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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방송국 ‘바레인 언론인 출연 금지’ 논란…문명과 존엄을 묻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라크 고대도시 ‘바빌론’ 문명 <사진=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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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아흐메드 살레 바레인 ‘알 아얌’ 칼럼니스트] 일주일 전 발생한 해프닝이 바레인을 넘어 걸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걸프 지역에서 반복돼 온 익숙한 패턴이다. 피상적인 사고로 감정이 과열되고, 민족주의에 기반한 퇴행적인 배타성이 공적인 담론을 무너뜨렸다. 역사의 진보가 아닌 퇴보와 마주하는 기분이다.

얼마 전 바레인 언론인 자파르 살만은 이라크 방송국의 토론 프로그램에 화상으로 참여했다. 당시 패널 중 한 명이 살만의 모국인 바레인을 폄하하기 시작했다. 진행자도 이를 방조하면서 폄하 발언을 정당화했고, 살만의 정당한 반론에는 거부 반응을 보였다. 그 순간의 대비가 논란을 확산시켰다.

살만은 언론인이자 정치평론가로서 커리어를 쌓아온 인물이다. 그는 논리적인 비평으로 정평난 언론인이다. 살만은 명확하게 목표하는 바를 전달하면서 역내 언론인들의 롤모델로 주목받아왔다.

그러나 최근의 해프닝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섰다. 고질적인 문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을 뿐이었다. 당시의 행태는 이라크가 ‘고대 문명 발상지’라는 이유 만으로 타자를 깎아내리는 오만에 불과했다. 이러한 담론은 역사적인 유산이 문화적인 우월성을 보장한다는 전제에 기반한다.

고대 문명의 위대함을 부정할 수는 없다. 메소포타미아와 나일강 유역, 페니키아 문명은 인류사의 기반을 다졌다. 통치체제, 문자, 농업, 무역에 대한 기여를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유산은 특정 국가만의 것이 아닌 인류 공동의 발자취다.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이 같은 문명의 전유가 성립할 수 없다. 인류 문명은 강이라는 지리적인 조건 속에서 태동했다. 인류는 강이라는 생태계 품에서 농경을 시작했고, 초기 국가를 형성해 왔다. 오늘날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특정 국가에 대한 우월성의 근거가 아닌 유산 그 자체다.

문명의 발상지에서 탄생한 국가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건국과 정복, 이주를 반복하면서 문명의 발상지도 끊임없이 재편됐다. 새로운 사회가 등장하고 또 성장하다 쇠퇴하는 것은 역사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과거에 대한 자부심 역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타인을 폄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현 시대의 인류는 바빌론을 건설하지 않았고, 피라미드를 세우지도 않았으며, 페니키아 교역로를 개척하지도 않았다. 과거의 업적에 기반한 우월감은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이 아닌 현실 회피에 불과하다.

또한 이러한 담론은 강 유역 이외의 지역에서 파생된 또다른 문명을 간과한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형성된 문명들은 생존 자체가 도전과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끝내 살아남았고, 고유의 문화와 제도를 구축해 국가를 형성했다. 이러한 문명 중 일부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명’이라는 담론도 제기되고 있다.

고대의 위상에 집착하는 태도는 또다른 현실을 간과한다. 오늘날 아랍권의 지형도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됐다. 현행 인구 분포 역시 지속적인 이동과 교류의 결과물이다. 지난 수세기 사이의 인구 이동은 아랍권 전 국가에서 예외 없이 나타난 현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과거에 기반한 우월성은 더욱 설득력을 잃는다.

지식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지면서 세계사에 대한 이해도 역시 깊어졌다. 그럼에도 무의미한 담론을 되풀이하는 것은 변화에 대한 거부를 의미할 뿐이다. 최근의 사례는 직업 윤리 측면에서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진중한 논의를 표방하는 언론 플랫폼은 특정 국가나 집단을 폄하하는 담론을 용인해선 안 된다.

아랍권이 아닌 타 지역의 사례를 살펴보자. 동남아시아의 경우,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상대적으로 신생국가이면서도 규모가 작은 싱가포르를 경시하지 않는다. 유럽도 모나코나 리히텐슈타인의 규모를 얕잡아보거나 조롱하지 않는다. 성숙한 국가일수록 타자를 깎아내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폄하를 당하는 국가들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를 정당하게 비판할 것인가, 아니면 과거에 얽매여 진보를 거부해야 하는가. 답은 분명하다. 우리는 과거를 지나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다. 우리 스스로에 대한 존엄은 우리의 성취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문명의 진정한 가치는 연표 상의 숫자가 아닌, 문명이 창출한 삶의 질과 가치, 그리고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사람과 제도,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추구해온 걸프 국가들은 존중 받아 마땅하다.

역사는 출발선일 뿐 종착지가 아니다. 과거에 지나치게 집착할수록, 과거의 성취보다 현재의 결핍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는 자파르 살만이 마주한 문제와도 상통한다. 지금 이 시대, 우리의 존엄은 과거의 신화가 아닌 현재의 우리에게서 비롯된다.

아시아엔 영어판: The Misuse of History in Modern Debate: Claiming the Past as Proof of Superiority – THE AsiaN
아시아엔 신드어판: جديد بحثن ۾ تاريخ جو غلط استعمال: ماضيءَ کي برتريءَ جي ثبوت طور پيش ڪرڻ – THE AsiaN_Sind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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