으로 들어갔다. 맥도날드의 햄버거 가격은 중국인들에게는 비싼 편이다. 가격 때문인지 젊은 사람들 외에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이곳에도 충전 콘센트는 막혀 있었다. 특별히 종업원에게 부탁하여 직원용 콘센트를 이용해야 했다. 충전 비용을 음식값에 포함한 것이라 생각하니 한산함과 편안함이 공존한다.

양이 넘치면 지식과 문화로 바뀌는 것일까? 중화는 용트림한다.

북만주·내몽골 여행의 장점은 숙박비와 음식값, 택시와 교통비가 저렴하다는 것이다. 성수기를 피하면 하얼빈의 경우 4성급 호텔도 1박에 조식을 포함해 10만원이면 충분하다. 택시 기본요금은 7위안(1,400원 정도), 지하철과 버스 요금은 기본 2위안(400원)에서 시작한다. 고급식당을 제외하면 아침 식사도 20~50위안(4천~1만원)으로 실속 있게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수시로 택시를 불러 타며 1위안(200원)의 팁을 주는 호사를 누렸다. 물론 지역별 격차는 크다. 상하이와 베이징에서는 서울 못지않게 비싸다.

북만주 교통의 허브, 하얼빈 기차역

역 안에 걸린 전광판 출발 시간표를 바라본다. 하얼빈에서 지린(吉林), 다롄(大连), 베이징(北京), 만저우리(满洲里), 치치하얼(齐齐哈尔), 자무쓰(佳木斯), 훈춘(珲春), 무단장(목단강), 쑤이펀허(수분하) 방면으로 가는 열차 시간이다.

이 각각의 장소는 우리 독립혁명사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는 역사적 장소들이다. 1920년대 전후 혁명가들은 하얼빈역에서 낯선 중국인, 러시아인과 어울려 일본 관헌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이동해야 했다. 안중근, 김좌진, 이동휘, 김경천, 지청천, 김원봉, 김 알렉산드라, 현계옥 등 수많은 혁명열사의 피와 고난이 묻어 있는 곳이다.

블라디보스토크~하얼빈~만저우리 중동철도 노선. 하얼빈 시립박물관에서

우리의 일정은 하얼빈 중앙역(站)을 출발하여 다칭(대경)~치치하얼~하이라얼~만저우리까지 약 940km의 장정이다. 이곳을 지나는 철도 노선은 빈저우선(하얼빈~만저우리)이라 하며, 100년 전 ‘중동철도(中东铁路·동청철도)’라 부르던 역사적인 루트다. 이 노선은 소련·만주 국경을 넘어 러시아의 치타로 연결되어 시베리아를 횡단한다.

우리는 1년 전 블라디보스토크(해삼위)에서 쑤이펀허를 거쳐 하얼빈으로 들어왔다. 남은 구간의 여정은 하얼빈 중앙역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12시간 이동하여 소련·만주 국경의 만저우리에 도착하는 것이다. 이 구간에는 만저우리까지 국내선 항공편도 운항한다. 그러나 우리는 1900년대 제국의 시대를 상상하며 중동철도 열차에 몸을 싣기로 했다.

밤 8시 25분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인파를 따라 탑승구로 내려왔다. 우리는 다행히도 누워서 갈 수 있는 푹신한 침대칸(연와, 1등석)을 15일 전에 예약할 수 있었다. 4명이 타는 독립 침실로, 상하 침대로 구성되어 있다. 푹신한 침대와 딱딱한 침대, 하단과 상단, 앉아서 가는 좌석과 입석 등 여러 종류의 좌석 형태에 따라 요금이 각각 다르다. 철저한 자본주의식 운영 방식이다. 정치는 공산당 일당독재이나 경제는 시장경제를 허용하는 이중체제이다.

중동철도에 오른다. 19세기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중국인 중년 남성 2명과 같은 침실을 쓰게 됐다. 친구라고 하는 두 사람은 만저우리에 업무상 출장을 가는 듯 휴대폰과 노트북에 푹 빠져 창밖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각자의 침대로 들어가 12시간의 여행 계획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중동철도 열차는 하얼빈을 출발한 직후 바로 쑹화강(松花江)을 건너 북서쪽으로 머리를 튼다. 이어서 끝없는 지평선만이 존재하는 중국에서 가장 큰 평원 ‘동북평원’이 나타난다. 35만 제곱킬로미터(한반도 전체의 1.6배 크기)에 달하는 광활한 대평원이다. 우크라이나와 미시시피의 흑토지대에 버금가는 비옥한 토질을 자랑한다.

