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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섭의 고려인 청소년⑮] SK선경최종건재단이 로뎀나무학교에 준 잊지못할 선물…’푸른 바다의 꿈’

학생들이 맘껏 소리치는 뒤로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다. 제주 용두암에서.

푸른 바다 속에는 어떤 것들이 살고 있을까. 그 질문은 늘 책 속에서만 맴돌던 아이들의 호기심이었고, 제주 아쿠아플라넷의 유리 벽 앞에서 마침내 “진짜”가 되었다. 유영하는 물고기들이 빛을 타고 흐르자 아이들의 손놀림도 덩달아 바빠졌다.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아 두는 것만으로는 모자란 듯, 연신 스마트폰 셔터 소리가 이어졌다. 사진과 영상 속에 담아두지 않으면 사라져버릴까 봐-그 신기함이, 그 감동이, 그 순간의 온기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본국에서는 직접 바다를 보기 어려웠던 아이들. 바다의 냄새와 파도의 소리를 ‘말’로만 알고 살아온 아이들. 그래서인지 그들은 한순간도 흘려보내지 않으려 했다. 눈동자는 더 크게 열렸고, 발걸음은 더 빨라졌다. 살아 있는 체험학습의 시간들-그것은 우리에게 선물이었다. 누가 대신 줄 수 없는, 오직 스스로 걸어 들어가서 얻는 선물.

제주도 아쿠아플라넷에서의 시간은 단순한 관람이 아니었다. 해양 생물을 직접 관찰하는 동안 아이들은 자연과 생태를 ‘공부’가 아니라 ‘감각’으로 배웠다. 눈앞에서 숨 쉬는 생명은 교과서의 문장보다 더 정직했고, 더 오래 남았다. 생태적 감수성은 그렇게, 설명이 아니라 경험으로 자라났다.

제주 아쿠아플라넷에서

그리고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이번 제주 수학여행이 우리만 보고 즐기는 여행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출발하기 전부터 아이들에게 마지막 과제를 알려주었다. 앞으로 제주를 여행하게 될 고려인 모두를 위한 ‘제주 관광 안내지’를 만들자고. 아이들의 작은 수첩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주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관광명소, 버스 노선도, 도보 지도, 맛집, 자신들이 묵은 호텔까지. 러시아어와 한국어로, 두 언어의 다리 위에 자신들의 경험을 올려놓겠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하멜이 떠올랐다. 1653년, 상선을 타고 용두암에 표착해 살아남아 조선의 지리와 풍속, 정치와 교육을 서양인의 시각으로 기록했던 사람. 아이들도 어쩌면—‘자신들이 본 제주’를 어떻게 소개할 것인지, 자신만의 언어로 기록하는 하멜이 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누군가의 여행이 누군가의 길이 되는 순간은, 이렇게 조용히 시작된다.

차는 벌써 용두암에 도착했다. 전설을 듣고, 저 멀리서 가까이 다가오는 비행기를 발견하자 아이들은 또 소리를 지르고 사진을 찍었다. 아무리 소리쳐도 비행기는 들을 리 없다. 그걸 아이들도 안다. 그런데도 소리치는 이유는, 어쩌면 비행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용두암에서 단체 사진을 남긴 뒤 우리는 공항으로 이동해야 했다. 렌트카를 반납하고 아이들은 다시 팀별로 체크인을 해야 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고, 스스로 게이트까지 들어가야 한다. 나는 조현수 목사님(김포 구원의 감격교회,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인성교사), 오필준 부장선생님과 함께 일찍 모바일 체크인을 마친 상태였기에 게이트 앞 벤치에서 기다리며, 어느 팀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공항은 ‘그냥 공항’이 아니었다.

