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직 묵상] 노아의 방주, 물 위에 떠서 다니다

노아의 방주 <출처 굿뉴스데일리>


함께 기도할 제목

1. 말씀 안에서
– 한 영혼을 구원하고 살리는 일에 평생 사로잡히게 하소서
– 나의 입술에서 복음이면 충분하다는 진실한 고백이 매일 터져 나오게 하소서

2. 나라와 민족
– 언론, 정치, 문화, 경제계 등 각계 지도층이 오직 국민을 위해 일하게 하소서
– 성경의 질서, 하나님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세력의 계략을 막아주소서

3. 교회와 선교
– 성경을 함께 읽은 이들에게 성령의 깊은 은혜를 허락하여 주소서
– 가족, 친구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전도자로 살게 하소서

문섭 목사의 잠깐 묵상

‘마음껏 근심해도 괜찮은 평안'(예레미야 31-33장)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렘 33:1)

예레미야는 맘 편하게 두 다리 쭉 뻗고 잠을 청해본 적이 과연 있기나 했을까요? 항상 기뻐하기는커녕 그는 일생의 대부분을 한탄과 눈물 속에서 보냈습니다. 오해와 무시는 기본이고 감금과 폭행, 살해위협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것이 당시 하나님 앞에서 가장 신실했던 한 사람의 인생이었습니다. 인생 역전도 없었습니다. 그는 평생을 근심하며 눈물 흘리며 지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많이들 좋아하는 예레미야의 구절입니다.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렘 31:12)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렘 31:17)

오늘 읽은 통독 본문에만 희망적 메세지가 여러번 나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의 삶의 모습은 어떤가요?

어쩌면 그 당시에 많은 이들이 예레미야를 비웃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안과 소망이 필요한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예레미야, 바로 당신 아니냐며 반문하지 않았을까요? 그는 당시의 거짓 선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평안과 소망을 그저 앵무새와 갈이 말하고 다녔던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평안과 소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통해 평안과 소망을 전하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통독하며 평안과 소망의 정의와 기준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내가 바라는 평안은 무엇이고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평안은 무엇일까 질문해 봅니다. 그는 평생을 근심하며 살았지만 그 근심마저도 흔들 수 없는 참 평안이 인생의 무게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마음껏 근심해도 괜찮은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예레미야가 전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듣는 성공한 신앙인들의 간증과는 거리감이 있습니다. 이 시대에 예레미야가 살았다면 그를 강사로 초청하는 교회가 있기나 했을까 의문입니다.

베이직교회 아침예배(8.13)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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