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는 대체 어디에서 나왔을까?

이도학 교수 ‘중국의 여진사 귀속’ 학술발표, 논란 남겨

‘한국 고대사의 시공간적 문헌적 범위’를 주제로 한 한민족공동체연구소 주최의 학회가 20일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학원 강당에서 열린 가운데 이도학 교수(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유적학과)가 중국의 여진사 귀속에 대해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이도학 교수는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은 한족과 55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지만 55개 소수민족의 역사를 중국사에 모두 편제시켰다. 지금 중국사의 시간과 공간적 무대가 크게 확대되었음을 알려준다”며 국사의 확장에 대해 비판했다.

이도학 교수가 ‘여진사 귀속’문제에 대해서 발표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과정에서 “동일하게 만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여진족의 역사는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며 “숙신(肅愼)→읍루(邑婁)→물길(勿吉)→말갈(靺鞨)→여진(女?)→만주족(?洲族)으로 이어지는 이들 여진족은 금에 이어 후금 즉 청을 건국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여진사가 중국사일 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12세기 이후에 와서야 정치적으로 만주 지역의 지배 종족이 되었던 게 여진족이었으며 그러한 여진족의 국가 기원이 한국과 관련을 맺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중국 청나라에 대해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금조와 그 후신인 청에서 편찬한 『만주원류고』는 자국의 연원을 유독 신라에서 찾았다”며 “함경북도 회령 지역에서 채집된 청태조 누루하치 전설을 비롯해 적어도 지방지나 전설 같은 민간 영역의 전승에서도 금과 청의 연원이 한국과 연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토론자로 나선 조경철 교수는 “발표문을 접하면서 한국사의 범주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됐다.?발표자와 입장은 다르지만 넓은 범주에서 여진사의 범주에 포함시키자는 것에 동의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발표자는 청이 입관하기 전까지의 역사 즉 후금의 역사도 한국사의 범주에 넣을 것을 주장한다는 견해를 따른다면, 만주에서 일어나 후금이 공간을 확장한 것이라면 그 이후 역사인 청나라도 후금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사의 범주에 포함시킨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또?“금과 후금의 역사를 한국사의 범주에 넣는다면 요의 역사는 왜 한국사에 포함되지 않는지 묻고 싶다”며 “종족 구성이 다르다면 만주를 지배했더라도 만주의 역사를 ‘한국사의 범주’에서 배제해야 하는가?”라고 묻는 등 논란거리를 남겼다.

왕수엔 기자 news@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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