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늘의 시] ‘요양병원에서는’ 김창수

요양병원에서는 계급장을 모두 떼라
제발 이곳에서는 ‘왕년에 말이야’라는 말이랑 다 잊어버려라
자식 자랑도 하지 말되
손주들 자랑만은 모두를 미소 짓게 하는
이곳에서는 서로를 사물이 아닌 존재로 바라보라
요양병원에서는
간밤에 사라진 환우에 대해 궁금해 하지 마라
큰 병원으로 갔다는 말이
영원으로 나갔다는 것인지 정말로 큰 병원으로 갔다는 뜻인지도 되새기지 말라
앰뷸런스마저 이곳에 올 때는 사이렌 소리와 스트립트 폴도 끄고
밤에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자동차도 속도를 줄여 아무도 모르게 다녀가는 이곳
요양병원에서는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지 마라
함께 있다 퇴원한 환우가
죽었다는 소식 암이 전이되었다는 소식 듣고 애달파하고 싶지 않거든
깊은 인연 맺기를 피하라
다만 기억나는 환우가 있거든 그를 위해 기도만 하라
요양병원에서는 오늘만 살아라
환우들과 즐겁게 오늘을 살되
너와 내가 평생 짊어졌던 삶의 실타래를 풀어놓다가
각자에게 남겨진 나머지 시간과 길을 춤추며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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