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3일 함안 복합문화관에서 이영자 시인의 시선집 출간을 축하하는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시인과 교분이 깊은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함께했다.
이영자 시인은 우리 나이로 올해 87세다. 마산·창원 등에서 시인과 인연을 맺은 이들은 모두 그를 ‘영자 누나’라고 부른다. 이번 시선집 <씨동무 못자리>는 그동안 펴낸 아홉 권의 시집에서 작품을 추려 엮은 책이다.
시인은 한때 마산의 문화 중심지였던 창동에서 작은 밥집을 운영했다.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었던 그곳에서 시인을 처음 만났다. 내가 이영자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것은 밥집을 꾸리고, 이후 시골로 돌아가 살면서 몸소 겪은 삶을 꾸밈없이 담담하게 노래하기 때문이다.
출판기념회를 준비한 이순일 선생에게서 시인의 시 세계에 대해 한 말씀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다른 시인의 작품세계를 이야기할 만한 처지는 못 되지만, 오랜 인연에 기대어 몇 마디를 나눴다.
그날의 이야기를 옮기며 이영자 누님의 시선집 간행을 다시 한번 축하한다.

“반갑습니다. 먼저 이영자 시인과의 인연을 떠올립니다. ‘노래하는 철부지’ 우음 고승하 선생, 고인이 되신 ‘창동의 허재비’ 이선관 시인과 함께 창동에 있던 누님의 밥집 ‘성광’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올해 함안 성산이씨 종친회에서 오랜만에 다시 뵈었습니다. 그때 문중의 촌수로는 제게 할머니뻘이 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나 제 지인들이 모두 ‘영자 누님’이라 부르니 저도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누님이 시집 한 권을 건네주셨습니다. 그 안에 실린 「찔레야」를 제가 연재하던 인터넷 매체에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시선집 147쪽에도 실린 시입니다.
<찔레야>
찔레야 네 저고리
하루만 빌려 입자
나만큼 늙은 내 친구가
보고 싶다 만나자 조르는데
이 물골로 나타나면 그가 알아보겠나
내 친구 목소리는 아직 아이 같은데
아이가 늙은 나를 알아보겠나
찔레야 하루만 네 저고리 빌려 입자
우리 어린 날 소꿉살이 때
너는 사금파리에 담긴 소복한 쌀밥이었으니
내 친구 네 향기면 금방 알아보리라.
저는 찔레꽃에 관한 시와 노래, 동요를 소개하면서 누님의 시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이 시가 참 좋다. 꾸밈이 없다. 가슴이 부르는 대로 그냥 옮겨 적은, 정말 찔레꽃 같은 시다. 찔레꽃 그 하얀 빛깔과 그윽한 향기가 느껴진다. 마침 찔레꽃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이 시가 내게 선물처럼 배달된 것 같다.’
오늘은 같은 시를 쓰는 한 사람으로서 부러움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제 느낌을 나누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누님의 시는 읽기 쉽고 편안합니다. 우리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뜻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말과 표현이 꾸밈없이 맑습니다. 머리로 지어낸 글이 아니라 가슴이 부르는 노래를 그대로 옮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읽기 좋은 시가 곧 좋은 시라는 것이 평소 제 생각입니다.
누님의 시는 따뜻합니다. 사람의 냄새와 삶의 향기가 살아 있어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가슴으로 울림이 전해집니다. 어떤 시는 촉촉한 봄비처럼 가슴을 적시고, 어떤 시는 가만히 미소 짓게 합니다. 한여름 나무 그늘에서 맞는 바람처럼 시원하게 다가오는 시도 있습니다.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따뜻한 눈길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님의 시는 살아 있고 자연스럽습니다. 꾸밈이나 기교를 앞세우지 않아, 애써 가꾸지 않아도 제 모습으로 피어나는 들꽃처럼 맑고 향기롭습니다. 그 향기는 때로 깊은 아릿함으로, 때로 고향의 포근함과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이 생생함은 누님이 온몸으로 살아오신 삶에서 비롯됐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겪은 아픔과 기쁨이 시 속에 녹아 있습니다. 누님에게는 일상의 모든 것이 시의 소재이자 내용입니다. 오랜 세월이 빚어낸 맛과 향기, 흉내 낼 수 없는 삶의 깊이가 쉬운 시 속에 알알이 담겨 있습니다.
시와 문학, 예술의 여러 기능 가운데 제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위로와 기쁨입니다. 지금은 사람뿐 아니라 지구의 뭇 생명까지 함께 앓고 있는 시대입니다. 누님의 시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와 공감은 그 자체로 작은 치유의 힘이 됩니다.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살아가는 잔잔한 기쁨을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이 시들은 그렇게 삶을 살아낸 누님의 고백이자 노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