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왜 자유의 일부를 국가에 넘기는가.”
국가가 필요한 이유가 인간의 불안과 공포 때문이라면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내놓아야 하는가. 홉스의 대답은 사회계약이다. 하지만 사회계약을 단순히 “국민과 국가가 서로 약속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홉스의 논리를 놓치게 된다. 홉스에게 사회계약은 자연상태의 불안과 전쟁의 가능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이 서로의 자유를 제한하고, 그 대신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는 정치적 장치다.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상당한 자유를 가진다.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자유가 문제를 만든다.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면 상대도 나를 공격할 수 있다. 결국 모두의 자유가 공통의 규칙이나 권력에 의해 제한되지 않는 상태는 오히려 모두를 불안하게 만든다.
홉스가 보기에 이것이 자유의 역설이다. 자연상태의 인간은 자유롭다. 그러나 안전하지 않다. 국가 안의 인간은 자유를 일정 부분 제한받는다. 그러나 그 대가로 안전을 얻는다. 자유를 조금 제한하고 안전을 얻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홉스는 여기서 인간의 이성을 생각한다.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지만 계산도 한다. 계속 싸우는 것이 나에게도 좋지 않다는 것을 안다. 죽는 것이 두렵고, 평화롭게 살고 싶다. 그렇다면 자연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자연법이다. 자연권이 “나는 나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자유라면, 자연법은 평화를 추구하고 평화를 확보할 수 있다면 그것을 따라야 한다는 이성의 규칙이다. 모두가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상태에서는 평화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람들은 서로의 자유를 일정하게 제한하고 공통의 권력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도 나의 자유를 제한하겠다. 당신도 그렇게 하라.” 홉스의 사회계약은 이런 합의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중요한 특징이 등장한다. 주권자는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다. 흔히 사회계약을 개인과 국가가 맺는 계약이라고 생각하지만, 홉스에게 계약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서로 계약을 맺고 공통의 권력을 행사할 주권자를 세운다. 그리고 주권자의 행위를 자신들의 행위로 인정하고 그 결정을 따르기로 한다.
따라서 국가는 계약의 결과로 만들어진다. 국가가 처음부터 존재했던 신성한 질서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라면, 국가의 정당성 역시 인간의 필요에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홉스의 사상은 곧바로 불편해진다. 우리가 자유를 제한하고 만든 국가가 우리보다 훨씬 강한 권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연상태에서 각자가 가지고 있던 판단과 처벌, 폭력의 권한을 공통의 권력에 맡긴다. 홉스는 약속만으로는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약속을 지키게 하려면 그것을 강제할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홉스에게 국가에는 ‘칼’이 필요하다. 법을 집행하고 계약을 깨뜨렸을 때 제재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국가가 강력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자유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는 안전을 얻기 위해 자유를 제한한다. 그렇다면 자유란 무엇인가. 홉스에게 자유는 기본적으로 외부의 방해나 강제가 없는 상태다. 국가가 법을 만들고 행동을 제한한다면 그만큼 자유의 범위도 줄어든다. 그렇다고 홉스가 자유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유가 실제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제한이 필요하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모두가 무제한으로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서로의 자유가 충돌할 수 있다. 자유를 누리려면 오히려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 이상한 이야기다. 하지만 홉스가 말하는 자유는 이런 역설을 갖고 있다.
이 문제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범죄를 막기 위해 감시카메라를 설치할 것인가. 테러를 막기 위해 통신을 감시할 것인가. 감염병을 막기 위해 이동을 제한할 것인가. 공공의 안전을 위해 개인의 선택을 어디까지 제한할 것인가. 우리는 이런 문제를 만날 때마다 사실상 홉스가 던진 질문과 마주한다. 안전을 위해 우리는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
홉스가 던진 질문을 더 깊이 생각해보고 싶다면 안드레이 즈뱌긴체프의 영화 《리바이어던》(2014)과 조지 오웰의 《1984》를 함께 떠올려볼 만하다. 영화 《리바이어던》은 개인을 보호해야 할 국가 권력이 오히려 개인을 압도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1984》는 이 문제를 한층 더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국가가 안전과 질서를 명분으로 개인의 행동뿐 아니라 생각과 언어까지 통제한다면 자유는 어떻게 되는가. 두 작품은 안전을 위해 국가에 권력을 맡긴 뒤 그 권력이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런데 여기서 더 어려운 질문이 등장한다. 자유를 제한하고 만들어낸 국가가 너무 강해진다면 어떻게 되는가. 국가가 우리를 보호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를 통제하는 존재가 된다면? 홉스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다. 국가는 평화를 위해 강력한 권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 권력이 너무 강해진다면 국가 자체가 또 다른 공포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국가 권력은 도대체 얼마나 강해야 하는가.
《리바이어던》은 이제 이 불편한 질문 앞에 우리를 세운다. 3회에서는 국가가 우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강한 권력을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그 권력에는 어떤 한계가 필요한지 이야기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