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8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결성

2009년 ‘노벨평화상’ 시린 에바디 한국 방문

2009년 8월8일 이슬람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2003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시린 에바디(62) 변호사가 제13회 ‘만해대상(평화 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6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이란 최초의 여성 판사인 에바디 변호사는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여성은 감정적이므로 법 집행에 적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판사직에서 쫓겨났다. 그 뒤 법원 사무직 직원으로 일했다. 그러다 1992년부터는 여성과 아동, 반체제 인사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지키는 인권 변호사로 변신했다.

인권 변호사의 삶은 그에게 노벨 평화상을 안겨줬지만, 살해 위협과 구속 등 탄압의 강도도 높였다. 2000년 가을, 살해당한 반체제 지식인들 관련 재판에서 그는 “다음 처형할 사람은 시린 에바디”라고 적힌 정부 기밀문서를 직접 읽기도 했다. 정부 관료와 정보기관 암살전담반 요원이 나눈 대화 내용이었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그가 이란을 떠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독실한 이슬람 신앙 때문. 에바디 변호사는 “평등과 민주주의 사상 속에서 이슬람을 해석하는 것이 진정으로 이슬람을 믿는 것”이라며 “이슬람은 여성을 구속하는 종교가 아니라 여성을 가두려는 사람들을 제거하는 종교”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슬람이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없다’는 주장은 소련 붕괴 뒤 또 다른 적을 만들어야 했던 미국의 필요와, 이슬람 교리를 남용해 비민주적인 행동을 정당화하는 정부 때문에 만들어진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에바디 변호사는 같은 해 6월12일 치러진 이란 대선 이후 부정선거 논란 속에 벌어진 대규모 시위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촉구했다.

만해대상은 만해 한용운을 기리기 위해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제정하고 백담사 만해마을이 수여하는 상으로, 에바디 변호사는 이소선 여사(실천 부문) 등과 함께 이번에 수상자로 선정됐다.

지난 2009년 8월1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아시아기자협회 주최로 '평화와 휴머니즘 다양성 비전-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이란의 인권운동가 시린 에바디(62) 변호사와 함께하는 만찬'에서 아시아기자협회 홍보대사로 위촉된 시린 에바디 변호사가 아시아기자협회 이상기 창립회장에게 명함을 받고 있다.

2008년 제29회 베이징올림픽 개막2008년 8월8일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인 국가체육장에서 2008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이 열렸다.

장이머우 감독이 총연출한 개막식은 동양적 신비감과 웅대한 스케일로 세계인의 경탄과 시선을 모았다.

간자체 순서에 따라 그리스 선수단이 첫 번째 입장하는 것을 시작으로 204개국이 경기장에 입장했다. 한국 선수단은 176번째로 들어왔고, 북한이 따로 들어와 공동 입장은 성사되지 못했다. 류치 중국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과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장의 연설에 이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개막을 선언했다. 최종 성화주자로 나선 체조선수 출신 리닝은 와이어에 의해 공중으로 떠 경기장을 돈 뒤 성화대에 불꽃을 점화하면서 4시간에 걸친 개막공연은 막을 내렸다.

2000년 현대그룹 3차 소떼 방북

2000년 8월8일 오전 현대그룹의 ‘소떼 방북단’이 판문점을 거쳐 3번째 방북길에 올랐다.

이번 소떼 방북에는 한우 500마리와 한우를 실은 5t 트럭 55대를 비롯, 평양 현대 아산종합체육관 공사용 콘크리트 믹서트럭 2대와 철근, 합판 등 공사 자재를 실은 수송용 트레일러 6대가 함께 갔다. 이 중 수송용 트레일러는 남으로 돌아 온다.

하루 전 날인 7일 자정 충남 현대 아산목장을 출발한 소떼 방북 차량은 당초 예정보다 30분가량 빠른 오전 5시30분께 임진각에 도착했으며, 인천 남항을 출발한 트레일러와 믹서트럭은 1시간 전인 오전 4시 30분께 먼저 와 대기했다.

소떼 방북차량은 서해안 고속도로와 수도권 외곽순환도로를 거쳐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녘에 자유로에 들어선 뒤 2㎞ 가량을 전조등을 밝힌 채 임진각으로 향해 장관을 이뤘다.

소떼 방북차량은 임진각 진입도로에서 대기하다 통일대교와 판문점을 거쳐 북으로 넘어 갔다. 소와 운반차량들은 3시간 30분여 대기시간에 국립수의과학검역원 검역관들의 도움을 받아 2중 소독 절차를 마쳤다.

이번 소떼 방북은 1998년 6월16일과 10월27일에 이어 세 번째였다. 검역 문제 등으로 당초 예정보다 2개월가량 늦춰진 것이었다.

1999년 러시아, 체첸 회교 반군 공격

1999년 8월8일 러시아 군이 체첸공화국 국경을 넘어 러시아남부 다게스탄을 기습 점령한 체첸 회교 반군에 공격을 가했다. 러시아와 체첸공화국 간에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발생한 이번 충돌은 지난 1996년 8월 체첸 전쟁 종료 이후 러시아 최악의 내전이다.

