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라운드업 10/13] 중국 7중전회 “시진핑 핵심지위 수호”
1. 중국 7중전회 “시진핑 핵심지위 수호”
– 중국 공산당 최고 영도기관인 중앙위원회는 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최종 점검 성격의 회의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당 핵심 지위 확립·수호를 강조. 이에 따라 16일 개막하는 당 대회에서 시 주석의 집권 연장이 확정될 것이란 예상에 더욱 힘이 실림.
– 12일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는 9일부터 나흘간 당 중앙위원 199명과 후보 중앙위원 159명, 중앙기율검사위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베이징에서 열린 당 제19기 중앙위원회 7차 전체 회의(7중전회) 결과를 담은 공보문을 전했음.
– 2천600여자 분량 중 ‘시진핑’을 총 14차례 거론한 공보문은 지난 5년간 당의 성과를 거론하며 “시진핑 동지의 당 중앙 핵심, 전당 핵심 지위를 확립하고,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시진핑 사상)의 지도적 지위를 확립한 것은 전당·전군과 전국 각 민족 인민의 공통된 염원”이라고 밝혔음.
– 그러면서 공보문은 “전당(全黨)은 두 개의 확립의 결정적 의미를 깊이 깨닫고 (중략) 두 개의 수호를 해내야 한다”며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 주위에 더욱 더 긴밀하게 결집하고 전면적으로 시진핑 사상을 관철”해야 한다고 강조.
– ‘두 개의 확립’은 시 주석의 당 중앙 핵심 및 전당 핵심 지위 확립과 시진핑 사상의 지도적 지위 확립을 말함. ‘두 개의 수호’는 시 주석 당 중앙 핵심 지위 및 전당 핵심 지위, 그리고 당 중앙의 권위와 집중통일영도를 각각 결연히 수호한다는 의미. 이들 내용은 다가오는 당 대회가 시 주석의 3연임 ‘대관식’이 될 것임을 기정사실로 하는 것으로 풀이.
2. 자민당 최대 파벌 ‘아베파’, 수장 없는 임시체제 유지
– 자민당 최대 파벌인 ‘아베파’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뒤를 잇는 파벌 수장(회장)을 뽑지 못해 당분간 현 임시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13일 보도. 아베파는 당초 아베 전 총리 국장(國葬)이 끝나고 후임 회장을 정할 예정이었지만, 조율에 난항을 겪으면서 새로운 체제로의 이행을 단념.
– 회장 대리를 맡은 시오노야 류 전 자민당 총무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하는 방안이 추진됐으나, 파벌 내 소장파와 참의원(상원) 측이 반발해 백지화. 참의원 측에선 세코 히로시케 참의원 간사장을 회장으로 미는 움직임이 있었고, 제2차 아베 정권(2012.12∼2020.9) 때 당선된 소장파 의원 내 시오노야 회장 안에 대한 반대 기류가 강해진 것으로 전해졌음.
– 이에 따라 13일 아베파의 새로운 체제를 발표한다는 시오노야 전 총무회장의 계획도 무산. 복수의 아베파 간부는 전날 밤 기자들에게 회장이 없는 현 체제가 언제까지 계속될지에 대해 “모른다. 당분간이다”라고 말했다고 NHK는 전했음.
– NHK는 “아베파는 조직으로서 의사결정이 용이하지 않은 상황이 드러났다”며 “아베 전 총리의 구심력으로 유지된 결속을 앞으로 어떻게 유지해 나갈지가 과제”라고 진단. 아베파 소속 국회의원은 97명으로 자민당 전체 의원의 4분이 1에 달함. 이 파벌의 수장이었던 아베 전 총리는 지난 7월 8일 참의원 선거 유세 도중 총격으로 사망.
3. 인도네시아 발리 폭탄테러 20주기 추모행사
– 20년 전 202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도네시아 발리 폭탄 테러 20주기를 맞아 발리와 호주 시드니 등지에서 추모 행사가 잇따라 열렸음. 12일 호주 ABC 등 현지 언론과 외신 등에 따르면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시드니 쿠지 비치에서 열린 발리 폭탄 테러 20주기 행사에 참석해 “20년이 지나도 당시 아픔이 가시지 않는다”라며 당시 참사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추모.
– 2002년 10월 12일 인도네시아 휴양지 발리에서는 나이트클럽 등에서 연쇄 폭탄 테러가 발생해 모두 202명이 사망. 당시 테러로 호주는 자국민 88명이 사망해 인도네시아인들보다 많은 희생자를 냈다. 이날 추모행사가 열린 곳은 당시 테러로 선수 6명이 사망한 쿠지 돌핀스 럭비팀의 홈구장이 있는 곳.
