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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에디 수프랍토 인도네시아 마사가르뉴스 디렉터] 인도네시아의 에너지 안보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오는 8월 독립 80주년을 맞이하는 인도네시아의 역대 정부들은 에너지 독립을 국정과제로 제시해왔지만 이를 실현한 정부는 없었다.인도네시아는 아세안에서 가장 인구가 많으며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자리해 있는 국가지만, 전략비축유(SPR)는 국내 수요를 간신히 충당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국가적인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고작 며칠을 버텨낼 정도다. 국가적인 에너지 안보를 위해서라도 전략비축유 인프라 구축을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
문제는 전략비축유를 국가 차원에서 효율적으로 관리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 국영기업에서 비축유를 관리하고 있긴 하지만 말그대로 관리일 뿐 효율적으로 곳간을 채우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더욱이 일본(90일), 한국(93일), 인도(45일) 등의 비축분에 비하면 매우 취약한 수준이다.
글로벌 거시경제 관점에서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진다.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해 국제유가가 배럴 당 80달러에서 150달러로 급등한다고 가정해보자. 하루에 80만 배럴 이상을 수입하고 160만 배럴 가량을 소비하지만 비축분이 없는 인도네시아는 재정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유가가 급등한 상황에서 국가가 지원하는 연료보조금 상승분까지 고려한다면 그로 인한 손실액은 연간 최대 350조 루피아(약 29조5천억원)에 달할 정도로 막대하다.
‘각양각색’ 아시아 주요국 전략비축유 정책
전략비축유 정책은 전 세계 각국이 에너지 위기에 얼마나 철저히 대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일례로 미국은 7억1,400만 배럴의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로드맵까지 운용하고 있다. 미국은 1975년 에너지정책보존법(EPCA)을 공포하면서 전락비축유를 국가 에너지 안보의 핵심 요소로 여겨왔다. 전략비축유를 관장하는 에너지부는 정유 시설, 항만, 유통망 등을 고려해 텍사스 주와 멕시코만 연안 등에서 4곳의 저장소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 인도, 일본, 한국 등 아시아 주요국들도 미국의 전략비축유 체계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중국은 동부 해안 12개 지역에서 5억 배럴 이상의 수용량을 갖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중국 역시 주요 항만과 공업 지대 인근에 저장소를 구축하고 있는데, 이는 제조업과 물류 부문에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고자 하는 중국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
일본은 순 수입량 기준 최소 90일분 이상의 전략비축유 확보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전략비축유도 그 용도에 따라 세분화해 관리하고 있다. 일본은 현재 5억 배럴 이상의 전략비축유를 보유하고 있으며, 준공공기관인 석유천연가스금속광물 자원기구(JOGMEC)가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인도는 산유국과의 공조를 통해 전락비축유를 확보하고 있다. 인도는 비샤카파트남, 망갈로르, 파두르 등지의 지하시설에 약 3,900만 배럴 규모의 저장소를 구축해 왔다. 이 시설들의 비축분은 불과 10일분에 그치고 있지만 인도는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국영석유공사와 협약을 맺어 비축유를 공유하고 있으며, 비상사태 시 이에 대한 우선권도 확보해 뒀다.
한국은 가장 현대화된 전략비축유 시스템을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한국은 원유는 물론 액화석유가스(LPG), 액화천연가스(LNG) 등 총 9,600만 배럴 이상의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석유공사(KNOC)의 통제 하에 전국적인 유통망도 가동하고 있다. 또한 미국, 일본 등 전략적 파트너들에게 시설 일부를 임대해 전략비축유를 지정학적 자산이자 국가의 수입원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허울뿐인 대통령령, 정책 구조화부터 실패
인도네시아 정부는 2017년 에너지 믹스, 에너지 효율성 제고, 신재생 에너지, 인프라 개발 등 에너지 정책을 포괄하는 대통령령을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비축유를 운영용, 전략용, 재난대비용 등 용도에 따라 세분화하지 않아서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어려운 구조다. 인도네시아가 에너지 분야에서 나름의 역사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전략비축유 확보에 실패한 이유다.
대통령이 의장을 겸하고 있는 국가에너지위원회와 실행기관인 에너지광물자원부가 존재하지만 체계를 전문적으로 갖추고 관리할 기관이나 조직이 없는 것도 문제다. 인도네시아에는 이외에도 재무부, 국영기업부, 국방부, 국가개발기획청 등 에너지 관련 부처 또는 기관들이 여럿 있지만 이들 간의 제도적 통합이 결여돼 있어 시너지를 내기 어렵다.
인도네시아가 독립 80주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전략비축유 시스템의 확립은 매우 큰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불의 고리’(Ring of Fire) 한가운데 자리해 있는 인도네시아는 자연재해에 매우 취약한 국가이기도 하다. 전략비축유를 통한 위기대응이 그만큼 중요하다. 국제정세의 역동적 측면에서 살펴봐도 에너지 수급난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비축유 체계 구축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 안보를 통한 국가경제의 안정은 국가주권의 핵심 축이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역사상 최초로 이 과업을 달성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 있을까?
아시아엔 영어판: Indonesia: Strategic Petroleum Reserves Emergency – THE Asi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