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를 두려워했던 마르크스를 만나다

*경성대학교 작곡과 외래교수이자 작곡가인 김보현님이 최근 공연차 독일을 방문했다가 트리어에 있는 칼 마르크스 생가에 들러 느낀 소회를 아시아엔(The AsiaN)에 보내왔습니다. 김보현님은?아시아엔 이상현 기자와 페이스북 친구입니다. -편집자 주

세계사에 남긴 족적보다 그의 인간미를 발견한 독일 트리어 생가에서

학생들과 음악 공동 작업을 하기 위해 독일 뒤셀도르프라는 도시로 날아갔다.

호텔에 여장을 풀어놓고 공연 준비에 들어갔다. 뒤셀도르프, 에센에서 공연을 하고 마지막 공연은 트리어에서 있었다.

독일 남부 지방의 작은 도시인 트리어는 2000년 역사의 유서 깊은 도시임을 첫 눈에 알 수 있었다. 이른 저녁 리허설을 마치고 공연 시작 전 3시간 정도?짬이 생겨 일행들과 시내 구경을 나섰다.

한국에서 독일까지 여독과 공연에 대한 긴장감을 잠시 떨칠 수 있는 여유는 그렇게 예기치 못하게 찾아왔다. 경이로운 도시 탐방에 보폭을 맞추었다. 거리 곳곳에 한 때 로마 점령지였던 지나간 시대의 흔적, 유적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고도(古都)의 어느 골목길쯤에서 맞닥뜨린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의 생가(生家)는 놀라움과 궁금증 중간쯤 되는 흥분을 연신 가시지 않게 했다.

독일의 경제학자이며 정치학자, 철학자로 ‘마르크스주의(Marxism)’라는 지구촌 사상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 헤겔의 영향을 받아 무신론적 급진 자유주의자가 된 그는 만년에 사회과학에 집중하면서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 등을 집필, 자본주의 체제가 지양되고 피억압계급이 정치혁명을 통해 스스로의 해방을 획득해 가는 정치사회적 이론을 집대성했다.

경제연구에 집중하면서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함께 사회구조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대한 역사적, 경제적, 과학적 발전이 공동체에 끼친 영향과 그 상관관계를 분석한 과정은 예의 치열함과 진지함 때문에 무릇 학자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살았던 생가에 들어설 땐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그의 유물론적 명제만 뇌리에 맴돌았다. 여기저기 자세하게 살펴보면 그가 왜 그런 생각을 품게 됐는지 단서가 나오기라도 할 것처럼.

독일 트리어 칼 마르크스 생가에 가면 그가 생전에 쓴 많은 편지와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그는 이미 타계하고 없지만 그가 남긴 업적과 발자취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생가에는 그가 친필로 쓴 편지들이 많이 전시돼 있었다. 그 중 ‘치과병원 가기를 제일 두려워 한다’는 대목이 있는 편지를 보니 그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혁명가였으나 그의 내면에 흐르는 어린아이 같은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가 있어서 참 인상적이었다.

평범했던 인간의 한 부분을 바라보며 공감한 내 마음 한 켠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용솟음쳤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고인의 생가가 있는 트리어는 옛 유적을 찾는 관광객들로부터 관광 수입 높이기에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심사가 복잡해졌다. 세계 역사를 뒤흔든 그의 지대한 족적과는 달리 너무 고즈넉해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정말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는 것인가.

일행들과 늦은 저녁 공연장으로 발길을 돌릴 무렵, 공연을 해야 ‘존재의 의미’가 있는 여행이니까 이 평화로운 마을에서 마냥 감상에 젖고 싶은 ‘관념’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걸 느꼈다. 그 말이 맞나보다. <김보현(작곡가)?kbhmusic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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