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로 부활한 혜초, 그리고 정수일의 헌사
2025년 11월 28일, 한중 문화유산 복원 다큐 포럼이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상영된 <실크로드 부다>는 1,300년 전의 혜초와 21세기의 정수일, 그리고 미래를 여는 박진호 교수가 ‘실크로드’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연결된 감동적인 현장이었다. 이날 고려대학교 박진호 박사팀은 AI 영화 <실크로드 부다>를 150명의 관객을 대상으로 상영하였다.

박진호 교수팀은 스승 정수일 소장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왕오천축국전> 속 혜초의 여정을 AI 영상으로 되살려냈다. 이는 정수일 소장이 평생을 바쳐 복원하려 했던 ‘소통과 교류의 역사’에 대한 후학들의 뜨거운 응답이기도 했다. 정수일 소장은 생전에 이화여대 유희경 교수와 서울여대 김미자 교수의 복식 고증을 거쳐, 디지털 복원 전문가 박진호 교수와 함께 혜초의 얼굴을 추정 복원하였다. 그 인물도 속 혜초의 눈빛은 정수일 소장의 눈빛과 닮아 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두려움 없는 탐구심, 그리고 인류 문명에 대한 깊은 애정이 서려 있었다.
또한 혜초가 보았을 중앙아시아의 석양과, 이제는 테러로 파괴되어 형체도 없이 사라진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석불의 웅장한 모습을 AI를 통해 세계 최초로 복원해냈다. 이는 “기록은 사라져도 문명은 영원하다”고 늘 가르쳐왔던 스승의 철학을 기술로 증명한 순간이었다.

정수일 소장에게 바치는 이 영화는, 비록 육신은 떠났으나 그가 남긴 ‘실크로드 정신’이 디지털의 옷을 입고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물 것임을 약속하는 일종의 헌사다.
“AI 영화를 21세기 혜초인 정수일 소장님께 바칩니다.”
“이 인공지능(AI) 영화를 실크로드의 거인이자, 우리 시대의 참된 구도자셨던 정수일 소장님께 바칩니다. 당신이 글로 써 내려간 그 험난한 길을, 이제 저희는 디지털 기술로 다시 이어갑니다.”
이런 심정을 담아 상영된 AI 영화의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객석은 숙연해졌다. 그곳에는 평생을 실크로드 연구에 헌신하다 지난해 타계한 고(故) 정수일 소장을 추모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박진호 교수는 이 영화가 단순한 기술 과시가 아니라, 스승이 미처 다 보지 못하고 떠난 실크로드의 찬란한 풍경을 하늘에 계신 스승께 보여드리기 위한 ‘디지털 헌사’임을 고백했다. AI 영화 속 혜초의 얼굴은 생전 정수일 소장의 고증을 거쳐 함께 복원했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스승과 제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만들었던 ‘혜초의 얼굴’이 AI를 통해 살아 움직이며 인도의 고행길을 걷는 모습은 마치 정수일 소장의 젊은 시절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혜초가 천축국의 진리를 갈구하며 만 리 길을 걸었듯, 정수일 소장은 ‘문명교류(文明交流)’라는 화두를 들고 전 세계 70여 개국의 거친 현장을 직접 발로 누볐다. 때로는 이념의 장벽에 가로막히고, 때로는 고독한 유배의 시간을 견뎌야 했지만, 그 모든 시련은 오히려 그를 더욱 단단한 ‘21세기 혜초’로 거듭나게 했다.
“AI는 차가운 기술이지만, 그 안에 담긴 그리움은 뜨겁습니다. 정 소장님께서 가르쳐주신 실크로드의 가치가 AI라는 새로운 그릇에 담겨 다음 세대에게 영원히 전해질 것입니다.”
다음은 오늘 1주기를 맞아 정수일 소장의 제자인 박진호 박사의 ‘정수일 소장님을 향한 헌사’다.

정수일 소장님께
어느덧 선생님께서 실크로드의 별이 되어 떠나신 지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서울 성수동 서재에서, 옥인동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연구실에 계신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당신께서 그토록 애정하시던 실크로드의 바람 속으로 돌아가신 지도 열두 달이 지났습니다.
정 소장님, 저는 2025년 11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님께 선물을 올렸습니다. AI라는 새로운 빛으로 살려내어 광활한 중앙아시아의 대지 위에 세웠습니다. 그것은 AI 영화 <실크로드 부다>였습니다.
혜초가 걸었던 그 뜨거운 사막과 눈 덮인 파미르 고원, 그리고 이제는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린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석불의 장엄한 모습을 영상으로 복원해낼 때마다 저는 소장님의 목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엔딩 크레딧에 소장님의 함자를 올리며 저희는 모두 숙연해졌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한 학자를 기리는 이름이 아니라, 편견과 장벽이 없는 세상을 꿈꾸셨던 ‘21세기 혜초 정수일 소장님’의 발자취에 대한 경의였습니다.
소장님이 글로 일구신 그 척박한 학문의 길 위에 이제 저희는 AI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하나 더 세워봅니다. 비록 소장님께서는 이 영화를 육신의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하셨지만, 당신이 사랑하셨던 그 푸른 하늘 어딘가에서 빙그레 웃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소장님이 계시지 않는 이 땅에서 실크로드학을 이어가는 일이 때로는 벅차기도 하지만, 당신이 남겨주신 방대한 기록과 그보다 더 거대한 학문의 열정은 저희의 북극성이 되어주었습니다.
소장님이 보여주신 그 길을 따라 우리 후학들은 멈추지 않고 소통의 역사를 이어가겠습니다. 21세기의 혜초, 정수일. 당신의 이름은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그리고 실크로드의 바람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입니다.
소장님, 부디 그곳에서는 고단했던 구법의 여정을 내려놓고 평안히 쉬십시오. 저희는 소장님께서 틔워주신 그 길 위에서 멈추지 않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2026년 2월 24일 정수일 박사 타계 1주년을 맞아 제자 박진호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