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올림픽공원 광장 4개월①] 기업인 조영현(63) “양복 차림으로 시작한 봉사…광장 지키는 분들 생각하면 안 나올 수 없어”

올림픽공원에서 선거 부정 의혹의 규명을 요구하는 외침이 시작된 지 10월 5일로 만 4개월을 맞았다. 아시아엔은 10월 3일 오전 현장에서 63세 기업인 조영현씨, 50대 후반의 피아니스트 정씨, 79세 윤기섭씨를 만나 참여 계기와 지난 넉 달의 경험, 앞으로의 바람을 들었다. 인터뷰는 녹취를 바탕으로 반복되는 표현을 덜어내고 주제별로 정리했다. 선거 부정과 정치 현안에 관한 발언은 인터뷰이의 주장과 견해이며, 참가 규모 등 별도 확인되지 않은 수치는 발언자의 추산으로 표기했다. <편집자>

조영현씨는 “왜 사람들이 이곳에 모였는지부터 봐주셨으면 한다. 참가자들은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문제에 대해 설명과 검증을 요구하고 있다. 투표용지가 남아 있는데 투표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는 점을 납득하지 못하는 거다. 저희가 투표용지를 지키겠다고 하는 것도 그 불신 때문”이라고 했다. 조씨 옆은 참가자들이 손에 드는 피켓 작업을 하는 캘리그래퍼. 여기 피켓 그림 봉사자는 37명에 이른다고 한다. <사진 이상기>

조영현씨는 처음 올림픽공원 현장을 찾던 날 사무실에서 일하다 양복 차림 그대로 왔다고 말했다. 그날부터 후원 물품을 정리하고 물을 나르며 피켓을 만들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들에게 찜질방 이용권을 나눠주고, 숙소와 씻을 곳을 마련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서울대 기계설계학과 83학번으로 시스템 엔지니어링 회사를 운영하는 그는 회사명과 직함을 묻자 “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기 와서 한 일과 현장의 내용이 중요하다”고 했다. 현장 인터뷰 도중에도 후원 물품을 가져오는 사람의 전화를 받아 전달 장소를 안내했다.

Q. 언제부터 이곳에 나오셨습니까.
A. 6월 5일부터 나왔습니다. 저는 원래 거리 집회에 참여하던 사람이 아닙니다. 이번에 처음 나왔어요. 그날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양복 차림 그대로 왔습니다. 이후 거의 빠지지 않고 이곳에 와서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Q. 처음 현장을 찾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A. 저는 TV를 잘 보지 않습니다. 유튜브로 잠실 쪽 투표소에서 벌어진 상황을 봤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경찰이 고령자와 젊은 사람들을 끌어내는 모습을 영상으로 봤어요. 저는 그 장면에 분노했습니다. 제 눈에는 자신의 투표권 문제에 항의하고 설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공권력이 그렇게 행사돼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부정선거 문제 자체보다 공권력의 대응 방식 때문에 이곳에 왔습니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Q. 그전부터 부정선거 의혹에 관심이 있었습니까.
A.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했고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나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가능할까 싶었어요. 그런데 이번 상황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투표하려는 사람들이 투표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와 그에 대한 대응을 보며 문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Q. 첫날 이곳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A. 오후 3시쯤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이 있었고, 후원 물품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먼저 물건을 정리했습니다. 청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물을 나눠주고 날랐습니다. 항의의 뜻을 전달할 피켓도 필요했는데 인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그렸습니다.

Q. 참가자들이 핸드볼경기장 주변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A. 이곳에 옮겨진 투표용지를 검증할 때까지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안에 송파구의 투표용지가 보관돼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그것이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지거나 훼손될 가능성을 우려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출입구마다 자리를 맡아 지키고 있습니다. 선관위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에 투표용지가 이곳으로 옮겨진 뒤에도 사람들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Q. 밖에서는 “무슨 권한으로 출입을 막느냐”, “경기장 업무를 방해하는 것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 질문에는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A. 왜 사람들이 이곳에 모였는지부터 봐주셨으면 합니다. 참가자들은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문제에 대해 설명과 검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투표용지가 남아 있는데 투표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는 점을 납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투표용지를 지키겠다고 하는 것도 그 불신 때문입니다. 참가자들은 이를 참정권과 주권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Q. 현장 활동으로 소송이나 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생각하고 계십니까.
A.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업무방해 문제로 소송을 당하거나 벌금, 과태료를 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들이 참여했으니 누구에게 책임을 묻겠느냐고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현장에 머무는 사람들의 모습과 활동이 채증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담 때문에 자원봉사자들이 소극적으로 바뀌거나 현장을 떠나는 경우도 있다고 봅니다.

