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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현악단 시간 속, 조용히 반짝이는 한 이름”

국립국악관현악단 30주년과 서울시국악관현악단 60주년 기념공연에서 만난 최지혜의 작품

2025년, 국악관현악계는 의미 깊은 두 개의 기념 무대를 맞이했다. 지난 3월 12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창단 30주년 음악회와, 4월 18일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60주년 음악회가 그것이다. 단순한 숫자의 기념이 아닌, 국악관현악이 지나온 세월과 그 예술적 계보를 되돌아보는 중요한 무대였다.

두 공연의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시대적 변화와 국악관현악의 진로를 가늠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들이 보인다. 그중에서도 유심히 주목할 만한 점은 40대 후반의 여성 작곡가 최지혜의 작품이 양 악단 모두의 기념공연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음악은 한국적인 고유성과 현대적 감성을 아우르며, 연주자와 지휘자, 관객과의 공감대를 성공적으로 형성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30주년 무대에서는 두 곡의 창작국악관현악곡이 재연 연주되었다. 하나는 초대 예술감독 박범훈의 작곡과 지휘로 선보인 ‘오케스트라 아시아를 위한 뱃노래’, 그리고 또 하나는 국립국악관현악단 상주작곡가를 지낸 최지혜의 ‘감정의 집’이었다. 이 곡은 2018년 초연 이후 총 21회에 걸쳐 연주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대표적인 레퍼토리 중 하나로, ‘국악관현악다움’을 구현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 달 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60주년 무대에서는 올해 새로 부임한 이승훤 단장이 영화음악가 이지수와 작곡가 최지혜에게 새로운 작품을 위촉했다. 이들의 곡이 공연의 마지막 순서에 배치되었는데 이날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1·2층 객석이 모두 찰 정도로 많은 관객과 국악계 원로들로 가득 찼고, 공연 후 최지혜의 작품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이승훤 단장은 사전 인터뷰에서도 그녀를 “국악계의 보배 같은 작곡가”로 표현하며, 국악관현악의 미래 가능성을 이끄는 인물로 꼽았다.

현재 국내에는 최근 창단된 평택국악관현악단을 포함, 수많은 국악관현악단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창작곡의 대중적 성공은 드문 것이 현실이다. 최지혜의 작품은 이 흐름 속에서 예외적 위치에 있다. 이번 서울시국악관현악단에서 연주된 그녀의 신작 ‘상주아리랑을 주제로 한 국악관현악곡 미월 (眉月)’ 은 국악과 서양 관현악의 조화를 시도하며, 특히 민속악 기반의 선율과 장단이 그녀 특유의 아름다운 선율선과 어우러져 관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그녀의 음악은 단순한 퓨전이 아니라, 양쪽의 본질을 깊이 이해한 바탕 위에 성립한 콜라보레이션이다.

현재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창작곡들 중 상당수는 초연에 그치고 있다. 지난 30년간 50여곡이 넘는 작품이 한 번의 연주로 끝난 채 묻혀 있다. 이는 국립뿐 아니라 다수의 시립, 도립 국악관현악단도 겪고 있는 문제다. 수많은 작곡가들에게 위촉료가 지급되지만, 결과적으로는 예술적 지속성 없이 낭비에 그치는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최지혜의 음악은 특별하다. 그녀의 대표작 ‘감정의 집’ 외에도 첼로 협주곡 ‘미소’, 산조 협주곡 ‘시절풍류’, 그리고 최근에 발표된 한오백년을 주제로 한 국악관현악 ‘무늬’ 등은 모두 재연 요청이 활발한 작품들이며 단장과 지휘자들이 먼저 나서서 그녀의 곡을 찾고 있다. 이는 단지 좋은 음악이기 때문이 아니라, 연주자들이 몰입할 수 있고, 관객이 감동할 수 있으며, 지휘자가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최초의 국악관현악이 60년의 시간을 거쳐왔지만, 여전히 대중성과 예술성, 제도와 창작 사이의 긴장 속에 놓여 있다. 우리는 왜 이 제도를 세금으로 유지해왔는가? 그 안에 진정한 음악적 가치가 있었는가? 단지 전통음악을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머무르고 있을 뿐인가? 국악관현악단이 단순히 국악인들의 대학 졸업 이후 이어지는 ‘직장’으로서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예술적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제도권 밖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작곡가들의 고민과 창작이 더욱 많이 등장해야 한다.

30주년과 60주년을 맞아 국악관현악은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단순한 유지가 아닌, 이 시대에 왜 이 기관이 필요한지를 설득할 수 있는 음악이 필요하다.

국악관현악만이 내보일 수 있는 곡을 쓴 탁월하고도 이 시대의 감동을 이끌어낼수 있는 작곡가, 이를 제대로 해석하는 지휘자, 그리고 혼신을 다해 연주하는 단원이 있을 때, 우리는 관객의 외면이 아닌, 국악에서도 진정한 ‘회전문 관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집국

The AsiaN 편집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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