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학’은 한민족의 ‘시대정신’

문화는 크게 전통문화와 외래문화 둘로 구분할 수 있다. 전통문화를 갖고 있다는 것은 그 민족의 고유한 정신과 철학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문화의 핵심은 민족이나 국가의 고유한 정신이고 철학이다. 민족의 ‘중심가치’ 혹은 ‘중심철학’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중심철학이 있는가?”라고 자문한다면 어떻게 답을 할 것인가.

민족의식이 없는 역사 공부는 민족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수많은 외래 침략에 의한 피해의식을 낳게 한다. 그렇기에 삼국시대 이후에 들어온 유교, 불교, 기독교 등의 외래문화는 미화되었지만 반대로 민족 전통문화는 시의성이 없는 고리타분하고 배격되어야 할 문화로 저류화되고 말았다.

미국의 세계사 교과서에 “한국문화는 중국문화의 아류이기에 전통문화가 없으며, 있다면 샤머니즘이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한국은 지난 2000년 동안 주변 강대국의 침략과 지배 속에서 끊임없는 문화 침투를 당해왔고, 그러한 시련의 역사 속에서 민족의 본래 정신과 가치를 상당부분 잃어버렸다.

특히 36년간 일본 식민지배에서 한국은 고유문화를 잃고, 문화적으로 식민지화되었다. 일본이 펼쳐왔던 우민화 식민정책은 민족의 정신과 뿌리를 부정하게 만들었고, 국조 단군을 곰의 자손으로, 단군조선의 역사를 신화로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한국인의 심상 속에서 전통문화와 외래문화는 혼재되어 왔다. 더욱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면서 바로 서구 기독교문화의 영향권으로 들어섰기에 한국의 전통문화는 아직도 제대로 복원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이라도 전통문화와 외래문화는 구분되어야 하며 역사적 시련 속에서 한국 전통문화의 맥이 끊어졌다면 그것을 찾아 복원해야 할 것이다. 민족의 주체성과 창조성은 전통문화에서 나온다. 자긍심과 자존감이 없는 사람이 미래를 창조할 수 없듯이, 전통문화가 없는 민족은 주체적이고 창조적으로 발전할 수 없으며 오늘의 삶과 상관없이 미래가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통문화와 외래문화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학’과 ‘한국학’의 차이점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국학과 한국학은 엄연히 다르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에 외래문화가 들어오기 이전, 한국에는 단군조선시대와 그 이전부터 자생한 고유한 문화, 사상, 종교 등 일련의 사유체계가 존재했으며 이를 연구하는 학문을 ‘국학’이라 한다.

단군조선 이후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유교, 불교, 도교의 삼교가 수입되었고 고려시대의 불교문화, 조선시대의 유교문화, 근대이후의 기독교문화를 비롯하여 공산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 등과 같은 이념들이 들어와 한국화된 모든 문화와 정신을 연구하는 것을 ‘한국학’이라 정의할 수 있다. 국학에 뿌리를 둔 한국학은 있어도 국학이 없는 한국학은 없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학은 단군조선을 포함한 그 이전의 역사와 문화, 사상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않는다.

한국 역사 속에서 불교문화, 유교문화, 기독교문화 그리고 외부에서 들어온 사상이나 이념들이 비록 그 전래된 역사가 오래 되었을지라도 한국의 전통문화는 될 수 없다. 외래문화는 전통문화의 토양 위에서 조화를 이루어가며 그 민족의 문화적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지 전통문화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국학은 모르고 한국학만 알고 있다. 오랜 세월 한국 고유의 사상인 국학은 외면당했고 괄시 당해왔다. 오늘날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짧은 시간 안에 경제적 성과를 이룩한 한국을 대단하다고 칭찬하지만, 정작 한국인들에게 한국의 고유한 정신이 뭐냐고 물어볼 때 정확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국학의 뿌리는 불교, 유교, 기독교와 같은 외래문화가 들어오기 전에 자생하고 있었던 ‘선도(仙道)’에 있다. 신라시대에 유교, 불교, 도교에 깊은 이해를 지녔던 대학자이자 뛰어난 문장가였던 최치원(崔致遠, 857~?)은 <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는데 이를 풍류(風流)라고 한다. 가르침을 세운 근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거니와, 내용은 곧 유, 불, 선 3교를 포함하는 것으로 중생을 교화시킨 것이다. 이를테면, 들어와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아가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공자의 주지와 같고, 무위(無爲)로써 세상일을 처리하고 말 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노자의 종지와 같으며,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석가의 교화와 같다.”

최치원은 유교, 불교, 도교가 있기 전에 한국에 고유한 도가 있었다고 했으며, 그 도를 이름하여 ‘현묘지도(玄妙之道)’ 또는 ‘풍류도(風流道)’라 했다. 이 풍류도가 ‘선사(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다. 이 풍류도를 ‘선도(仙道)’ 혹은 ‘신선도(神仙道)’라 할 수 있다. 20세기 초 대표적인 국학자인 위당 정인보(鄭寅普, 1893~?)는 최치원 <난랑비서>의 현묘지도는 바로 단군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정신을 의미한다고 했다.

<환단고기(桓檀古記)>에 의하면 최치원은 녹도문(鹿圖文)으로 된 <천부경(天符經)>을 세상에 전했다고 한다. 국학의 경전으로 <천부경>을 비롯하여 <삼일신고(三一神誥)>와 <참전계경(參佺戒經)>이 있으며 그 핵심요지는 ‘홍익인간’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따르면, 홍익인간을 최초로 언급한 사람은 환인(桓因)이며 홍익인간 정신을 갖고 삼위태백(三危太白)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건설하여 재세이화(在世理化)를 구현했던 사람은 환웅(桓雄)이다. 그리고 환인의 홍익인간 정신과 환웅의 재세이화 정신을 국시(國是)로 계승하여 단군이 나라를 세운 것이다. 따라서 <천부경>과 홍익인간 그리고 그 뿌리인 단군을 언급하지 않으면 그것은 국학이 아닌 것이 된다.

민족의 중심철학이라 함은 그 민족과 국민의 발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철학이다. 그러나 외래에서 들어온 종교나 사상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외래종교는 신자의 증가와 교세 확장에 중심을 둘 뿐, 진정으로 민족의 발전을 위하여 들어온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외래이념 역시 마찬가지다. 이념만 주장함으로써 민족의식의 각성은 뒷전이 되어 버린다.

한국은 오랜 역사 동안 외래문화의 침투를 당해왔다. 한국의 역사를 공자의 눈으로, 석가의 눈으로, 예수의 눈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외래문화에는 한국의 정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역사는 홍익정신을 이 땅에 펼친 단군의 눈으로, 단군의 가슴으로 이해해야 한다. 단군은 5천년 민족사의 첫 머리에 ‘홍익’이라는 불을 밝혔으며, 한민족의 핵심적인 가치관과 중심철학을 세웠다. 그렇기 때문에 단군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한민족의 가치관과 정체성의 핵을 알 수 없고, 중심과 가치기준이 없으므로 자연히 민족이 가야 할 목표와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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