Q. 이곳에는 정해진 지도부나 운영 조직이 있습니까.
A.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자발성입니다. 이곳을 유지하는 세 축이 있습니다. 첫째는 광장에 직접 나오는 시민들입니다. 둘째는 현장에 오지는 못해도 물품을 보내며 격려하는 시민들입니다. 셋째는 그 물품을 받아 정리하고 현장의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자원봉사자들입니다. 전국에서 보내주시고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입니다. 누가 시켜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자신도 무언가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후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조영현씨는 이렇게 말한다. “이곳에서 변화의 가능성과 희망을 보기 때문에 나옵니다. 무엇보다 광장에 나와 목소리를 내는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제가 안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분들이 계속 이곳을 지키고 있는데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이상기>

Q. 자원봉사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A.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직장을 휴직하고 이곳에서 지낸 사람도 있었고, 일을 마친 뒤 와서 밤을 새우고 다시 출근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약 180명이 돌아가며 봉사했다고 봅니다. 이후 체력과 생계의 한계가 생기면서 본업으로 돌아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은 제 추산으로 약 60명 정도입니다. 광장에 나오는 사람이 줄면 필요한 봉사 일도 줄어듭니다. 그에 따라 인원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Q. 넉 달 동안 현장을 지켜오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습니까.
A.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들입니다. 옷만 챙겨 무작정 올라온 사람들도 있었어요. 어디서 자고 씻느냐고 물으면 제대로 쉬지 못하고 현장에 머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대로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찜질방 이용권을 사서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씻고 잠깐이라도 쉬었다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수요가 많아지고 비용도 부담이 되니 다른 분들이 숙소를 마련해주셨습니다. 중앙고 동문들이 남녀 청년들이 따로 이용할 수 있는 오피스텔을 마련해주기도 했습니다. 하남의 한 분은 자신의 건물 공간을 내주고 먹고 씻고 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최근에는 자원봉사 청년들이 씻을 수 있도록 수영장 이용권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당 월 이용료가 8만원입니다.

Q. 멀리서 오는 참가자들도 많습니까.
A.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젊은 여성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정말 고맙습니다. 가까이 사는 사람도 나오기 쉽지 않은데 그렇게 먼 곳에서 찾아오는 것이잖아요. 지방에서 버스를 타고 오신 분들이 돌아갈 때는 빵과 음료 같은 것을 챙겨드립니다. 내려가는 길에 드시고, 식사 비용도 조금 아끼시라는 뜻입니다. 만약 부산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 제가 그곳까지 갈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Q. 오랜 시간 현장을 유지하는 데 어떤 지원이 있었습니까.
A. 물과 음식부터 쉬는 데 필요한 물품까지 시민들이 보내주셨습니다. 자원봉사자들에게 도시락을 제공해준 동문회와 단체들도 있습니다. 직접 나와 봉사하는 분도 있고 물품으로 마음을 전하는 분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고령 참가자들이 앉을 수 있도록 의자도 들어왔습니다. 저도 의자를 보탰습니다. 현장에 필요한 것이 생기면 각자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돕는 것입니다.

Q. 직접 밤을 새운 적도 있습니까.
A. 초기에 일곱 번 밤을 샜습니다. 그런데 체력이 따라주지 않더군요. 저도 일이 있기 때문에 계속 이곳에 머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연락하면서 필요한 일을 나눠 하고 있습니다.

Q. 참가 인원도 따로 기록하고 계십니까.
A. 물과 태극기의 배포량을 보고, 현장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구역별 면적을 살펴 추산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기록을 남기려고 했습니다. 관련 자료도 가지고 있습니다. 직접 현장에 참여하며 관찰한 내용을 근거로 계산했습니다. 제 자료가 현장 상황을 잘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북치는 여성 참가자 <사진 ‘젊은시선’>

Q. 지금까지의 누적 참가 규모는 어느 정도로 보십니까.
A. 제 추산으로는 연인원 620만~630만명 정도입니다. 잠실의 투표소 주변에 모였던 인원은 빼고, 6월 5일부터 올림픽공원에 나온 사람들을 계산한 것입니다. 100일까지는 날짜도 정확히 세었습니다. 이후에는 날짜를 세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기간은 다시 확인해야 하지만, 6월 5일 시작했으니 10월 5일이면 만 4개월입니다.

Q. 같은 사람이 여러 날 나온 경우도 포함한 연인원이라는 뜻이지요.
A. 그렇습니다. 시간대별로 머물렀다 가는 사람들을 감안한 것입니다. 동시에 그만큼의 사람이 있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Q. 시간대는 어떻게 나눠 보셨습니까.
A. 대략 세 구간으로 봅니다.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그후 밤 11시까지, 그리고 다음 날 아침까지입니다. 다만 시간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 표를 보면서 다시 설명해야 합니다. 초기에는 지방에서 올라와 밤을 새우고 2박 3일 머물던 청년들도 있었습니다. 퇴근 시간 이후에는 서울과 수도권의 청년들이 왔고, 막차를 탈 수 있는 시간까지 활동하다 돌아갔습니다. 그중 일부는 밤을 새우고 첫차를 타고 갔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현장이 유지됐습니다.

