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군사관학교가 다시 논쟁의 한복판에 섰다. 정부는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통합한 4년제 ‘국군사관학교’를 대전 자운대에 창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방부는 이를 장교 양성체계 개혁과 군의 새로운 정체성을 세우기 위한 작업으로 설명하고 있다. 반면 육·해·공군 전임 참모총장 46명은 각 군의 전문성과 정체성이 훼손될 수 있다며 재검토를 요구했다. 오는 8월 26일에는 국방부 주최 공청회도 예정돼 있다.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은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8월 5일 역대 군사쿠데타와 육군, 육사 출신의 관계를 거론하며 사관학교 통합을 서둘러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에 보수 야권에서는 대통령의 육사 관련 발언 철회와 통합사관학교 추진 중단을 요구하는 결의안까지 나왔다.
육사의 공과와 한국군의 장교 양성체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놓고 정치권과 군 원로들의 주장이 충돌하는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 육사 생도대장을 지낸 최승우(육사 21기) 전 예산군수와 김진욱(육사 36기) 사단법인 21세기군사연구소 소장이 나눈 대화가 눈길을 끌었다.
“4년 동안 공동체에 대해서 계속 고민을 하니까 참 좋은 일이지요. 그런 조직이 어디 있어요?”
김 소장은 선배 기수에는 서울대에 진학할 만한 우수한 학생들이 사관학교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가 강조한 것은 입학생들의 성적이나 육사라는 간판이 아니었다. ‘4년’이었다. 스무 살 안팎의 젊은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 공부하고 훈련하면서 4년 동안 공동체와 국가, 조직과 지휘관의 책임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최 전 군수는 그것을 ‘용광로’에 비유했다. “4년간이라는 어떤 그런 용광로가 없었다면 저런 고민과 생각을 치열하게 안 했었을지 몰라.” 그리고 덧붙였다. “4년간이 우리에게 용광로 같은 단련을 준 건 사실이야.” 이 말은 지금의 사관학교 논쟁에서 한번 곱씹어볼 만하다.
육사 출신이 군 고위직을 과도하게 차지해왔다는 비판과 육사를 통해 형성된 폐쇄적 인맥과 조직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는 충분히 따져볼 사안이다. 대통령 역시 육사 출신의 세력화와 군 상층부의 특정 출신 편중을 문제 삼으며 사관학교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문제와 ‘4년제 사관학교 교육 자체가 가진 의미’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육사를 개혁하는 것과 사관학교라는 교육방식이 만들어온 장점을 평가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4년 동안 함께 생활하고 훈련하면서 동료와 부하, 국가와 조직에 대해 생각하는 경험은 일반 대학에서는 얻기 어려운 사관학교 특유의 교육과정이다. 그렇다고 그 ‘용광로’를 지나온 사람이 언제나 훌륭한 군인으로 남는다는 뜻도 아니다.
대화는 바로 그 지점까지 이어졌다. 최승우 장군은 “사람은 훌륭했다가도 나중에 변질되기 때문에 변질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젊은 시절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세월이 흐른 뒤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내 미래의 모습일 수도 있다”고 했다. 김진욱 소장은 사람이 한쪽 극단에 있다가 정반대 극단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며 “극과 극은 통한다”고 말했다. 이 대목은 육사 논쟁을 조금 다른 곳으로 이끈다. 좋은 학교가 좋은 사람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4년 동안 강한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평생 그때의 가치와 원칙을 지킨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용광로’를 거쳤다고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권력을 갖게 된 뒤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돌아봐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군이 지금 물어야 할 질문도 여기에서 출발할 수 있다.
육사를 유지할 것인가, 세 사관학교를 통합할 것인가라는 제도의 선택만으로 논쟁을 끝낼 일이 아니다. 각 군의 전문성은 어떻게 살릴 것인가. 특정 출신이 군의 인사와 지휘구조를 독점하지 않도록 어떻게 제도를 바꿀 것인가. 동시에 젊은 장교들에게 4년 동안 공동체와 책임, 국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게 했던 사관학교 교육의 장점은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정부는 사관학교 통합이 “잘못된 역사와 단절하고 헌법과 국민에 충성하는 국군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초석”이라고 설명한다. 반대하는 전임 참모총장들은 물리적 통합보다 우수한 인재가 군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장교 양성체계 자체를 발전시키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양쪽 모두 결국 ‘어떤 장교를 길러낼 것인가’라는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사관학교라는 용광로를 없앨 것인가를 묻기에 앞서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그 용광로에서 무엇을 녹이고, 무엇을 단련하며, 어떤 군인을 만들어낼 것인가. 그리고 그 용광로를 나온 사람들이 권력을 가진 뒤에도 처음 품었던 공동체에 대한 고민과 책임감을 지키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의 사관학교 개혁 논쟁이 거기까지 나아갈 때, 육사 4년을 둘러싼 노장들의 회고도 단순한 추억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