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2일] 일본에 나라 팔아넘긴 계약서 조인된 날
1981년 대만 여객기 공중 폭발 110명 사망
1981년 8월22일 오전 외국인 23명을 포함한 승객 104명과 승무원 6명 등 모두 110명을 태우고 타이페이(臺北)를 떠나 남부 항구도시 고웅으로 향하던 대만 국내선 항공사 원동항공(FAT) 소속 보잉 737여객기가 이륙 10여분 만에 대북 남서쪽 묘율상공에서 원인불명의 공중폭발을 일으켰다.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대만사상 최악의 공중참사가 발생하는 순간이었다.
사고 항공기는 이날 조종실의 기압이상으로 약2시간동안 이륙이 지연된 후 오전 9시50분(현지시각) 이륙, 비행도중 타이페이 남서쪽 151km 지점의 묘율상공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항공기 잔해가 인근 일대에 흩어졌다. 공항관제탑과 사고 항공기간의 교신이 이륙 19분 만인 오전 10시9분 두절됐다.
원동항공사가 발표한 외국인 탑승자는 미국인 3명, 일본인 18명, 국적미상 2명 등 총 23명이며 국적미상인 2명도 서양인으로 밝혀졌다.
1960년 최초 우주여행 동물 기자회견
1960년 8월22일 소련 모스크바에서 이색 기자회견이 열렸다. 회견의 주인공은 스트렐카(Strelka)와 벨카(Belka)라는 이름의 개 두 마리, 그리고 쥐 40마리 등이었기 때문이다. 이 동물들은 바로 얼마 전 사상 처음 우주여행을 즐긴 뒤 생환했다. 개 2마리는 회견이 있기 사흘 전인 8월19일 스푸트니크(Sputnik) 5호를 타고 이륙, 지구궤도를 16바퀴 돈 뒤 이튿날 살아서 돌아왔다.
소련이 이 동물들을 우주로 보낸 것은 바로 이듬해 4월 인류 최초의 인간 우주비행을 실현할 인공위성 보스토크(Vostok)의 발사를 미리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1910년 경술국치(한일합병조약)
1910년 8월22일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과 3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사이에 한일합병조약이 조인됐다. 한국이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가 되는 순간이었다.?이른 바 ‘경술 국치(國恥)’다.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1904년 2월 한일의정서, 같은 해 8월 한일외국인고문용빙에 관한 협정서(제1차 한일협약), 1905년 11월 을사조약(제2차 한일협약), 1907년 7월 한일신협약(정미칠조약), 1909년 7월 기유각서 등 일련의 조약들을 차례로 체결했다. 그밖에도 한국군에 대해 군대해산을 단행하고 신문지법·보안법 등을 제정했다.
1910년 3월에는 토지조사국을 설치, 토지약탈을 준비했다. 이런 조치들은 실질적으로 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치밀한 준비 작업이었다. 1910년 5월30일 데라우치가 3대 통감에 취임하면서 한일합병은 급속도로 추진됐다.
같은 해 8월 16일 데라우치는 이완용에게 합병조약안을 통보했다. 8월18일 한국정부 각의에서 합병조약안이 통과됐으며, 8월22일 마침내 합병조약이 조인됐다. 일제는 반발을 우려해 이를 한동안 비밀에 붙이다가 29일에야 조인 사실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통감부가 조선총독부로 대치되고 데라우치가 초대 총독에 부임했다. 이로써 한국은 조선왕조 건국 27대 519년 만에, 대한제국 성립 18년 만에 합병 형식으로 일제의 식민지가 됐다.
일제는 8월29일 순종으로 하여금 양국(讓國) 조칙을 강제로 내리게 했지만 친필서명이 없어 지금까지 불법과 무효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상현 기자 ?coup4u@theasian.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