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사람을 그리며 세상을 묻다>…40년 기자 신건호가 사람의 얼굴에서 찾은 시대의 질문

‘밝은 세상 맑은 소리-신건호의 응답하라’…어머니에서 5·18·세월호·언론까지, 120편에 담은 사람과 시대
[아시아엔=이상기 아시아엔 발행인, 전 한겨레신문 기자·한국기자협회 회장] 책 표지를 한동안 들여다봤다. 어머니가 아이를 품고 있고, 그 아래로 한 줄의 선이 내려와 기자의 펜으로 이어진 뒤 다시 물음표가 된다. 신건호 기자의 신간 <사람을 그리며 세상을 묻다>를 이보다 잘 설명하는 그림이 있을까 싶다. 사람을 품고, 그 사람의 삶을 기록하고, 끝내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것. 신건호가 40년 가까이 언론 현장에서 해온 일도 결국 그것이 아니었을까.표지 위에는 ‘밝은 세상 맑은 소리-신건호의 응답하라’라고 적혀 있다. 책 제목에는 ‘사람’과 ‘세상’과 ‘묻다’가 나란히 놓였다. 나는 이 세 단어 가운데 무엇보다 ‘사람’에 눈길이 간다. 좋은 글은 세상을 설명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읽고 난 뒤 마음 한켠에 질문 하나를 남긴다. <사람을 그리며 세상을 묻다>를 덮고 내게 남은 질문도 결국 하나였다.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신건호는 세상을 먼저 말하지 않는다. 사람을 먼저 본다. 정치도 사회도 역사도 결국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삶으로 돌아온다는 믿음이 책 곳곳에 배어 있다. 그는 40년 가까이 언론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이름난 사람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칠 법한 사람들, 시대의 상처를 말없이 견딘 사람들, 쉽게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더 오래 눈길을 준다. 그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개인의 사연은 어느새 사회의 문제가 되고, 한 사람의 아픔은 우리가 함께 답해야 할 질문으로 넓어진다.
책 앞부분의 ‘모성의 서사’가 특히 그렇다. 시골에서 8남매를 키운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는 글에는 거창한 사회비평보다 먼저 사람 냄새가 난다. 나는 이 대목이 신건호 글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문제를 다루는 글은 자칫 차갑고 관념적으로 흐르기 쉽지만 신건호의 글은 사람의 체온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정치와 사회를 말하다가도 결국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회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데로 돌아온다.
세월호를 다룬 글에서는 그 질문이 더 무거워진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기억만을 요구한 사건이 아니었다. 국가란 무엇인지, 공동체의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물었다. 신건호 역시 희생자와 유가족의 아픔을 바라보는 데서 멈추지 않고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우리 사회는 이후 무엇을 바꾸었는지 되묻는다. 기억한다는 것은 결국 질문하는 일인지 모른다. ‘잊지 않겠다’고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뒤 우리는 무엇을 달리했는가’를 묻는 것, 신건호가 세월호를 붙들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언론에 대한 그의 생각도 같은 줄기에 놓여 있다. 책의 ‘정론직필’과 ‘신문 칼럼’, 남도일보에 연재한 ‘신건호의 서치라이트-응답하라’를 읽다 보면 기자가 무엇을 보아야 하고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서치라이트’는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디를 비추느냐다. 권력의 목소리가 너무 크게 들릴 때 작은 목소리를 찾아가는 것, 모두가 당연하다고 할 때 한 번 더 의심하는 것,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곳에 빛을 비추는 것. 언론의 일은 결국 무엇을 세상 앞에 드러내고 무엇을 묻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사람’과 ‘질문’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면 질문이 생긴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살아야 했을까, 왜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을까, 왜 사회는 약한 사람의 고통을 쉽게 지나쳤을까,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그런 질문들이 쌓이면 한 시대의 기록이 된다.

신건호가 KBC광주방송에서 제작했던 5·18 관련 다큐멘터리와 농민들의 삶을 담은 프로그램, 세월호 관련 글들이 이 책의 중요한 밑바탕이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5·18을 이야기할 때도, 농민을 이야기할 때도, 세월호를 이야기할 때도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역사를 거대한 사건의 연대기로만 기록하지 않고, 그 안에서 살고 울고 견디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의 얼굴로 기억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단순한 기자의 회고록이라고만 부르고 싶지 않다. 한 언론인이 지나온 길을 통해 바라본 ‘시대의 초상’에 더 가깝다. 120편의 글을 한 권에 묶은 만큼 글마다 온도는 다르다. 어떤 글에서는 개인적인 감성이 앞서고, 어떤 글에서는 사회비판의 목소리가 더 강하다. 하지만 그 밑을 흐르는 태도는 한결같다. 사람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치가 사람을 잊으면 정치에 묻고, 언론이 권력 쪽으로 기울면 언론에 묻고, 사회가 약자의 고통을 외면하면 공동체에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의 맨 앞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책을 덮고 나면 저자가 던진 질문보다 오히려 내게 돌아오는 질문이 더 많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가, 무엇을 보고도 못 본 척하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좋은 칼럼은 독자를 억지로 설득하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사람을 그리며 세상을 묻다>는 정답을 내놓는 책이라기보다 질문을 놓치지 말자고 권하는 책에 가깝다. 요즘 언론은 너무 빠르고 정치는 너무 시끄럽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건과 말이 쏟아진다. 이런 시대에 필요한 것이 더 많은 정보만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제대로 된 질문 하나가 더 중요하다.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신건호의 책은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사람을 보고, 이야기를 듣고, 삶을 기록하면서 세상의 방향을 묻는다. 사람을 그린다는 것은 한 사람의 삶을 기억하는 일이고, 한 사람의 삶을 기억하는 것은 그가 살아온 시대를 기억하는 일이다. 그리고 시대를 기억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있는지 묻는 일이다.
<사람을 그리며 세상을 묻다>. 제목처럼 단순하고, 오래 남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