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6일] 스페인 굴복시킨 모로코의 비무장 ‘녹색행진’
2005년 동아시아경기대회 다정했던 남북
2005년 11월6일 중국 마카오 특별 행정구에서 열렸던 제4회 동아시아 경기대회가 8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폐막했다.
10월 29일부터 시작된 이 대회에서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500여명의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한 중국이 무려 126개의 금메달을 휩쓸며 종합 1위에 올랐다.
일본도 수영과 가라데에서 무더기로 금메달을 따내며 선전, 금메달 46개로 종합 2위 자리를 지켰다. 한국은 대회 마지막 날 남녀 수영과 남자하키에서 값진 금메달을 추가하며 중국·일본에 이어 4회 연속 종합 3위를 차지했다. 목표했던 금메달 37개에는 못 미치지만 금 32, 은 48, 동 59개로 종합 3위를 차지한 것이다.
대만과 마카오가 각각 4위와 5위를 차지했다. 대만은 금메달 12개, 은메달 34개, 동메달26개 총 72개 메달로 4위를 차지했다. 마카오는 금메달 11개, 은메달 16개, 동메달 17개 총 44의 메달로 6위 북한을 제치고 5위를 차지했다.
1회 대회 때 금메달 10개로 종합 4위를 차지한 뒤 12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북한(금메달 6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20개)은 6위에 그쳤다.
1993년 1회 대회 이후 12년 만에 동아시아경기대회에 함께 참가한 남북은 같은 해 10월29일 오후 9시 마카오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개막식에서 한반도기를 앞세워 중국, 홍콩, 일본에 이어 4번째로 함께 입장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이어 6번째 남북이 공동 입장한 것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공동 입장 때 입었던 단복과 똑같은 파란색 상의에 흰색 하의(남자), 빨간색 상의에 흰색 스커트(여자)를 똑같이 입은 남북선수단은 남북 구분 없이 8렬로 자연스럽게 섞여 입장했다. 당시 이승국 한국 선수단장과 김영만 북한 선수 부단장 및 임원들은 모두 손에 손을 붙잡고 입장해 남북의 특별한 우정을 과시했다.
1990년 한국-소련 간 직통전화 개통
1990년 11월6일 0시에 한국과 소련간의 직통국제전화 4회선이 개통됐다. 소련과의 직통회선 개설은 1989년 1월부터 양국간에 논의돼오다 8월 이우재 당시 체신부장관이 소련을 방문, 소련 우전부장관과 직통회선개설 각서를 체결하면서 본격 추진됐던 일이다.
이날 개통된 직통회선은 서울-부산을 거쳐 일본의 하마다와 동경-나오에쓰에 이어 나훗카-모스크바로 연결되는 선이다.
그동안 양국간 통화완료율은 매우 낮은 7~8% 선에 머물렀다. 직통전화 개설로 편리하고 좋은 품질로 전화통화가 가능해졌다.
1975년 모로코 국민의 ‘녹색행진(Green March)’
1975년 11월6일 오전9시 한때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국민 35만 여명은 하산 모로코 당시 국왕의 명령을 받고 남부 도시 파르타야에서 출발해 모로코 서부 사하라 지역으로 비무장 정복행진을 벌였다.
모로코 국민들은 스페인령으로 남아 있는 서부 사하라가 모로코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모로코 국기와 코란을 든 행렬은 노래를 부르고 ‘식민통치자 물러나라’ ‘조상의 땅을 되찾자’라는 구호를 외쳤다..
국경에 지뢰 2만개를 살포한 스페인의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행렬은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차량 1만여대를 포함한 행렬의 길이만 120㎞. 스페인은 결국 손을 들었다. 대행진 8일째인 11월14일 사하라 식민지를 모로코와 인접국 모리타니에 넘긴다는 <마드리드협약>을 맺었다. 스페인은 모로코 국민들의 행진이 있은 뒤 1년 뒤인 1976년 서부 사하라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모로코는 당시 서부 사하라를 두고 이웃 나라인 알제리와 영토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었다.
그러나 그 뒤로도 지하자원을 둘러싸고 모로코를 공식 지지했던 미국과 스페인의 암투는 계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