고대 역사에서 우리 민족과 관련된 숙신, 읍루, 부여, 고구려 북부와 발해가 위치했던 지역이다. 이것은 ‘하얼빈 시립박물관’의 역사지도에서 우리가 확인했고, 중국 당국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1931년 일본은 이 비옥한 평원에서 식량과 석탄, 철광석을 확보하기 위해 만주사변을 도발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지정학적 중요성을 가진 땅이다.

동북대평원 다칭시, 중화의 꿈

‘동북대평원’의 중간 지역에 다칭(大庆)시가 위치한다. 다칭은 195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주년에 발견된 중국 최대의 유전 지역이다. 중국 석유의 30%를 생산하는 정유·화학 산업지대로 발전하게 된다. 이 석유를 배경으로 중국공산당 내 저우융캉이 주도하는 석유방이 한때 중국 정치를 좌지우지했다. 지리적 특성은 역사 속에서 오랜 시간 훈연하며 작용해 온 지배적 요소였다.

이 지역의 석유를 100년 전 침략자 일본제국이 발견하였다면, 그리고 일본제국이 만주 지역에서 침략의 야욕을 멈췄다면 조선과 만주는 어떻게 되었을까? 서구 열강은 이를 승인했을까? 상상의 나래를 편다. 동북아의 역사는 역경의 길, 식민지배의 연장이라는 길로 퇴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상상하기도 끔찍한 일이다!

이어서 치치하얼(齐齐哈尔)에 도착하면 이 도시가 헤이룽장성의 제2도시임을 알게 된다. 하얼빈이 러시아풍의 국제도시라면 치치하얼은 헤이룽장성의 옛 성도이자 만주족과 몽골족의 도시였다. 기차는 여기서 ‘대흥안령산맥(다싱안링산맥)’을 관통한다. 야간 이동이지만 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대흥안령의 산악 지형이 창밖으로 비쳐 온다. 달빛 속에 우리는 산악을 넘어 대초원지대를 향해 가슴 설레며 달려 나갔다.

대초원지대로 들어서며 지역은 ‘네이멍구(内蒙古)’로 바뀐다. 지리적 특성은 한 지역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사회를 지배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건조한 평원인 이 지역은 유목민인 몽골족이 사는 자치지역으로, 초원에서는 양, 말, 낙타, 소들이 방목되고 있다. 내몽골과 외몽골 초원은 경제적 효용성은 떨어지지만 소련과 중국의 직접적인 대립을 방지하는 일종의 완충지대(Safety Belt)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지역에도 철로 주변을 중심으로 ‘하이라얼(海拉尔)’이라는 도시가 발달해 중국 한족이 대거 이주하며 번창하고 있다. 만주국 당시 하이라얼은 일본군 제23사단이 주둔하며 소련·만주 국경 지역을 경계하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국경까지는 240km나 떨어져 있어 1개 사단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광활한 지역이었다. 여기서 일본군의 취약점을 발견하게 된다.

선과 점, T자형의 중동철도. 헤이룽장성박물관에서

일본군(관동군)의 전략은 주요 도시와 철도 노선을 장악하여 이른바 선과 점을 연결하는 지배 전략에 불과하였다. 중국의 광활한 대지는 일본군에게 군수 보급, 통신, 수송 측면에서 절대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대상이었음을 알게 해 준다. 장제스(장개석)와 군벌들의 장기 항전, 마오쩌둥(모택동)의 게릴라 투쟁은 일본군을 중국 내부로 깊숙이 끌어들였다.

길게 늘어진 병참선과 보급로는 항상 위험에 직면했으며, 병력과 식량, 탄약의 끝없는 소모전은 일본군을 패전으로 이끌게 된다. 군기가 무너진 일본군은 민간인 학살과 강간, 약탈 등 끔찍한 인권유린 행위를 자행하게 된다. 만주의 조선인에게도 똑같은 행위를 저질렀다.

수려한 만저우리역, 러시아 문화의 상징이다

하이라얼을 지나면 소련·만주 국경도시 ‘만저우리(满洲里)’ 종착역에 도착하게 된다. 러시아로 통하는 최대의 육상 관문이다. 1896년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중동철도 건설을 추진한 러시아제국에 의해 형성된 국경도시이다. 우리는 940km, 12시간의 여정 끝에 다음 날 아침 8시 45분 정시에 도착하였다.

화려한 외양의 역 건물을 나서니 한 중국 여인이 아침 식사와 숙소를 제안하며 따라온다. 낯선 곳으로의 역사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제 만저우리의 역사와 후룬베이얼 대초원지대, 그리고 후룬호(약 2,400제곱킬로미터, 서울 면적의 3.8배)에 깃든 북방 민족사와 혁명의 열기를 찾아가는 에트랑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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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순

전 경찰청장, '이택순의 실크로드 도전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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