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화

[전상중의 아침편지] 분노를 넘어, 카이로스의 순간을 붙잡아야 할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손인 세현(오른쪽)씨가 2025년 12월 4일 해병대 신병 제1323기 수료식에서 부친 박지만 EG회장에게 경례하고 있다. <사진=국방홍보원 유튜브>

지금 우리를 둘러싼 현실 또한 녹록지 않다. 동아시아 정세는 구한말 열강의 패권 다툼을 떠올리게 할 만큼 불안정하고, 국내로 눈을 돌리면 양극화와 빈곤은 심화되고 사회 곳곳의 갈등은 날카롭게 증폭되고 있다. 분노는 일상이 되었고, 대립은 상식처럼 굳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위기를 넘어설 길은 분노와 대결, 끝없는 투쟁의 반복 속에 있지 않다. 서로를 향한 최소한의 양보와 인내,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공동체적 상상력을 회복하는 데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갈등을 키우는 언어가 아니라, 공존을 모색하는 태도가 절실한 때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여전히 정쟁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국민의 눈높이와 동떨어진 말과 행동을 되풀이하고 있다. 극한의 대립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 또한 지는 석양처럼 위태로운 균형 위에 놓여 있다.

우리는 시간을 양으로 재는 ‘크로노스’의 삶을 살고 있지만, 역사는 때때로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카이로스’의 순간을 우리 앞에 내민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시간을 통과했느냐다.

최근 군 간부 지원율이 역대 최저 수준이라는 현실 속에서, SK 최태원 회장의 딸과 삼성 이재용 회장의 아들의 해군 입대,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 장손의 해병대 입대 소식은 많은 울림을 준다. 의무가 없음에도 국가와 책임을 선택했고,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면서까지 군복무를 택했으며, “한 번 하는 군생활, 제대로 하겠다”는 다짐은 말보다 행동의 힘을 보여준다.

특전은 없어도 책임을 선택하는 젊은이들 이 있기에 아직 이 사회는 희망을 말할 수 있다. 공허한 구호를 외치는 어른들보다, 묵묵히 짐을 지는 청년들이 시대를 앞으로 밀어간다.

엊그제 ‘해사 80기 순항훈련전단’이 105일 간 9개국 10개항을 거쳐, 정예장교 양성을 위한 강도높은 훈련을 마치고 돌아왔다. 국민과 더불어 박수를 보낸다.

지금은 그저 시간을 흘려보낼 때가 아니다. 분노를 넘어, 역사가 허락한 카이로스의 순간을 붙잡아야 할 때다. 성숙한 성찰과 책임 있는 선택으로 이 위기를 건너, 이 땅의 내일을 열어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전상중

예비역 해군제독, 국제펜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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