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건 칼럼] 속눈썹…나를 보러 와준 얼굴

몇 년 전 델포이에 갔을 때였다. 고대 그리스의 델포이 고고학박물관에서 한참 전시물을 둘러보다가 뜻밖의 곳에서 눈길을 멈추었다. 기원전 47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델포이의 전차병」이었다. 청동으로 주조된 젊은 남자의 얼굴은 놀라울 만큼 고요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눈가에 아주 가느다란 선들이 보였다. 속눈썹이었다. 그 작은 속눈썹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 후 속눈썹의 역사를 찾아보게 되었고, 얼마 전에는 그 결과를 논문으로 썼다. 고대 그리스에서 속눈썹은 단순한 미용의 대상이 아니었다. 절제와 내적 조화를 뜻하는 sōphrosynē와 연결되기도 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속눈썹은 아름다움과 여성성의 표현이 되었고, 오늘날에는 마스카라와 인조 속눈썹, 속눈썹 연장과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논문을 쓰고 난 뒤에도 속눈썹에 관한 생각은 끝나지 않았다.

어느 날 베트남전 당시의 한 미국 간호사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1968년, 스물세 살의 Grace Lilleg은 베트남의 제12후송병원(12th Evacuation Hospital)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젊은 병사들이 헬리콥터를 타고 끊임없이 실려 왔다. 심한 외상을 입은 병사들도 많았고, 모두가 살아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Grace는 근무에 들어가기 전에 마스카라를 발랐다. 전쟁터에서 마스카라라니.
그녀가 훗날 설명한 이유는 의외로 소박했다. 젊은 병사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그곳의 간호사들은 죽어가는 병사들을 혼자 두지 않았다. 곁에 앉아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Grace는 자신들이 그들에게 “어머니, 아내, 여자친구(mother, wife, girlfriend)”와 같은 정서적 지지가 되어주었다고 회상했다.
그 말을 읽으면서 오래전 읽었던 중국 고전소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늙고 병든 제환공이 아무도 돌보지 않는 침상에 누워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그때 한 궁녀가 위험을 무릅쓰고 몰래 음식을 가져왔다. 이미 아무런 힘도 없고, 그 궁녀에게 보상해 줄 수도 없는 왕이었다. 환공이 물었다. “어찌 아무도 나를 보러 오지 않는 것이냐?” 궁녀는 그에게 음식을 먹이고, 밖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그 궁녀의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순간의 환공에게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었을 것이다. 아름다움은 얼굴에만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를 찾아와 주는 마음이 얼굴을 아름답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을 의리라고 해야 할까. 오래 모신 정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아무런 보답을 바라지 않고 베푸는 무주상보시라고 해야 할까. 이름은 무엇이든 좋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사람에게 음식을 들고 찾아가는 마음은 아름답다.
베트남의 간호사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젊은 병사들이 간호사들에게 무엇을 돌려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병사는 그날을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간호사들은 곁에 남았다. 그들이 마스카라를 바른 것은 아름다운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젊은 병사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 문득 Tom Jones가 부른 「Green, Green Grass of Home」이 생각났다. 노래 속 죄수는 죽음을 앞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어머니가 있고 메리가 있다. 고향의 푸른 잔디가 펼쳐진다. 그러나 마지막에 우리는 그것이 현실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죽음 앞에서 그가 찾아간 곳은 감옥도, 사형장도 아니었다. 어머니와 메리가 있는 집이었다.

또 하나 떠오른 영화가 있다. Michael Powell과 Emeric Pressburger의 「천국으로의 계단」(A Matter of Life and Death)이다. 비행기 조종사 Peter Carter는 죽음의 문턱에서 한 여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아직 얼굴을 본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가진 여자를 보고 싶어진다. 목소리가 얼굴을 부르고, 얼굴은 기억을 부른다. 베트남의 젊은 병사에게는 눈앞에 실제 얼굴이 있었다. 어머니일 수도 있고, 아내일 수도 있고, 여자친구일 수도 있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의 가장 작은 부분에 속눈썹이 있었다.
1968년 그 전쟁에는 나에게도 개인적인 연결이 하나 있었다. 당시 나의 장인 송익훈 중령은 주월 한국군 비둘기부대 101이동외과병원의 병원장이자 영상의학과 의사로 베트남 붕타우에서 반년 동안 근무하셨다. 한 의사는 몸속을 들여다보았고, 한 간호사는 눈앞에 자신의 얼굴을 내어주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하나의 작은 해부학적 구조를 통해 생각하고 있다.
속눈썹. 그저 눈꺼풀 가장자리에 난 몇 가닥의 털이다. 사람은 그것을 길게 만들고, 짙게 만들고, 때로는 마스카라를 칠한다.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아름다움에는 다른 얼굴도 있는 것 같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사람에게 찾아가는 것. 굶주린 사람에게 음식을 가져가는 것. 죽어가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것.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 사람 앞에 얼굴을 내어주는 것.
며칠 전 아내의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함께 갔다. 아내와 짝이었던 한 친구에게 요즘 가장 걱정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가 말했다. “마누라가 먼저 죽을까 봐 걱정이야.” 농담처럼 한 말이었지만 내 마음에는 오래 남았다. 먼저 떠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나를 바라보아 주던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사람에게는 평생 자신을 바라보아 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어머니의 눈. 연인의 눈. 아내의 눈. 그리고 마지막에는 낯선 간호사의 눈일 수도 있다. 그 눈을 둘러싼 작은 속눈썹 하나. 델포이의 전차병에게 조각되어 있던 속눈썹에서, 베트남의 간호사가 마스카라를 발랐던 속눈썹까지. 나는 이제 속눈썹을 단순히 아름다움의 상징으로만 보기가 어렵다.
어쩌면 아름다움이란,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나를 보러 와준 얼굴을 만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