외국인 신분인 아이들은 체크인 절차가 하나 더 있다. 외국인등록증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 사람에게는 당연한 신분 확인 절차가, 아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언어 시험이 된다. 질문을 듣고, 이해하고, 대답하는 모든 순간이 긴장이다. 우리가 낯선 나라에서 영어 울렁증을 겪듯, 아이들도 같은 떨림을 안고 있다. 그래서 제주도는 더 값졌다. 살아 있는 현장 속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익히기에, 이보다 더 좋은 교실은 없었다. 2박 3일 동안 아이들은 ‘여행’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감과 용기, 그리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법을 잠깐이나마 몸에 새겼다. 이제 나는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막연한 불안이 없다. 아이들은 이미 충분히 자신들의 역량을 보여주었다. 낯선 곳에서도, 낯선 질문 앞에서도, 스스로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훌륭한 체험학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SK 선경 최종건재단에 마음 깊이 감사한다. 이번 제주 수학여행을 지원해주신 SK 선경 최종건재단 최신원 이사장님은 “로뎀나무학교 학생들이 낯선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과 부딪히며 직접 체험한 이번 여행이 소속감과 자신감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지속적으로 지원하시겠다”는 말씀을 전해주셨다.

그 말은 아이들의 어깨 위에 보이지 않는 날개를 얹어주었다. 누군가가 믿어주는 경험은, 그 자체로 사람을 변화시킨다.

수많은 공항 인파 속에서 아이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제 어느 팀이 먼저 들어오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모두가 꿈꾸는 아이들이고, 꿈을 싣고 비행할 아이들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차이는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종착지까지 한 발자국을 내딛는 것. 그게 전부이자, 가장 큰 전부다.

그런 흐뭇한 마음이 차오를 즈음, 오필준 부장선생님이 말했다. “아이들 다 들어왔습니다.” 조현수 목사님도 응원의 한마디를 보탰다. “이제 한국생활 걱정 안 해도 되겠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아이들의 오늘이 내일의 믿음이 되었다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이미 어둠이 깔려 있는 김포공항에서 아이들에게 마지막 미션을 전했다. 최종 집결지는 학교 앞 햄버거 가게. 각 팀별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안내 후 우리는 뒤로 빠졌다. 얼마 후 아이들의 이동 위치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주도와 달리, 자신들이 정한 코스로 무리 없이 이동하는 것을 보며 나는 조용히 안도했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한곳에서 출발해 종착역이 같아도, 시작점은 서로 다르고, 오는 코스도 다 다를 수 있다. 오늘 아이들도 학교 앞까지 각자의 방법을 선택해 올 것이다. 도착 시간은 같지 않겠지만, 그것은 1등과 꼴등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더 열심히, 더 최선을 다해, 자기 몫의 길을 걸어왔는가의 문제다.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선택을 믿으며 달려갈 것이다. 삶의 모습이 제각각이듯, 각자의 길도 제각각이니까.

이번 수학여행의 비용은 15,351,000원으로 기획안을 제출했지만, 최종 사용 후 제출한 금액은 12,246,000원이었다. 2박 3일 동안의 제주 수학여행에 대한 나의 만족스러운 목소리만을 듣고도, SK 선경최종건재단의 박새롬 담당자는 함께 동행하지 않았음에도 우리가 얼마나 값있게, 정직하게 사용했는지 그 결과까지 짐작한 듯 반갑게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는 안다. SK 선경최종건재단이 인재 양성을 위해 ‘꿈을 키우는 키다리 아저씨’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선지출 후지원이라는 방식은 어느 지원 기관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쉽지 않은 결정을 SK 선경최종건재단은 했다. 게다가 이번 제주 수학여행뿐 아니라 농구대와 체육 기자재까지 선물해 아이들의 꿈이 더 높이 점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봄에 날씨가 풀리면, 아이들은 농구대 앞에서 꿈을 하나씩 채우기 위해 점프할 것이다. 그 점프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미래로 향하는 연습’일 것이다.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는 한국 최초로 고려인학교를 건축해 각종학교(대안학교 학력인가)를 꿈꾸고 있다. 올해는 꿈꾸는 대로, 꿈꾸듯이 될 것이라고-아이들과 함께 다시 한 번 점프해본다. 푸른 바다 속 생명들이 유리 너머로 헤엄치던 그 순간처럼, 우리 아이들도 이제 삶이라는 바다를 헤엄칠 것이다.

두려움이 있어도, 낯설어도, 스스로 길을 찾으며. 그리고 언젠가 그들이 누군가에게 말해줄 것이다. “제주는, 우리를 더 크게 만들어 준 곳이었다.”

소학섭

(사)청소년미래연구 이사장,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이사장 겸 교장, 다문화전문가 2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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