모스크바 주재 체첸 총대표부는 이날 다게스탄 산악지역 마을을 점령한 반군들과 체첸 정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다게스탄 내무부는 이번 교전으로 다게스탄 경찰관 4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고 발표했으며 일부 언론은 러시아 헬기 2대가 격추됐다고 보도하고 있다.

체첸 반군은 하루 전 7일 오전 체첸 국경선을 넘어 안살타와 라하타, 에체다 등 다게스탄 산악지역 3개 마을을 기습 점령하고 참호를 구축했다. 반군은 최소한 200명에서 최대 2000명 정도로 추산됐다. 체첸 전쟁의 영웅 인샤밀 바사예프와 하타브의 지휘아래 대전차와 대공무기 등으로 중무장하고 있다.

이들은 체첸 전쟁 이후 움직임이 활발해졌으며 체첸과 다게스탄을 통합, 하나의 이슬람 국가를 세우기를 원하고 있다고 다게스탄 경찰이 설명했다.

반군은 점령지역 탈출 부녀자 2000여명에게 “러시아 군과 경찰을 몰아내고 이슬람 국가를 건설한다”면서 동참을 요청했다.

같은 달 26일 ‘제2차 체첸 전쟁’으로 확대돼 이듬해 2월초까지 지속됐다. 2000년 2월4일 러시아군이 그로즈니를 장악하면서 체첸 2차 전쟁은 한시적인 중지단계에 접어들었다. 러시아군은 이전 기갑부대를 시가지에 밀어 넣었다가 RPG와 저격수에 의해 뼈아픈 손실을 입었던 것을 교훈삼아 기화폭탄으로 도시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린 후 그로즈니를 장악했다. 그로즈니에서 물러나 남부산악지대에 거점을 마련한 수천명의 체첸반군은 러시아를 상대로 전투를 벌였으며, 러시아군은 특수부대와 내무부 소속 부대를 동원, 이들과 전투를 벌였다. 체첸 반군은 게릴라전 이외에도 도시테러와 자살테러 등으로 대치, 상당수의 사상자가 계속 발생했다.

1988년 버마 ‘8888 민중항쟁’ 발생

1988년 8월8일 동남아시아 미얀마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분출돼 전 국민적 봉기가 일어났다.

1885년부터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다가 1948년 독립, 1962년까지 민주주의 국가로 동남아시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부유한 나라였다. 그러나 1962년 군사 쿠데타로 사회주의 국가로 전환됐고, 1987년에는 경제·정치·사회·교육 등 전 분야에서 전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로 규정됐다.

8월8일 봉기는 잠재됐던 미얀마 민중들의 민주주의 열망이 분출된 것이었다. 군부세력에 기반을 둔 3명의 대통령이 연이어 국민들에게 굴복했다. 하지만 한 달여 뒤인 9월18일 또 다른 군사세력에 의해 쿠데타가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민간인 2만여 명이 학살됐다.

1990년 버마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대표로 있었던 민족민주당(NLD)이 82%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면서 민주주의가 꽃피울 듯 했다. 그 결과를 UN에서도 인정했으나, 군부세력은 받아들이지 않고 아웅산 수치 여사를 가택 연금했다. 20여명의 NLD 국회의원, 민주화 세력 1400여명 등을 정치범으로 수감하기도 했다.

또 199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한 아웅산 수치 여사가 가택연금에서 풀려나 버마 전국을 돌면서 국민들에게 민주주의를 호소하면서 민주화를 주도해왔다. 이런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지난 2003년 5월30일 아웅산 수치 여사와 NLD 회원들을 향한 테러가 발생해 250여명의 살상자를 냈다. 이후 군사정권은 또다시 아웅산 수치 여사를 가택연금하고 민주화 세력에 대한 탄압과 억압을 계속해오고 있다.

군사정권은 2010년 11월 20년 만에 총선을 실시한 뒤 수치 여사에 대한 가택연금을 해제했다.

1967년 아시아 5개국 동남아국가연합(ASEAN) 결성

1967년 8월8일 태국 방콕에서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폴의 5개국 대표가 ‘동남아시아연합(ASEAN)’ 결성을 발표했다. ASEAN은 5개국의 경제, 사회, 문화, 기술 등의 지역협력기구임과 동시에 어떠한 형태의 외부간섭으로부터도 우리들의 안전을 지킬 것이라면서 간접적으로 공산세력에 대항하는 결속을 강조했다.

매년 11월에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아세안은 현재 거대한 공동체로 거듭 태어나고 있다. 오는 2015년까지 유럽 연합과 맞먹는 정치·경제 통합체를 지향하고 있다. 아세안은 2008년 12월15일 지역공동체의 헌법 구실을 하게 될 역사적인 <아세안 헌장>을 발효시켰다.

동남아시아 지역내 협력체제로서는 이미 1961년에 발족한 태국, 말레이시아연방, 필리핀 3국에 의한 ‘동남아시아연합(ASA)’이 있었지만 이즈음에는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반공을 내세우는 ASEAN의 탄생은 ASEAN 5개국이 베트남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대치하는 결과가 돼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됐다.

버마와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브루나이가 나중에 가입해 총 10개국이 가입국가다.

이상현 기자 coup4u@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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