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로하니 “핵문제, 대화로 풀어야”
이란의 하산 로하니 신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자국의 핵 문제는 제재가 아닌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로하니 대통령은 이날 오후 테헤란 의회에서 열린 취임식 연설에서 “국제사회가 이란과 교류하는 유일한 방법은 동등한 조건에서 상호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적대 행위를 줄이고 협상하는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올바른 대답을 얻고 싶다면 이란과 대화에서 ‘제재의 언어’가 아니라 ‘존경의 언어’를 사용하라”면서 “이란은 제재나 전쟁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하니는 이날 취임선서를 하고 이란의 일곱 번째이자 제11대 대통령으로서 4년의 임기를 시작했다.
취임식에는 이란 3부 요인과 테헤란 주재 각국 외교사절은 물론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11개국 정상을 포함해 50여 개국의 외빈 사절단도 참석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래 대통령 취임식에 외빈 사절단이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AP 통신이 전했다.
이란과 특수 관계인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사절단을 이끌고 테헤란을 찾았다.
서방 인사로는 자비에르 솔라나 유럽연합(EU) 전 외교·안보 고위대표와 얀 엘리아손 유엔 사무차장이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는 유럽연합(EU)과 호주 등 서방 국가와 마찬가지로 현지의 송웅엽 주이란 대사가 참석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초청을 받지 못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전날 헌법 절차에 따라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로부터 대통령직을 공식 승인받았다.
로하니는 이 자리에서 “이란의 경제를 구하고 국제사회와 건설적 교류에 나서는 게 새 정부가 할 일”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국익을 고려해 이란의 위상을 높이고 숨막히는 제재를 철폐하기 위해 근본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중도 온건 노선을 표방하는 로하니 정권 앞에는 경제와 핵 문제 등 풀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당장 경제 분야에서 핵무기 개발 의혹에 따른 서방 제재 등의 여파로 치솟은 물가와 급락한 리알화 가치 등 어려워진 국내 경제를 회복시키는 게 급선무다.
외교적으로는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전 정권에서 강경 일변도의 대외정책이 초래한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타개해야 한다.
정치 분야에서는 당장 가택연금 중인 개혁파 야권 지도자의 석방 문제와 통합정부를 어떻게 구성할지가 관건이다.
사회 분야의 공약인 언론과 사상의 자유·프라이버시 보장을 어떻게 실현할지가 숙제다.
핵협상 교착에 따른 제재의 지속과 시리아 사태, 국내 보수파의 견제와 이슬람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러한 과제 해결에 제약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 하원이 지난달 31일 이란산 원유 거래를 사실상 전면 금지하는 내용의 ‘핵이란방지법’을 의결한 것 역시 로하니 정권으로서는 부담이다.
그러나 ‘사려와 희망(prudence and hope)의 정부’를 모토로 내세운 로하니 신임 대통령에게 이란 국민은 물론 국제사회 역시 거는 기대가 작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국제사회가 먼저 유화적이고 건설적인 태도로 로하니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0년대 초 이란의 개혁파 하타미 정부가 미국에 대화를 제안했으나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오히려 이란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선포, 이란 정계에서 개혁파가 계속 소외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테헤란에 주재하는 익명의 한 외교관은 “실용주의 성향의 로하니가 이란의 대내외정책을 변모시킬 것이라는 낙관론이 많은 게 사실”이라면서도 “이란의 정치 시스템상 대통령의 한계로 큰 진전이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로하니가 최고지도자의 권위를 존중하는 동시에 이번 대선에서 드러난 국민의 변화 열망을 구현하는 ‘줄타기’를 얼마나 잘할지가?새 정부 성패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로하니 대통령은 이날 취임 연설을 마친 뒤 각료 대부분이 전문 관료 출신이자 그의 멘토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로 구성된 새 정부 구성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주요 인사로는 외교관 출신인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 내정자와 개혁파 정권에서 석유장관을 지낸 비잔 남데르 장가네 석유장관 내정자가 눈에 띈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