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일어나면 방 안에는 사람이 없다. 알람만이 엄마처럼 나를 깨운다. 거울은 말없이 나를 맞이하지만, 나는 그 시선을 오래 견디지 못한다. 온기 없는 원룸에서 아침을 챙겨 먹는 일은 어느새 낯선 일이 되었다. 결국 씻기만 한 채 등교 시간에 맞춰 밖으로 나선다. 그것이 몇 년째 반복되는 아침의 방식이다. 아침을 거르는 일이 습관이 되어 배고픔마저 조용해졌다.
이 모습은 고려인 청소년들의 ‘어느 아침’과 닮아 있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아이들은 새벽부터 혼자가 된다. 엄마 아빠는 공장으로 떠나고, 아이는 집을 지키다 학교로 간다. 식탁에는 밥 대신 고요가 남는다. 그 고요 속에서 아이들은 자라며, 어른이 되는 연습을 너무 일찍 시작한다. 그래서 제주에서는, 적어도 그 며칠만큼은 아이들에게 따뜻한 아침을 건네고 싶었다. 나와 조현수 목사님(김포 구원의감격교회), 오필준 부장 선생님은 마음을 하나로 묶어 작은 약속을 만들었다.
호텔 조식 뷔페는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충분했다. 따끈한 국, 갓 지은 밥, 그리고 누군가와 마주 앉는 식탁. 그것만으로도 아침은 ‘살아 있는 시간’이 되었다. 식사 시간은 7시, 8시가 되면 호텔 문을 나서야 했다. 아이들은 부지런히 내려왔고 팀별로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어제 못다 한 이야기는 웃음이 되어 테이블 위로 굴러다녔다. 아이들이 밥을 씹는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이 먼저 배가 불렀다. 하루의 한 끼라도 “이런 식사가 있다면 아이들이 조금 덜 외로울 텐데.” 그 생각이 밥보다 따뜻하게 속을 데웠다.
오늘은 서로 다른 팀들이 각자의 코스를 따라 흩어지는 날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정한 목표를 품고 제주의 길 위로 나섰다. 나도 분주한 하루를 시작했다. 오후에는 모두가 함께 모이는 시간이 있다. 서커스 관람, 그리고 아이들이 특히 좋아할 제주 981파크. 혼자 즐기는 재미도 있지만, 우리는 “함께” 웃어야 더 오래 기억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단체로 예약했고,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차는 두 대가 되었다. 추가 렌트카를 위해 성산에서 공항 근처까지 이동했다. 제주 바람은 늘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고, 갈대는 그 흔들림을 춤으로 바꿔 보여 주었다. “여기서 단체 사진을 찍으면 좋겠다.” 그 생각이 들자 마음이 먼저 가벼워졌다.
서커스장에 도착하기 전, 조현수 목사님이 국수집을 알려 주셨다. “바로 옆에 국수집이 있어요. 거기서 점심 먹고 기다립시다.” 그 말이 참 좋았다. 기다림에도 식탁이 있으면, 기다림은 덜 쓸쓸해진다. 국수집에서 고기국수를 시키고 나는 아이들의 보고 메시지를 읽었다. 그리고 사장님께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한국말이 서툰 학생들이 다녀간 적 있을까요?” 사장님은 조금 전 서너 명이 왔다고 하셨다. 나는 그 아이들이 고려인 청소년들이라고 말씀드렸고, 국수가 나오기 전까지 짧은 시간이나마 아이들의 이야기와 고려인의 역사를 나누었다.
오후 2시, 서커스장 앞에 아이들이 모였다. 한 팀도 빠짐없이 도착했다. 팀장들이 인원을 체크하고 입장을 기다리는 그 순간, 나는 공연보다 먼저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괜찮아. 잘 왔어.’ 그 말을 눈빛으로 먼저 전하고 싶었다.
서커스는 대단했다. 줄 위를 걷는 배우들의 발끝에서 아이들의 환호가 튀어 올랐다. 아이들은 순간순간 숨을 잊었고, 그 숨을 잊은 표정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곧, 981파크. 아이들은 제주의 언덕을 가르며 달렸다. 마음껏 소리쳤고, 마음껏 웃었다. 그 웃음은 마치 “우리도 이렇게 즐거워도 되는 거죠?”라고 묻는 것 같아서, 나는 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싶어졌다. 문득 학교에 두고 온 나머지 학생들이 마음에 걸렸다. ‘미안하구나.’ 미안한 마음은 제주의 오후 바람과 함께 흩어졌지만, 지우지는 않기로 했다.
저녁은 흙돼지였다. 무한리필 집을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현실적으로 예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무엇보다 우리를 믿고 지원해 준 SK선경최종건재단의 마음을 가볍게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잘 먹는 것”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 후기와 만족도를 꼼꼼히 확인했고,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선택을 하려 했다. 출발 전 박새롬 담당자님의 말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제주에서 마음껏 잘 먹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아끼지 않으셔도 돼요.” 그 목소리는 지금도 따뜻해서, 마치 ‘괜찮다’는 허락 같았다.
아이들은 정말 잘 먹었다. 불판 위의 고기는 끝없이 올라왔고, 아이들의 웃음은 그보다 더 길게 이어졌다. 시간이 한 시간 반을 넘어갈 즈음, 사장님의 시선이 살짝 느껴졌다. “우리 이제 두 시간은 넘기지 말자.” 나는 그렇게 마음속으로만 말하며 아이들의 불판을 조심스레 지켜봤다.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떼창으로 ‘꿈’을 불렀다. 노래는 창문을 타고 새어 나와 제주 밤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그 순간, 제주가 엄마처럼 아이들을 품고 아빠처럼 든든히 지켜보는 것 같았다.
밤에는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마지막 날 계획을 다시 확인했다. 내일은 새벽 6시, 로비 집합. 성산일출봉에 올라 일출과 함께 마지막 제주를 마주하기로 했다. 비행기는 오후 4시 30분. 우리는 시간과 체험, 아이들의 컨디션까지 여러 번 계산하고 조율했다. 끝내 최종 일정표가 완성되었을 때,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오늘 밤, 아이들에게 어떤 밤으로 남을까.”
다음 날 새벽, 로비는 예상보다 일찍 떠들썩했다.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이미 모여 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45분이었다. 어쩌면 아이들은 ‘새벽’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른다. 혼자 준비하던 새벽이 많았으니까. 성산일출봉으로 출발했다. 코스는 어렵지 않지만,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길은 늘 조심스러웠다. 중턱에 이르렀을 때 앞 팀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잔소리를 덧붙였다. “천천히. 앞 잘 보고.” 그 말은 사실 아이들에게라기보다, 내 마음에게 하는 말 같았다.
정상에 올랐다. 동녘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우리 얼굴을 적셨다. 기분이 좋았다. 나는 믿었다. 이 일출이 아이들에게 한국 생활의 용기와 자신감을 선물해 줄 거라고. 하지만 하늘은 흐렸고, 해는 구름 속으로 숨었다. 우리는 일출을 보지 못했다. 그래도 이상하게 그 아쉬움은 오래 남는 상처가 아니라, 함께였기에 남기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구름 속에 숨은 해도, 우리가 함께 걸어 올라간 새벽도 분명 아이들의 마음 어딘가에 빛처럼 남을 거라고 믿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