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은식 칼럼] 육사폐지론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려는 정치의 독선”

육사 2023년 하계훈련 장면

책임의 전가인가, 제도 파괴의 음모인가

최근 불거진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 폐지론은 그 배경과 논리를 살펴볼 때, 단순한 제도개혁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정치적 책임을 전가하고, 특정 사건을 빌미로 국가 안보 체계를 뿌리째 흔들려는 파쇼적 발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관련 논란이 불거지자,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은 이 사건에 연루된 몇몇 육사 출신 장성들의 이름을 도마에 올렸고, 급기야 “육사를 폐지하자”는 주장까지 제기되었다. 

그러나 개별 인사의 정치적 판단이나 도덕적 과오는 철저히 개인 차원에서 책임져야 할 사안이다. 이를 해당 인사의 출신 집단 전체의 문제로 확장시키는 것은 비약이며, 건강한 민주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논리의 도약이다. 사법부가 오판했다고 해서 법원을 없애자는 주장이 가능한가? 국회가 잘못된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국회를 해산해야 하는가? 언론이 편파보도를 했다고 해당 언론사를 폐간하자고 주장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몇몇 출신자의 일탈로 국가 최고 군사교육기관인 육사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그 자체로 논리적 결함을 내포한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주장은 정치적 정당성과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책임과 자율, 그리고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전제로 작동한다. 특정 인물의 잘못을 이유로 전체 제도를 부정하고 폐기하려는 시도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며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는 모순된 행위에 불과하다.

국방의 기둥을 허무는 어리석음

육사는 1946년 창설 이래, 수많은 장교를 배출하며 국가안보의 중추 역할을 해왔다. 6·25전쟁 당시 아직 정식 임관도 하지 않은 사관생도들이 총칼을 들고 전선에 나섰고, 다수가 꽃피기 전 희생되었다. 월남전 등 수많은 분쟁과 국지전에서도 육사 출신 장교들은 가장 먼저 현장에 투입되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국방의 최일선에서 조국을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되물어야 한다. 진정 명문이란 무엇인가? 사회에서 명문대학이라 불리는 곳들이 지적 엘리트를 양성한다면, 육사는 생명을 걸고 국가를 지키는 이들을 양성한다. 생존만을 목적으로 하는 개인주의가 만연한 시대, 공동체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결의로 무장한 청년들을 배출하는 기관이야말로 명문 중의 명문이 아닌가?

육사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결국 육사가 존재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특히 국방 해체나 체제 전복에 방해되는 국가 정체성을 제거하려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제도개혁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체성을 흔들고 국가안보를 무력화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육사가 사라진다는 것은 대한민국을 지킬 마지막 보루 하나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우리 스스로의 생존을 위협하는 자해적 선택이 될 수 있다.

비판과 파괴는 다르다

어떤 제도든 개선이 필요할 수 있다. 육사 역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개혁과 성찰을 거쳐야 할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제도개혁과 제도 폐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개혁은 제도의 본령을 유지하면서 그 기능을 향상시키는 작업이라면, 폐지는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폭력적인 방식이다.

육사 폐지론은 비판을 가장한 파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육사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정 인사들을 비난하며, 전체를 매도하려는 감정적·이념적 편향이 도사리고 있다. 이는 건설적 비판이 아닌 정치적 마녀사냥이다. 그 타깃이 누구든 간에, 민주주의는 이러한 마녀사냥의 희생양을 절대로 용인해서는 안 된다.

육사는 비판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구체적 제도 운영의 문제에 대한 논의여야지,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식의 이념투쟁이어서는 안 된다. 제도는 사람을 통해 움직이며,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실수를 통해 제도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건강한 민주주의이며, 책임 있는 시민사회의 모습이다.

육사 폐지론은 단순한 논쟁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기본가치와 안보체계를 뒤흔드는 중대한 사안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냉철한 판단과 균형 잡힌 시선으로 이 논란을 직시하고,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감행되는 정치적 폭력을 단호히 거부하는 것이다. 진정한 개혁은 제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제도로 바꾸려는 노력에서 출발해야 한다. 육사는 그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전 1기갑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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