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5일] 한국의 김치, 국제규격식품으로 승인 받다

2010년 남미독립의 투사 커플, 180년 만에 나란히 묻혀

2010년 7월5일 남미의 여성 독립투사 마누엘라 사엔스가 연인이자 남미 독립영웅인 시몬 볼리바르 장군과 180년 만에 재회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이 이날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있는 볼리바르 묘소 옆에 사엔스를 상징적으로 이장한 것이다.

남미 혁명의 주역인 볼리바르와 그의 연인 사엔스가 지난 2010년 저승에서나마 한 이불을 덮게 됐다.

사엔스가 묻혀 있던 고향 에콰도르의 공동묘지의 흙을 담은 상자를 볼리바르 묘소 옆에 안치하는 형식이었다. 볼리바르가 1830년 숨진 이후 180년 만이다. 사엔스는 1856년 디프테리아에 걸려 숨지자 화장됐고, 유골이 다른 주검들과 같이 버려지다시피 묻혔기 때문에 주검은 남아 있지 않다.

사엔스는 당초에 영국의 부유한 상인과 결혼했지만, 이후 헤어진 뒤 남미 독립투쟁에 참가했고, 이 이 과정에서 볼리바르를 만났다. 그녀는 볼리바르를 암살 위험에서 구해내기도 했고, 볼리바르가 숨질 때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둘의 사랑은 그러나 당대에는 부도덕, 불륜으로 여겨졌다. 이에 따라 남미혁명에 기여한 사엔스의 노력은 묻혔고, 볼리바르 사후 사엔스는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에서 추방됐다. 말년에는 먹고 살기 위해 페루에서 미국 포경선원들이 남미 여성들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를 대필해 주면서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남미 국가들은 그러나 지난 2010년 남미 독립 200돌을 맞아서야 남미 독립운동에 대한 그녀의 기여를 재평가하고, 생전의 연인이자 남미혁명 영웅인 볼리바르의 곁에 그녀를 데려다 줬다.

2009년 中, 우루무치서 폭동 140여명 사망

2009년 7월5일 중국 서북부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에서 최악의 폭동사태가 발생해 140여명이 숨졌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수도인 우루무치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해 140여명이 숨지고 828명이 부상당했으며, 261대의 차량이 불에 타고 상점 203곳과 주택 14채가 파괴됐다고 보도했다.

시위는 현지시각 5일 밤 8시 위구르족 시위대 3000여 명이 민족차별에 항의하면서 시작돼 새벽까지 계속됐으며, 경찰 1000명이 저지하자 폭력시위로 번졌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신화통신은 칼과 각목으로 무장한 폭도들이 시내 곳곳에서 폭력을 행사하고 건물과 차량을 부수고 불을 지르며, 약탈을 자행했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BBC 방송은 약 1만 명의 위구르족이 시위에 참가했다고 보도했다.

우루무치 정부는 이튿날인 6일 새벽 우루무치 시내에 교통통제령을 내려 주민들을 통제했다. 현지에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을 투입, 사실상 계엄상태에 돌입했다. 또 시위 참가자와 주동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작업을 진행했다.

우루무치 정부는 “폭동이 미리 준비되고 조직된 폭력 범죄로, 외국에서 선동하고 지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정부는 이번 시위가 위구르족 망명 지도자인 레비야 카디르(Rabiye Qadir, ?比?·?德?)가 이끄는 세계위구르대표대회의 치밀한 계획 하에 진행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미국에 망명 중인 레비야는 위구르 분리독립 운동 지도자로 중국의 위구르족 차별과 탄압을 서방에 폭로해온 대표적인 중국의 반체제 인사 중 한 명으로, 지난 2005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중국에서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이들 위구르인들은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 분열을 꾀하는 체제전복 세력이다.

망명한 위구르인들의 조직인 ‘세계 위구르회의'(WUC·본부 독일 뮌헨)의 제4회 대표대회가 지난 5월14일 일본 도쿄에서 나흘간 일정으로 열렸다. 중국 정부의 맹비난 속에서도 도쿄 국회의사당 바로 옆에 있는 헌정기념관에서 미국, 독일, 터키, 스웨덴, 네덜란드 등 세계 17개국에서 약 125명의 위구르인 활동가들이 참가한 가운데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열렸다. 같은 달 17일에는 도쿄에서 가두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2001년 국제식품규격위원회, 김치를 국제규격식품으로 승인

2001년 7월5일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24차 총회를 열고 김치를 국제규격식품으로 승인했다. 김치는 “절임배추에 고춧가루 마늘 생강 파 무 등 여러 양념을 혼합한 뒤 젖산 생성에 따른 적정한 숙성과 보존성이 확보되도록 저온에서 발효한 제품”으로 국제규격화 됐다. 우리 특유의 채소 가공법인 김치 담금의 특성이 모두 인정된 것이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의 공인에 따라 김치는 ‘kimchi’라는 영문 명칭으로 국제적으로 통용되게 됐으며, ‘기무치’란 일본식 이름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우리 정부는 ‘기무치’란 경쟁상품을 들고 나온 일본과 지난 1997년 모두 4차례 실무협의를 벌인 뒤, 제품명을 김치(kimchi)로 통일하는 단일 규격안을 마련, CODEX에 제출했다. CODEX는 식품 분야의 국제표준을 정하는 국제협의체로, 총 8단계에 걸쳐 심사를 진행한 다음 국제규격의 식품을 공인한다.

1977년 파키스탄에 쿠데타, 지아 울 하크 전권 장악

파키스탄의 지아 울 하크(사진 왼쪽)는 쿠테타로 집권해 11년간 친미 독재정권을 유지하면서 정적을 살해하고 친미노선을 견지했다.

1977년 7월5일 파키스탄의 육군 참모총장 지아 울 하크가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계엄 사령관이 된 뒤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곧 국민적 인기를 얻고 있던 알리 부토 당시 대통령을 살인 미수 혐의로 처형하고 장기 집권의 기반을 닦았다.

지아는 노동자들의 동맹파업을 금지하고 언론과 출판물에 대한 엄격한 검열을 실시하면서 다시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1979년 소련이 인접국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파키스탄은 미국의 지원으로 군비 증강에 착수했다.

지아 울 하크는 자신의 정치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파키스탄의 정치와 문화의 이슬람화에 주력했다. 1988년 지아가 비행기 사고로 죽자 파키스탄은 총선을 치렀고, 부토의 딸 베나지르 부토가 승리해 이슬람권 국가에서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됐다.

 

이상현 기자 ?coup4u@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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