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고맙습니다, 그녀들에게”…한국전쟁 부상병 곁을 지킨 호주 간호사들

<Australia Remembers 6: Wartime Nurses-Care and Compassion> 표지

오늘 시드니의 호주뉴질랜드추모관(ANZAC Memorial)을 찾았다. 생각보다 규모는 크지 않았다. 전시의 중심은 제1차 세계대전이었고, 한국전쟁을 따로 다룬 공간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사진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1941년 뉴캐슬 시내를 행진하는 구급간호봉사대(VADs march through Newcastle city, 1941).’

1941년 뉴캐슬 시내를 행진하는 구급간호봉사대(Voluntary Aid Detachment, VAD) 사진이었다. 그 옆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Thanks to the Ladies.”

전쟁을 떠올리면 먼저 군인과 전투가 생각난다. 총과 포탄, 전선과 희생, 그리고 죽음이다. 그러나 전쟁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부상자를 받아주고, 상처를 씻고, 붕대를 감고, 밤새 병상을 지키던 사람들이다. 그 가운데 많은 이가 여성이었다.

사진 황건

구급간호봉사대는 전쟁 중 의료와 간호를 지원했던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전통적인 의미의 전투병은 아니었지만 전쟁의 바깥에 있지도 않았다. 전쟁이 만든 상처가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나는 간호사와 구급간호봉사대 관련 전시를 꽤 오래 바라보다가 기념관을 나오며 작은 책 한 권을 샀다. 재키 핼핀(Jacqui Halpin)의 <호주는 기억한다 6: 전시 간호사들―돌봄과 연민(Australia Remembers 6: Wartime Nurses—Care and Compassion)>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해가 기울고 있었다. 하이드파크 나무 사이로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호텔로 돌아가기 전 벤치에 앉아 책을 펼쳤다.

몇 장을 넘기다 50~51쪽에서 익숙한 단어 하나를 만났다. Korea. 한국전쟁을 찾아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다. 호주뉴질랜드추모관(ANZAC Memorial)에도 한국전쟁을 위한 별도 공간은 없었다. 그런데 한국전쟁은 내가 산 책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책에는 한국전쟁 당시 호주 간호사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1952년 이후 약 30명의 호주 육군간호단(Royal Australian Army Nursing Corps, RAANC) 간호사들이 1955년까지 작은 그룹으로 교대 파견돼 서울의 영연방지역의료부대(British Commonwealth Zone Medical Unit)에서 근무했다.

그들이 일한 곳은 폭격으로 파손된 학교 건물이었다. 전기도, 수도도 제대로 없었다. 밤이면 다시 폭격을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도 감수해야 했다. 그곳에서 간호사들은 한국 전선에서 후송돼 온 부상자들을 돌봤다. 최전선에서는 떨어져 있었지만 결코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환자들은 다시 이동했다. 서울에서 김포로, 김포에서 일본 이와쿠니로. 20명의 호주 공군간호서비스(Royal Australian Air Force Nursing Service) 간호사들도 공중후송에 참여했다. 1951년부터 1953년까지 한국에서 이와쿠니로 후송된 영연방(Commonwealth) 환자는 1만2762명에 이르렀다.

숫자는 크다. 그러나 숫자만으로는 그 장면이 잘 보이지 않는다. 1만2762명. 그 하나하나에는 다친 몸이 있었을 것이다. 피가 났을 것이고 통증이 있었을 것이다. 가족을 떠올린 사람도, 다시 살아갈 수 있을지 두려워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간호사가 있었다. 전쟁의 한쪽에서는 몸이 부서졌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몸을 다시 살리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문득 영화 <어톤먼트(Atonement)>가 떠올랐다. 영화 속 브라이어니 탤리스(Briony Tallis)는 전쟁이 시작되자 간호사가 된다. 군인은 아니었지만 전쟁은 그의 삶도 완전히 바꾸어놓는다. 병원에서 부상병을 만나고 피와 상처와 죽음을 가까이에서 본다. 브라이어니에게 간호는 직업 이상의 것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속죄하려는 행위이기도 했다. 허구의 인물이지만 오늘 호주뉴질랜드추모관(ANZAC Memorial)에서 본 여성들의 모습과 묘하게 겹쳐졌다.

전쟁에는 총을 든 사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상처 입은 사람의 곁에 앉아 있던 사람도 있었다.

며칠 전 멜버른에서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호주군의 흔적을 찾아갔다. 풋스크레이(Footscray)의 한국전쟁 기념관에서 벽에 새겨진 340명의 이름을 보았다. 그들은 한국에서 목숨을 잃었다.

오늘 시드니에서는 그들을 살리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났다. 한쪽에는 이름이 있었다. 다른 쪽에는 손이 있었다. 전쟁을 기억한다는 것은 죽은 사람의 이름만 기억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 이름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애썼던 사람들을 함께 기억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시드니의 밤이 깊었다. 창밖은 이미 어둡다. 나는 오늘 호주뉴질랜드추모관에서 산 핼핀의 책을 다시 들고 있다. 표지에는 다섯 명의 간호사가 서 있다. 손끝으로 그들이 쓴 베일을 만져본다. 베일 부분만 조금 도드라지게 양각으로 만들어져 있다. 손끝에 작은 굴곡이 느껴진다. 평면의 그림이 잠시 입체가 된다.

다시 오늘 보았던 사진이 떠오른다. ‘1941년 뉴캐슬 시내를 행진하는 구급간호봉사대’ 그리고 그 옆의 짧은 문장. “Thanks to the Ladies.”

어쩌면 역사는 이렇게 기억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의 이름과 함께, 그 곁에서 상처를 돌보고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 했던 이들의 손을. 오늘 밤 책 표지의 다섯 간호사를 다시 바라본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Thanks to the Ladies.” 고맙습니다. 전쟁 속에서 사람을 살리려 했던 그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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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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