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터로 복귀하던 러시아 병사는 차마 가족을 놓지 못했다
[아시아엔=이상현 스푸트니크 한국특파원] 비행기 여행은 대체로 고되고 긴장의 연속이다. 특히 직항 없이 여러 곳을 거쳐야 하는 단독 해외여행이라면 더욱 그렇다. 공항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시차에 시달리고, 빠뜨린 필수품 하나쯤은 꼭 생긴다. “여행의 묘미는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멋스럽고 대범한 태도일 것이다.생각대로 되지 않는 긴 여정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일임을 새삼 깨닫는다.
이번 러시아 여행의 목적지는 작가 막심 고리키의 고향, 니즈니노브고로드(N.N)였다. 소련 시절에는 ‘고리키시’로 불렸던 도시다. 이곳에서 지난 5일부터 이틀간 열린 ‘지구촌디지털포럼(Global Digital Forum, GDF)’에서 짧은 발표를 맡게 됐다. 러시아 총리와 부총리, 외무부 차관 등 고위 관료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참석한 제법 큰 규모의 국제 행사였다.
행사 계획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데다 발표 준비도 미흡했지만, 특유의 ‘배째라’ 정신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한국 출발부터 집 근처 기차역에서 첫차 시간을 잘못 알아, 예약해둔 공항행 버스를 타기 위해 큰 여행가방을 들고 뛰어야 했다. 그래도 버스에 탑승한 후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금세 평정심을 되찾았다. 우즈베키스탄 타시켄트공항에서는 비자카드 결제가 잘 되어 아침의 고생이 보상받는 기분마저 들었다. 물론 러시아에 도착하자마자 외국발행 신용카드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현실에 다시 좌절해야 했다. 사실, 행사 주최 측은 이런 문제를 미리 안내했지만, 내가 꼼꼼히 챙기지 않은 탓이다.
모스크바 브누코보 공항에서는 입국 수속이 무질서하게 늘어져, 주최 측이 예약해준 셰레메티예보 공항발 니즈니노브고로드행 국내선을 놓치고 말았다. 잠시 당황했지만, 역시 곧 평정심을 유지했다. 이제 거의 모든 나라의 출입국 심사에서 외국인에 대한 불친절은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더 복잡한 국면 속에 있다. ‘이방인의 쉼터는 어디나 편하지 않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새벽 2시, 옹알이 막둥이도 잠 못 이루는 군인가족의 생이별
그러나 N.N행 국내선을 기다리며 공항에서 노숙하던 중, 지켜온 평정심이 무너졌다. 셰레메티예보 공항은 러시아 전역의 지방도시로 향하는 국내선이 많다. 휴가나 외박 나온 군인들도 제법 눈에 띈다. 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한 군인을 지켜보다, 예상치 못하게 무너졌다.
일광욕 의자처럼 생긴 의자에 누워 쪽잠을 청하던 중, 군복 입은 한 젊은 군인이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곧 아내와 아이들과 화상통화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점차 길어지는 통화에 자연스레 귀가 쏠렸다. 아내와 두 아이가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남편, 아빠와 웃음 섞인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은 훈훈했다. 나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 군인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미소는 멈췄다. 그의 표정엔 이상할 정도로 활짝 웃는 얼굴과 상기된 뺨, 초점을 잃은 눈빛이 있었다. 전쟁터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두 아이의 아빠가 새벽 시간, 2시간 넘게 가족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군인은 아내와 나누는 작은 살림 이야기조차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3년 전 함께 산 냄비 손잡이가 떨어졌다는 말에도 냄비의 브랜드와 가격을 기억해내며 자상하게 반응했다. 믿음직한 남편이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엄마의 휴대폰 화면 앞에 얼굴을 들이미는 막둥이 아기에게 군인은 “아빠, 먹여주세요! 해봐~”를 열일곱 번은 외친 것 같았다. 마치 참교육에 사명감 넘치는 어린이집 교사처럼 우렁차면서도 다정했다.

앳된 군인 아빠여! 꼭 살아남아, 식구 곁으로 돌아가라
화상통화는 두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비몽사몽 옆자리에서 이 가족의 애틋한 대화를 엿듣던 나는, 갑작스레 울컥하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새벽 2시, 온 가족이 잠들지 않은 비정상적인 시간. 특히 말을 겨우 배우는 큰아이와 옹알이하는 아기까지 모두 함께 있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가족의 사정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아, 이 군인은 휴가를 나왔지만 집까지는 가지 못했구나. 그래서 가족과 직접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화상통화를 하고 있는 거구나. 만났다면 이토록 길게 대화하지 않았을 테고, 저렇게 간절한 표정과 목소리일 수 있었을까?’
기자로서 감정 조절에 익숙한 고성능 부교감신경마저 이 순간엔 작동을 멈췄다. 눈물이 흘렀다. 이 가족이 다시 식탁 앞에 둘러앉을 수 있을까, 그 생각에 가슴이 저며왔다.
무너진 평정심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평정심이 흔들리는 일은 드물고, 그런 자신이 민망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 이번엔 달랐다. 평정심이 무너지는 그 자체로 오히려 후련했다. 슬픔을 꾹 참거나 감격을 억누르다 터질 때, 인간의 가슴 한켠엔 아직 중요한 기능이 남아 있다는 증거 같았다. 타인의 절박한 상황이 내게 문학적 카타르시스를 안겨줬다는 사실에 순간 움찔했지만.
전쟁터로 돌아가는 군인의 웃음과 진심, 그 우렁찬 음성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을 지켜보는 타인에게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너무 이기적인 감정 아닌가. 누군가의 생명은 그렇게 스러져야만 하는가? 저 군인, 저 아빠는 그렇게 숭고한 생명력을 머금고, 절규하듯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데.
강가의 개망초, 토끼풀은 “살고 싶다”고 절규한다. 한 해를 살고 자식들이 다시 태어나 삶을 이어간다. 반면 장미는 인간이 마련해준 울타리 안에서 해마다 꽃을 피우며 고고하게 살아간다. 장미와 개망초의 삶이 원래부터 다른 방식이라지만, 같은 인간 사이에서 인생의 알고리즘이 이토록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젊은 군인 아빠여!
인간은 언제까지 전쟁이라는 악업을 반복할 것인가. 전쟁이 인류의 본능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소하고 앳된 군인 아빠여! 꼭 살아남아, 네 식구의 밥상머리, 그 천국에 도달하길 바란다!
옹알이 막내가 곧 말썽쟁이가 되겠지. 하지만 뭐, 그게 행복이다. 그게 삶이다. 그게 인간의 기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