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러시아의 남북한 투트랙 전략과 한국 새정부의 과제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건배를 하고 있다

[아시아엔=김원일 정치학 박사, 모스크바시립대 교수] 러시아는 냉전 종식과 소련 해체 이후 급격한 서구화 노선을 택하며 대외 정책에 큰 전환을 시도했다. 한반도 정책 역시 기존의 북한 중심에서 남한 중심으로 선회하면서 한러 관계는 황금기를 누렸지만, 북러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다. 그러나 국제 정세의 긴장 국면이 고조되고, 러시아가 동북아 주도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북러 관계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러시아 내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다.

2000년 푸틴 대통령은 소련과 러시아를 통틀어 최초로 북한을 방문하며 관계 복원에 나섰지만,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인해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한반도 정책에도 변화가 생겼다. 한국이 대러 제재에 동참하기 전까지는 러시아가 한국을 우선시하는 기조를 유지했으나, 이후 북러 관계가 급속히 밀착되기 시작했다.

2024년 4월 26일, 러시아는 처음으로 북한군의 ‘특별군사작전’ 참여를 공식 인정했고, 북한도 곧이어 파병 사실을 발표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에 대한 지지를 지속적으로 표명해온 거의 유일한 국가로, 러시아는 이를 높이 평가해 왔다. 앞서 2023년 6월 푸틴 대통령의 방북과 ‘북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조약’ 체결에 이어, 북한군의 파병이 공식화되면서 양국 관계는 군사동맹 수준으로 발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4월 28일 성명을 통해 쿠르스크 해방 작전에 참여한 북한군에 감사를 표하고, “전장에서 맺어진 북러 간 협력이 모든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발전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크렘린궁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필요 시 러시아도 북한에 군사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북러는 무기 및 군사협력을 넘어, 양국이 서로에게 전략적 지렛대가 되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러시아는 북한을 통해 미국과 한국을 견제하고, 북한은 러시아를 통해 중국과 미국에 대응할 전략적 여지를 확보하려는 셈이다. 향후 양국은 군사뿐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2021년까지 한러 간 연간 교역액은 약 300억 달러에 달해, 한국은 중국에 이어 아시아에서 러시아의 두 번째 교역국이었고, 러시아는 한국의 9위 수입국이었다. 그러나 2022년 한국이 대러 제재에 참여한 이후 양국의 경제 관계는 급격히 위축되었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한국과의 경제 협력 유지 의사를 계속 밝히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23년 주요 외신 간담회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직접 공급하지 않기로 한 결정을 높이 평가한다”며 관계 회복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 역시 “대다수 한국 기업이 러시아 복귀를 희망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식품과 소비재 중심의 일부 한국 기업은 철수하지 않고 러시아 시장에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한국산 아이스크림 수입량은 2024년 3월 기준 251.5톤으로,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

북러 군사 밀착과 북한의 ‘두 국가론’ 주장 등으로 인해 한국의 대러 정책은 복잡한 국면에 놓여 있다. 그러나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균형이 필요한 시점이다.

러시아는 한국과 북한과의 관계를 각각 독립된 양축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한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다방면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 같은 투트랙 전략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이후에도 변할 가능성이 낮다.

북한 비핵화는 여전히 한국과 미국의 핵심 대북 정책이지만, 북한이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자리잡은 현실 속에서 러시아는 이를 묵인하는 입장이다. 현재 한러 관계 속에서는 러시아가 과거처럼 한국 입장을 지지하거나 북핵 문제에서 적극적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앞으로 출범할 한국의 새 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중심에 둔 보다 자율적인 대러·대북 외교를 전개해야 할 시점이다. 미국의 정책 변화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외교적 균형감을 유지하는 전략이 절실하다.

김원일

모스크바대 정치학박사, 모스크바한인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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