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금 유치원생 아이들…10년, 30년, 70년 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사진은 에머슨. 그의 ‘The Conduct of Life’(1860)에 나오는 대목이다. “무언가를 잘 해낸 것에 대한 보상은, 그것을 해냈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The reward of a thing well done is to have done it.) “삶은 연속된 수업이다. 그것은 살아내야만 이해할 수 있다.”(Life is a succession of lessons which must be lived to be understood).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은 미국의 철학자이자 수필가, 시인으로, 자기신뢰(SelfReliance) 와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 사상을 주창했다.

잠언 5장

예전에 아이의 유치원 발표회에 갔었습니다. 아이들은 무대에 올라 저마다 준비한 춤과 노래를 선보였습니다. 어설프기 짝이 없었지만, 부모들에게는 최고의 무대였습니다. 행사장을 가득 채운 아이들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년 뒤에 저 아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청소년기를 맞이해서 인격이 성숙해 가는 아이, 여전히 어릴 때와 같이 해맑은 아이,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자기 안으로 파고드는 아이 등 그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사춘기를 보낼 것입니다.

30년 뒤는 어떨까요? 어떤 아이는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되어 있을 것이고, 어떤 아이는 꿈을 좇아 어딘가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반면, 어떤 아이는 삶의 무게에 눌려 무기력 속에 잠겨 있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아이는 마음의 상처와 열등감 속에 갇혀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 범죄자, 도박 중독자가 될 아이도, 사회에 꼭 필요한 어른이 되어 가는 아이도 있을 것입니다.

70년 뒤도 한 번 상상해 봅니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이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깊은 후회의 한숨을 내쉴 것입니다. 누군가는 자녀와 손주들의 따뜻한 사랑 속에 노년을 보내겠지만, 또 어떤 이는 주위로부터 외면당한 채 쓸쓸히 늙어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세상과 타인에 대한 분노와 피해의식을 해결하지 못한 채 노인이 되어서도 원망과 불평을 입에 달고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악인이든 의인이든 마냥 사랑스럽고 예뻤던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사람들의 삶을 그토록 다르게 만들어 놓는 것일까요? 인생에는 다양한 변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변수에 똑같이 영향을 받지는 않습니다. 인생의 수많은 변수를 대하는 궁극적인 태도, 마음의 자세가 결국 그 차이를 만들지 않을까요?

잠언을 쓴 한 믿음의 어른이 던지는 묵직한 충고 한마디를 묵상해 봅니다.

“두렵건대 마지막에 이르러 네 몸, 네 육체가 쇠약할 때에 네가 한탄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 많은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큰 악에 빠지게 되었노라 하게 될까 염려하노라”(잠 5:11-14)

한 발 더 나아가서, 죽음 이후에, 나는 어떤 곳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끝을 생각하면 지금 무엇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가 분명해집니다.

https://youtu.be/rcKnciwnCeo?si=Fl4qrxeFdoxuMU6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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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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