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철 감독 “갈등은 에너지, 선택, 캐릭터의 원천”

9일 일산 킨텍스에서 특별강연하고 있는 정윤철 감독. <사진=김남주 기자>

“이야기의 힘은 대단합니다. 이야기의 구조는 우선 어떤 인물이 있어야 하고 인물이 원하는 것이 있어야 하고 방해물이 있어야 합니다. 방해물과의 갈등을 통해 거대한 에너지가 나오고, 특정한 선택을 통해 캐릭터가 나오는 것입니다.”

영화감독이 ‘에너지’를 말했다. 그것도 그럴싸한 대목에서. 9일 오후 3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 10홀에서 진행된 <2012 대한민국 에너지 R&D 성과전시회>에서다. 그를 보러 전국 각지에서 젊은 영화지망생들 몇몇이 왔다.

극장가 아르바이트생으로 시작해 7전8기의 롤 모델 영화인 <말아톤>으로 한국 영화계의 일약 슈퍼맨으로 부상한 정윤철 감독. 마흔 초입의 정 감독의 이날 강연 주제는 <청춘에너지를 충전하라!>였다.

“이야기는 남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도 설득해야 합니다. 원하는 것을 곧바로 얻어서 지루해지는 평이함보다 방해물과 갈등이 있어야 에너지가 나오고 선택 끝에 성공을 하는 인생이 드라마틱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캐릭터가 나오는 것이지요.”

정감독은 이날 강연이 에너지 관련 행사의 일환이라서 자신의 전공인 영화 얘기에 에너지 얘기를 결부시키려고 공부했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짧은 에너지 공부치고는 귀에 박히는 얘기가 꽤 많이 나왔고, 인생에 에너지를 대입하는 논리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에너지의 형태는 변하되 그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에너지보존의 법칙(열역학 제1법칙)’을 인생에 있어서 도전과 실패에 빗댔다. 누구나 타고난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므로, 사업이나 연예에서 실패한 것으로 느껴지는 시간도 결코 무의미하게 날아간 게 아니라는 것. 나중에 분명히 돌아온다는 것.

“어떤 식으로 전환되더라도 에너지 총량이 똑같습니다. 다른 형태로 변해서 돌아올 뿐이죠.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순간적인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지 말고, 나중에 평가하고 웃을 수 있는 인생이 되자는 얘깁니다.”

급기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까지 등장했다. 아무리 에너지공학에 관심이 많은 영화감독이지만, 인문학 강의에서 공학도의 핵심부를 파고드는 정감독의 모습에 외려 청중들이 마음을 졸였다. 그 순간.

“에너지가 질량 및 광속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e=mc²’는 우라늄 1g이 탈 때 석탄 3톤이 타는 엄청난 에너지를 낸다는 것으로 입증됐습니다. 사람과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몸무게 1g이 아니라 ‘영혼의 질량’ 1g을 태워 꿈이라는 에너지를 얻는 이치입니다. 실패하더라도 에너지보존의 법칙에 따라 언젠가 인생의 자산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영혼의 질량’이라. 개별과학의 총체가 철학이라고 했던가. 거 참 기분이 묘했다.

강연 말미에 정 감독은 자신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7분짜리 영화를 틀어 보여 줬다.

<미니와 바이크맨>이란 영화로,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초저예산의 단편영화이지만 정감독이 말하는 ‘이야기의 전형성’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평생 갇혀 지내는 인형 미니는 바다에 가고 싶었다. 미리 떠났던 바이크맨은 실종됐다. 미니는 자전거를 타고 엄청난 산을 넘고, 취객을 포함한 위협적인 사람들을 헤치고, 바다로 바다로 나갔다. 산에서 자살하려는 여자를 만나 도움도 주고 부산 해운대까지 갔다.

미미가 바다로 제대로 갔는지는 불분명하다. 자살하려던 여자가 먼저 해운대 바닷가에 도착했는데, 거기서 실종됐던 바이크맨을 만났다. 미미가 바다에 간 것인지는 미지수다. 열려 있는 마무리다.?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한다는 스토리.

하지만 요만한 이야기에도 으레 가슴이 먹먹해졌다 뿌듯해졌다 한다. 그게 이야기의 힘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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