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전쟁의 칼날 위를 걷다…의학 교리를 뒤집은 한 외과의사의 용기

한국전쟁은 수많은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그 속에서 태어난 혁신도 있었다. 프랭크 C. 스펜서는 전장에서 의학 교리를 뒤집었고, 현대 혈관외과의 문을 열었다. 그는 칼날 위를 걸었지만, 그 길 끝에는 수많은 생존자의 미래가 있었다.-본문에서.

이 기사는 황건 교수가 <Journal of Trauma and Injury>에 발표한 논문 ‘Walking on the blade: Frank C. Spencer and the courage to defy dogma in the Korean War’를 바탕으로 주요 내용을 기사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편집자>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이어진 한국전쟁은 국제정치의 격변기였을 뿐 아니라 외상외과 역사에서도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전장의 참혹함 속에서 한 젊은 미 해군 군의관이 당시의 의료 상식을 거스르는 결정을 내렸고, 그의 선택은 현대 혈관외과의 흐름 자체를 바꾸었다. 최근 Journal of Trauma and Injury에 실린 논문 ‘Walking on the blade: Frank C. Spencer and the courage to defy dogma in the Korean War’는 그 주인공 프랭크 C. 스펜서(Frank C. Spencer)의 이야기를 재조명했다.

1950년대 초 미군 의료 체계에서 팔다리 동맥 손상의 표준 치료는 단순했다. 결찰(ligation), 즉 손상된 혈관을 묶어 출혈을 막는 방식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긴 후송 시간과 낮은 수술 성공률 때문에, 전방 병원에서 혈관을 복구하려는 시도는 위험하고 무의미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 결과 기술적으로는 살릴 수 있었던 수많은 젊은 병사들이 팔과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당시 스펜서는 인천의 미 해군병원에 배치돼 있었다. 그는 기존 치료 원칙이 남긴 현실을 직접 목격했다. 걸어서 귀환할 수 있었던 병사들이 평생 장애를 안게 되는 모습을 본 것이다.

스펜서는 전방 병원에서도 동맥 복원 수술(arterial repair)을 시행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군 의료 체계를 거스르면 군법회의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상부 지시를 어기고 손상된 혈관을 직접 이어 붙이는 수술을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의료 행위를 넘어 자신의 경력과 자유를 건 결단이었다.

스펜서와 동료들은 약 9개월 동안 150건 이상의 혈관 복원 수술을 시행했다. 사용된 기술은 끊어진 혈관의 양 끝을 직접 연결하는 문합술(end-to-end anastomosis)과, 정맥을 이용해 손상 부위를 대체하는 혈관 이식술(graft interposition)이었다. 제한된 전장 환경 속에서 진행된 수술이었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당시 군 의료 체계가 공식적으로 채택한 결찰술은 빠르고 비교적 안전하다는 이유로 사용됐지만, 실제 사지 보존율은 2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했고 절단률은 70퍼센트를 넘었다. 환자의 생명은 구할 수 있었지만, 많은 병사들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했다.

반면 스펜서가 시행한 직접 혈관 복원술은 전혀 다른 결과를 보였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해 전장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지만, 실제 사지 보존율은 80~90퍼센트에 달했고 절단률은 20퍼센트 미만으로 크게 낮아졌다.

혈관 이식술 역시 효과적이었다. 환자의 정맥을 활용해 혈관을 대체한 이 방식은 70~80퍼센트의 높은 사지 보존율을 기록했고, 절단률은 약 20~30퍼센트 수준에 머물렀다.

결국 스펜서의 시도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절단이 최선’이라는 당시 군 의료의 통념이 틀렸음을 입증한 결정적 증거가 됐다.

스펜서는 명령 위반으로 처벌받는 대신, 의료적 성과와 용기를 인정받아 Legion of Merit(공로훈장)을 받았다.

그의 선택은 단순히 환자 몇 명을 살린 사건이 아니었다. 군 외상외과의 중심 원칙을 절단 중심 치료에서 혈관 복원 중심 치료로 이동시키는 계기가 됐다.

논문 저자인 한국 군의관 출신 성형·외상외과 전문의 Kun Hwang 교수는 스펜서의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강조한다.

대량 사상자 발생, 화생방 위협, 제한된 의료 자원 등 현대 군 의료 환경 역시 또 다른 ‘칼날 위의 선택’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교리와 규정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환자 생존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점을 스펜서의 사례가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한국전쟁은 수많은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그 속에서 태어난 혁신도 있었다. 프랭크 C. 스펜서는 전장에서 의학 교리를 뒤집었고, 현대 혈관외과의 문을 열었다.

그는 칼날 위를 걸었지만, 그 길 끝에는 수많은 생존자의 미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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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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