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직 묵상] 믿음으로 기다리다
석문섭 목사의 잠깐 묵상
‘스탠스가 확고한 예레미야'(예레미야 37-40장)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게 여기거든 가자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예레미아 40장 4절)
예레미야는 어느 쪽 사람이었을까요? 당시 남유다 사회는 친바벨론과 친이집트 양측 진영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정계의 분위기는 친이집트쪽이 좀 더 강했습니다. ‘친이’ 진영에서는 예레미야를 못잡아먹어 안달이었습니다.
그가 매번 주장하는 얘기가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만이 살 길이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니 사람들은 그를 어떤 눈으로 보았겠습니까? 바벨론에서 뒤를 봐주고 있는 사람, 심하게는 매국노라는 소리까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레미야는 ‘친바’ 목소리를 낸다는 이유로 폭행과 감금을 수차례 당했습니다.
한편으로 바벨론의 입장에서 예레미야는 굉장히 고마운 존재입니다. 영향력 있는 선지자 한 사람이 바벨론에 우호적인 목소리를 계속 내준 것이 자신들의 예루살렘 정복에 도움이 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 바벨론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레미야에게 호의적 제안을 합니다. 예레미야가 승낙하기만 하면 바벨론 시민권을 획득하는 것은 물론 남은 여생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
그러나 모두가 바벨론행을 선택할 거라 여겼던 기대와는 다르게 예레미야의 선택은 바벨론이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가 목소리를 높였던 동기가 정치적 이유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비로소 드러난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신앙을 동기로 한 선택의 결과가 모종의 정치적 입장과 비슷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이쪽 사람들이 우리 편이라고 하고 저런 얘기를 하면 저쪽 사람들이 우리 편이라고 합니다.
그럴 때 자칫 그들의 정치적 저의와 우리의 신앙적 동기를 동일시하는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처음에 주셨던 마음은 잊어버리고 인간의 천박한 힘겨루기에 휘말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를 읽으며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로 얽힌 한 시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꿋꿋하게 살았던 예레미야의 태도를 배웁니다. 예레미야에게는 세 가지가 없었습니다.
첫째로 예레미야는 자신과 함께 할 세력을 규합하지 않았습니다. 세력간의 대결 구도가 되는 순간 하나님의 뜻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인간의 권력 다툼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두 번째로 그는 자신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반격하거나 조롱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로 그는 자신에게 호의적인 세력의 도움을 구하지도 바라지도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 편을 들어줄 만한 사람들의 정치적 힘을 조금은 이용할 법도 한데, 그의 관심은 오로지 하나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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