Q. 참가자들의 연령 구성도 달라졌습니까.
A. 제 관찰로는 초기에는 청년들이 60~70% 정도였습니다. 대략 청년과 기성세대가 7 대 3 또는 6.5 대 3.5 정도였다고 봅니다. 그런데 7월 17일 전후부터 구성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 이전과 이후를 나눠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시간대라도 참여하는 사람들의 구성과 활동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10월 3일 밤 올림픽공원 광장에 모인 시민들 <사진 조영현>

Q. 올림픽공원에서 청년들이 줄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들은 어디로 갔다고 보십니까.
A. 성수동과 홍대, 강남역 등으로 갔습니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도 활동합니다. 안양의 범계나 인덕원역, 오산역, 인천의 부평역과 동인천역, 김포시청 앞, 의정부 등으로 퍼진 것입니다. 광주에서는 옛 전남도청 앞과 선관위 주변에서도 했고, 전주·군산·목포에서도 이어졌습니다. 포항·울진·영덕, 강릉·속초·춘천·원주 등에서도 활동이 이뤄졌다고 파악했습니다. 제가 파악한 곳은 전국 63곳 정도입니다. 올림픽공원의 숫자는 줄었지만, 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주권 회복을 요구하는 활동은 전국으로 확산됐다고 봅니다. 그래서 전체 동력은 더 커졌다고 해석합니다.

Q. 제주에서도 활동이 있었습니까.
A. 제주에서도 활동이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현지에서 영향력이 있는 유튜버들이 참여했습니다. 정확한 장소와 세부 내용은 자료를 찾아봐야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올림픽공원에 보이는 사람의 숫자만으로 전체 움직임을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Q. 해외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습니까.
A. 미국 뉴저지와 시애틀, 버지니아, 워싱턴 D.C. 인근에서도 있었다고 파악했습니다. 캐나다와 호주,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도 활동이 있었고, 프랑스에서도 본 것 같습니다. 다만 해외에서는 단발성으로 끝나고 계속 이어지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현지의 호응이나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것 같습니다. 이후에는 한국의 올림픽공원에 물품을 후원하는 쪽으로 관심이 이어진 사례들을 봤습니다. 동남아시아의 사례는 제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Q. 언론의 취재와 보도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A. 초기에는 사람들이 적은 시간에 와서 쓰레기나 분리수거장을 촬영하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밤을 샌 청년들이 출근하려고 빠져나가는 이른 아침에는 사람이 적습니다. 그 시간의 모습만으로 현장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저는 기자들에게 사람들이 왜 이곳에 나왔는지도 봐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찾아오는 젊은 기자들이 고생이 많다며 안부를 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만남이 기사로 충분히 전해지지는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Q. 외국인들도 옵니까.
A. 근처 경기장에서 국제대회가 열리면 외국인들이 지나가다가 물어봅니다.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에서 왔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문제에 항의하고 정부의 설명과 검증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모여 있다고 설명합니다. 해외에서 찾아와 관심을 보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현장을 함께 돌아보며 제가 준비한 자료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Q. 엔지니어로서 선거 결과와 통계에 의문을 갖게 됐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뜻입니까.
A. 저는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수치와 통계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전투표와 당일투표의 결과 차이, 재외투표 결과 등을 보며 제 나름대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투표율 입력 시점에 관한 의혹도 검증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전산 조작의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문을 풀려면 자료를 공개하고 조사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지난 6월 9일 밤 올림픽공원 참정권 요구 집회에 주인을 따라온 개가 ‘당일 투표 수개표’ 구호를 걸고 있다. <사진 이상기>

Q. 외부 세력의 개입 가능성도 의심하십니까.
A. 저는 중국 등 외부의 영향이 있을 가능성을 의심합니다. 정치권의 정책 방향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것은 제가 현재 갖고 있는 판단입니다.

Q. 정당 활동을 한 적도 있습니까.
A. 국민의힘 당원이었습니다. 약 17년 동안 당비를 내는 정도의 당원이었습니다. 하지만 한동훈씨의 행보를 보고 탈당했습니다.

Q. 전한길씨의 활동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A. 선거 의혹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준석씨와의 토론을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도 있다고 봅니다. 광장에 나와 연설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참여를 이끌어낸 부분도 있습니다.

Q. 실명과 회사 직함을 소개해도 되겠습니까.
A. 실명은 관계없습니다. 회사나 직함을 거창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스템 엔지니어링 회사를 운영하는 개인으로 소개하면 됩니다. 저는 이곳에서 머슴 노릇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여기 와서 한 일과 현장의 내용이 중요한 것입니다.

Q. 오랫동안 봉사하면서 힘든 일도 있었을 텐데, 계속 나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A. 수모를 겪고 인격적으로 모욕을 당했다고 느낀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곳에서 변화의 가능성과 희망을 보기 때문에 나옵니다. 무엇보다 광장에 나와 목소리를 내는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제가 안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분들이 계속 이곳을 지키고 있는데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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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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