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을 이해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거대한 영토와 인구, 수천 년의 역사, 강한 국가 정체성은 중국을 단순한 국가가 아니라 하나의 문명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종종 중국을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바라본다. ‘대국 중국’, ‘중국식 사회주의’, ‘중국 특유의 체제’라는 말은 넘쳐나지만, 정작 중국을 실제로 움직여온 힘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쉽게 흐려진다. 이재돈 장군의 저서 <누가 중국을 움직이는가–대륙을 뒤흔든 역사적 인물 100인>(전 5권, GDC미디어, 2025년 4월 25일 초판)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제도나 이념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중국을 읽는다. 중국 역사의 전설적 인물 황제(黃帝)로부터 오늘날의 시진핑(習近平)에 이르기까지 100인의 인물을 통해 중국사를 조망한 전 5권, 총 3,600쪽의 대작이다. 분량만으로도 압도적이지만, 이 책의 진정한 무게는 ‘중국을 인물로 읽는다’는 문제의식에 있다.
저자는 군인 출신 중국 연구자다. 해군사관학교 18기로 임관해 두 차례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해병대 제1사단장을 끝으로 30여 년의 군 생활을 마쳤다. 그는 1993년 전역 직후 중국 상하이의 복단대학에서 유학하며 중국 연구의 길로 들어섰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중국사와 전략 연구에 몰두했다.
군문을 떠난 지 8년 만인 2001년, 그는 중국 역대 명장 24인을 다룬 <지앙수와이(將帥)>를 출간해 주목을 받았다. 이어 2002년 대륙전략연구소를 설립하고 20여 년간 중국의 원사료와 정사, 전략 문헌을 집요하게 탐독해 왔다. <누가 중국을 움직이는가>는 그 오랜 연구의 결실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중국 역사의 주체는 인간이며, 역사를 이해하려면 그 시대를 움직인 인물의 선택과 행적을 추적해야 한다”고 밝힌다. 중국의 정사(正史)가 인물 중심으로 서술돼 있다는 점에 착안해, 그는 제왕과 군주뿐 아니라 사상가, 문인, 무인, 전략가, 심지어 간신과 음모가까지 포함해 100인을 선정했다. 도덕적 평가나 영웅 중심 서사를 넘어, 역사적 전환점에서 누가 어떤 선택을 했고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를 묻기 위함이다. 황제처럼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인물뿐 아니라, 비공식 실세, 참모, 사상가, 전략가, 때로는 간신까지 포함된 이유다. 중국 정치문화의 핵심은 언제나 공식 제도보다 비공식 권력과 인간관계 속에서 작동해 왔기 때문이다.
전 5권은 중국사를 시간 순으로 따라가되, 각 시대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선진시대를 다룬 1권에서는 황제, 주공, 공자, 상앙, 진시황 등을 통해 중국 통치의 원형을 보여준다. 도덕 통치와 강제 통치가 병존하는 구조, 질서를 위해 개인을 희생할 수 있다는 국가관은 이 시기에 뿌리를 내린다.
한나라에서 수나라까지를 다룬 2권은 혼란기의 통치 논리를 다룬다. 유방, 제갈량, 화타, 도연명, 채륜 등 다양한 인물을 통해 명분과 충성, 냉정한 권력 기술뿐 아니라 문명과 일상의 변화까지 함께 짚는다. 중국은 이 시기를 거치며 ‘도덕만으로는 국가를 유지할 수 없다’는 교훈을 체화한다.
당나라에서 원나라를 다룬 3권에서는 사상의 체계화와 제국 통치 기술이 결합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당 태종을 거쳐 원 태조 징기스칸과 세조 쿠빌라이에 이르는 흐름 속에서, 주희의 성리학은 사회 규범을 정교화하고 몽골 제국의 통치는 중국이 외부 지배를 흡수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을 드러낸다. 이는 오늘날 중국이 외부 이념과 제도를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방식과도 닮아 있다.
명·청을 다룬 4권은 중앙집권과 통제의 완성기다. 주원장, 강희제, 옹정제를 통해 황제 권력과 관료 시스템, 감시 체계가 고도화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현대 중국의 당-국가 시스템 역시 이 유산 위에 서 있다.
민국 시대에서 현대까지를 다룬 5권은 인물 수는 11명으로 상대적으로 적지만, 오늘의 중국을 형성한 핵심 인물들이 집중적으로 다뤄진다. 원세개, 손문, 진독수, 노신, 장개석, 주덕, 팽덕회, 주은래, 덩샤오핑, 시진핑에 이르기까지, 혁명·개혁·통제가 반복되는 중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지도자 개인의 역사 인식과 권력 운용 방식이 국가 노선을 어떻게 바꿔왔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책은 중국이 결코 서구식 자유주의로 직선 이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시사점은 분명하다. 중국은 제도나 선언문이 아니라 ‘결정하는 사람’을 통해 움직인다는 점이다. 지도자 개인의 성향과 역사 인식, 권력 장악 방식은 곧 국가전략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중국을 이해하려면 정책 문건보다, 그 정책을 결정한 인물의 사고방식과 역사관을 먼저 읽어야 한다.
<누가 중국을 움직이는가>는 중국을 두려움이나 환상으로 바라보게 하지 않는다. 대신, 수천 년 동안 축적된 인간의 선택과 판단의 결과로서 중국을 보게 만든다. 중국을 단순한 이웃 국가가 아니라, 이해해야 할 현실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독자라면 이 책은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역작이다.
끝으로 필자는 저자가 선정한 100인 가운데 <매거진N> 독자들에게 40인을 소개하려 한다. 황제, 우, 문왕, 무왕, 주공, 관중, 공자, 노자, 손무, 묵자, 맹자, 상앙, 한비자, 진시황, 이사, 유방, 항우, 한무제, 사마천, 조조, 제갈량, 사마의, 당태종, 측천무후, 주희, 징기스칸, 쿠빌라이, 주원장, 영락제, 정화, 강희제, 옹정제, 원세개, 손문, 장개석, 모택동, 주은래, 등소평, 습근평 등이 그들이다.
이들 40인은 중국 역사 전반에서 국가 질서의 기원과 통치 원형을 만들거나, 사상과 제도를 설계하고, 현실 정치의 작동 방식을 바꾸었으며, 분열을 통일로 이끌거나 제국 운영을 완성한 인물들이다. 또한 외래 지배와 충돌을 흡수해 중국의 확장성을 보여주었고, 근현대에 이르러서는 중국 국가의 성격과 권력 구조를 형성한 핵심 결정자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대체로 이러한 여덟 가지 기준에 속하는 인물들로, 중국을 제도나 이념이 아니라 ‘결정하는 인간’의 역사로 이해하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