– 테러가 벌어진 발리에서도 각종 추모 행사가 이어졌음. 호주 총영사관은 이날 발리에서 당시 테러의 희생자들을 위한 침묵의 시간을 가졌음. 이 자리에는 테러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 등 200여 명이 참석. 이날 저녁에는 폭탄 테러 장소 근처에서 사이렌이 울리고 1분간 묵념하는 추모 행사가 열림.
발리 테러 20주년 맞아 추모사 하는 앨버니지 호주 총리
– 20년이 지났지만, 테러의 상흔은 지워지지 않고 있음. 간혹 언론을 통해 들려오는 테러범의 소식은 피해자와 유가족을 고통스럽게 함. 당시 테러는 동남아시아 이슬람 통합국가를 건설하겠다며 결성된 동남아 이슬람원리주의 연합단체 제마 이슬라미야가 자행. 이 테러로 인도네시아는 강력한 반(反)테러법을 제정하고 대대적인 테러와의 전쟁에 나서 테러 조직을 소탕, 600명이 넘는 사람들을 검거.
– 당시 테러에서 폭탄을 만들고 발리의 미국 영사관 밖에 폭탄을 설치한 주범 알리 임론은 여전히 인도네시아 감옥에 수감 중. 다른 주범들은 대부분 총살형을 당했지만, 그는 수사에 협조한 대가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음. 최근에는 또 다른 테러 주범인 우마르 파텍이 풀려날 수 있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음.
4. 미얀마 수치 고문 3년형 추가, 전체 형량 26년
– 미얀마 군사정권이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에게 또다시 3년형을 추가. 12일 AP,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군정 법원이 이날 수치 고문의 부패 혐의 2건을 유죄로 인정해 각각 3년형을 선고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 이는 수치 고문이 건설업자 마웅 웨익에게 55만달러(약 7억9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에 대한 재판 결과. 이로써 수치 고문은 전체 형량이 26년으로 늘었음.
– 군정 법원은 앞서 지난달 29일에는 수치 고문과 그의 경제 자문이었던 호주인 경제학자 숀 터넬에게 공무상 비밀엄수법 위반 혐의로 각각 3년형을 선고. 미얀마 군부는 수치 고문이 이끈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을 거둔 2020년 11월 총선이 부정선거였다며 지난해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 이후 선거 조작과 부패 등 최소 18개 혐의를 적용해 수치 고문을 잇달아 기소.
– 수치 고문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지만, 법원이 연이어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형량이 계속 추가되고 있음. 수치 고문의 지지자들과 분석가들은 군정이 수치 고문을 각종 혐의로 기소하고 유죄를 선고함으로써 쿠데타를 정당화하고 수치의 정치적 재기를 막으려 한다고 보고 있음.
– 군정 법원은 일본인 다큐멘터리 작가 구보타 도루에게도 3년형을 추가. 군정은 이날 구보타의 이민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3년형을 선고. 지난 7월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의 반군부 시위 현장을 촬영하다가 붙잡힌 구보타는 이달 5일에는 국가 안보에 유해한 정보 유포 혐의와 반군부 선동 혐의로 각각 7년형, 3년형을 받았음.
5. ‘히잡 시위’ 확산 이란, 모바일·인터넷 접속 전면 차단
–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다가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22) 사건으로 촉발한 반정부 시위가 다시 확산할 움직임을 보이자 당국이 인터넷 통제를 더욱 강화. 이란 보안 당국은 12일(현지시간) 정오를 기해 햄러헤-아발, 이란셀, 라이텔 등 주요 모바일 사업자의 인터넷 접속을 전면 차단.
– 인터넷 통제 감시 사이트 넷블록스는 이날 이란의 인터넷 트래픽이 평소보다 25% 가량 줄었다고 밝혔음. 그간 당국은 시위가 주로 벌어지는 오후 4시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인터넷을 차단해왔음. 이란에서는 시위 이전에도 트위터·유튜브·페이스북·텔레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 대한 접속이 제한돼 있었지만, 왓츠앱과 인스타그램은 사용할 수 있었음. 하지만 이번에는 이마저도 접속이 막혔음. 다만, 국내 문자 메시지와 전화는 사용이 가능.
– 이날 정오부터 테헤란 도심 곳곳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음. 경찰은 최루탄 등을 쏘며 시위대를 해산. 일부 시위대가 도로를 행진하면서 샤리아티 거리 등 도심 주요 도로에서 극심한 차량 정체가 빚어졌음. 테헤란에서 시위는 이달 초 소강상태를 보이는 듯했으나, 최근 다시 확산하는 모양새.
– 아미니는 지난달 13일 테헤란 도심에서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도 순찰대'(가쉬테 에르셔드)에 의해 체포. 그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중 갑자기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6일 숨졌음. 이 사건은 이란 내 광범위한 반정부 시위를 촉발. 이란 정부는 외부 반정부 세력이 이번 시위의 배후라고 주장하며, 폭력 행위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