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리핀에서 만난 여러 구직자들의 사례는 이러한 현실을 보여준다. 민다나오 출신 A씨는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1년 동안 한국어를 배우며 매달 적지 않은 비용을 지출했고, 시험을 보기 위해 비행기값까지 빌려 마닐라로 올라왔다. 시험 합격 후에도 신체검사 비용과 대기 기간이 이어졌고, 언제 채용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잡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야 했다. 시험에 합격하고도 실제 채용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기다림 자체가 큰 부담이 되고 있었다.
B씨는 시험과 신체검사를 모두 통과했지만 2년 동안 채용 연락을 받지 못했다. 결국 유효기간이 지나 다시 시험을 준비해야 했고, 추가 비용과 시간을 감당하지 못해 포기했다. 또 다른 지원자는 시험과 숙박, 이동비용 등으로 큰 빚을 지고도 채용 기회를 얻지 못해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었다. 매년 수만 명이 시험을 보지만 실제 채용 인원은 제한되어 있어, 대기자만 늘어나는 구조라는 불만도 적지 않았다.
반면 대만의 채용 방식은 전혀 달랐다. 필리핀에서 만난 D씨는 한국 취업 준비에 실패한 뒤 대만 취업에 도전했다. 대만은 시험 중심이 아니라 서류 심사와 면접, 체력검사, 고용주 인터뷰를 통해 인력을 선발했고, 기업이 직접 참여해 필요한 사람을 선택했다. 채용 과정은 까다로웠지만 결과는 명확했다. 그는 최종 합격 후 대만에서 일하게 되었고, 이후 회사의 신뢰를 얻어 동료 추천까지 할 수 있게 됐다.
대만 기업들은 언어 능력보다 업무 능력과 태도를 중요하게 보고, 필요하면 통역을 배치한다. 영어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필리핀 인력도 큰 어려움 없이 적응할 수 있다. 실제로 대만 기업들은 정기적으로 현지 면접을 열어 필요한 인력을 직접 선발하고 있으며, 짧은 기간 안에 수백 명을 채용하기도 한다. 이에 비해 한국의 고용허가제는 시험 중심 구조로 인해 기업과 구직자 모두에게 비효율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한국의 외국인 고용제도는 한국어 시험 합격을 전제로 3년 고용허가를 부여하지만, 고용주가 직접 면접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현장에서 필요한 인력보다 행정 절차가 우선되는 구조라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채용 후 단기간에 이탈하는 사례도 적지 않아 기업 입장에서도 부담이 크다. 반면 대만은 기업이 직접 선택하고 책임지는 방식이어서 채용 만족도가 높다는 평가가 많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이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제도는 우수 인재를 선별하기보다는 절차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필리핀 구직자들은 “시험 준비에 몇 년을 쓰고도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다른 나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많은 인력이 대만이나 중동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제도는 단순히 인력을 채우는 정책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세계 각국이 우수한 인재 확보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한국 역시 현실에 맞는 유연한 제도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0년 가까이 유지된 고용허가제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현장 중심의 선발 구조로 바꿀 것인지, 이제는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외국인 근로자 정책의 방향은 결국 한국 산업과 지역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