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관람기] 연쇄활동사진 악극 ‘산 너머 남촌에는’…만담과 노래로 되살린 한국현대사

정은숙 개그우먼(SBS 공채 1기) 리허설 장면. 뒤 화면은 한국현대사를 살아낸 가족사를 보여주는 연쇄활동사진. 장광팔씨가 주연으로 나섰다.

[아시아엔=황현탁 전 주일본대사관 홍보공사] 나는 K-Beauty의 원조인 ‘동동구리무’를 아는 세대다. 구리무(영어 cream의 한국식 변형어)를 써보지는 않았으나, 그것을 팔러 시골 동네를 방문하는 행상의 북소리가 들리면 집을 뛰쳐나가 구리무 장수를 따라다니며 북소리를 들었다. 또 어른들을 따라 5일장에 가서 화장품을 팔러 이장 저장 옮겨 다니는 장돌벵이 화장품 장수를 목격하기도 했다. 구리무 장수는 맨 얼굴이 아니라 어릿광대처럼 분장을 하고 다녀 그 자체가 구경거리였다.

악극 시작 전 무대에 있던 포스터를 찍었다.

바로 지난 15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연쇄활동사진 악극’인 <산 너머 남촌에는>의 극 시작할 때 그 동동구리무 장수와, 발에 연결된 끈으로 북채를 쳐 북을 울리는 동동 북이 등장한 것이다.

출연진 커튼 콜. 소프라노 정애화, 아역배우 안지아, 김기선 테너, 소프라노 안젤라강, 소춘자 국악인, 장광팔 만담가, 정은숙 개그우먼, 박재란 가수, 김영균 희극배우, 장이레 영상감독, 오상훈 희극배우

연쇄활동사진 악극에는 동영상이 아닌 사진, 그것도 1960~70년대여서 칼라가 아닌 흑백사진이 들어가고, 악극(樂劇)이어서 노래가 포함된 스토리가 전개된다. 바로 ‘80대 노부부가 광부, 간호사, 노동자를 보냈던 지난 우리의 역사를 회상하며 손녀에게 한국의 현대사와 가족사를 이야기해준다.’ 그런 이야기가 사진이나 변사의 만담(漫談)을 통해 전달된다.

변사 소춘자, 장광팔씨. 리허설 장면이다.

과거 만담시대를 주름잡았던 ‘장소팔-고춘자 콤비’의 맥을 잇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만담보존회장 장광팔이 그 중심이다. 악극에 등장하는 인사동 네거리에 묻힌 장소팔생가터 동판 사진이 말해주듯, 장소팔의 아들 장광팔은 서울토박이로, 그 스스로는 동동구리무 장수도 장돌뱅이도 아니다.

민주화로 사회적 갈등이 분출되고, 6.25 난리 통에 헤어진 가족상봉 방송으로 가족이 재회하는 가운데, 나라는 부강해진다. 그럼에도 지난 세월 고통 때문에 할아버지는 시름시름 앓아 할머니가 신장을 이식해주어 일상을 회복한다. ‘어느 60대부부의 이야기’ 노래가 흘러나오며, 지난 시절을 회상한다. 80대 노부부는 손녀에게 질곡의 역사를 설명하고, 노래로 사진으로 지난 역사를 보여주면서, ‘축배의 노래’로 대한민국 현대사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악극 시작 전 셀카로 찍은 필자 모습

‘굳세어라 금순아’, ‘단장의 미아리고개’,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등 해방과 6.25전쟁을 겪고, 4.19와 5.16을 지나면서 ‘산 너머 남촌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이 시작된다. 많은 젊은이들이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로 가고, 월남 전쟁터로 파병되어 살아서 돌아오며 산업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청춘남녀였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가정을 꾸린다. ‘골목길’, ‘애수의 소야곡’이 흘러나온다.

악극 시작 전 정해복지상 시상식이 열렸다. 수상자는 논현노인종합복지관 이미화(자원봉사) 팀장, 꿈마루쉼터(학대피해아동쉼터) 시설장, 전국학대피해아동쉼터협의회 전성원 회장 등이다. 강한승 정해복지이사장이 수상자에게 상패를 전하고 있다.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총괄한 장광팔 만담보존회장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어르신들의 복지증진사업을 후원하는 ‘사단법인 정해복지’에서 악극공연을 후원, 공연이 성사되었다.

이번 악극에는 흥남철수 시의 빅토리아호, KBS의 장소팔고춘자 만담이나 이산가족상봉, 시위장면, 싸이 공연장면 등 많은 자료사진도 들어가 있지만, 정선탄광 채탄·교련복 입은 장면·신문배달·아리랑고개 등 현장 촬영분이 많이 들어가 생생한 느낌이 살아있다.

공연 후 출연진을 대표해 장광팔 회장이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

장광팔 회장은 “사랑을 위해서는 손이 3개가 있어야 한다”면서 왼손, 오른손, 겸손이 필요하다고 했다. 선친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듯 재담이 나올 때마다 관객들은 웃음과 박수로 환호했다. ‘코로나19 때 참 외로워 참외를 먹었다’든가, ‘저의 호가 월천(月千)인데, 모든 분들이 세후 월 천만원씩 벌기를 바라면서 지었다’거나, ‘깨와 소금을 섞으면 깨소금이 되지만, 깨와 설탕을 섞으면 깨달음이 된다’고 했다. 이와 같은 만담의 시발은 일본의 재담(才談)으로 한편을 바보로 만드는 내용인데 반해, 한국의 만담은 문자 그대로 재담이며,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닌 무승부로 마무리된다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이날 가을비가 내리며 궂은 날씨에도 객석을 메운 관객들은 공연 내내 박수와 탄성을 아끼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한국 현대사는 바로 이들의 땀과 눈물의 증거이자 기록이다.

만담보존을 위해서는 상시적인 공연이 필요한데, ‘흘러간 영화를 상영하는 청춘극장’처럼 지속적인 공연이 가능하도록 공공공연장이 확보되었으면 좋겠다. 관람료 일부는 입장자가 부담하고 상당액은 정부예산(기금)에서 지원해주면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는 노년층으로부터 찬사를 받을 것이다. 상시공연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때까지 ‘장광팔 회장님, 만담·악극보존을 위해 파이팅해주세요!’

출연진과 지인들 합동기념사진. 무대 한켠에서 공연 내내 배경음악 등을 담당하며 완성도를 높여준 이철옥 아코디언 연주자와 박은주 바이올리니스트 등이 자신의 악기를 꼭 안고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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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The AsiaN 편집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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