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직 묵상] ‘보시기에 좋았더라’···”자연을 악용하는 탐욕을 멈추게 하소서”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금식 기도

*이사야 58-62 | 잠깐묵상 | 성경통독 209일차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기도가 아닌 것에 응답하기도 하십니다. 신음에도 응답하시고, 찰나의 순간에 내가 품었던 마음이나 생각에도 응답하시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지나가는 말 한 마디를 기억하시고 응답해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기도이고 어디서부터 기도가 아닐까요?

내가 기도하는데 그게 하나님께는 기도가 아닐 수 있고, 나는 기도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기도로 받으시기도 합니다. 내가 드렸다고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들으셔야 기도입니다.

즉, 기도의 기준은 기도하는 나에게 있지 않습니다. 내가 얼마나 기도에 열심을 내는가? 내가 얼마나 기가막힌 내용을 가지고 기도하는가? 그것이 기도의 깊이나 넓이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듣지 않으시면 그냥 허공에다 뿌리는 잡음이고 소음 아닐까요?

기도는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 다 있습니다. 그리고 각 종교마다 기도의 방법론들이 다양합니다. 그 대부분의 방법론들에 공통적인 원리가 있는데, 그것은 ‘열심히 기도하면 신이 들어주신다’입니다.

응답의 기준이 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자에게 있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기도할까요? 더 큰 비용을 들여 기도하고, 더 자극적으로 기도합니다.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을 벌일 때,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해 했던 행위를 기억하십니까? 칼로 몸을 그으며 기도했습니다.

몰렉 제사는 어떨까요? 자식을 불에 태우기까지 정성을 보이면 신이 응답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기사 제목과 유튜브 썸네일을 자극적으로 달면 사람들이 더 많이 보는 것처럼, 인간이 신에게 소위 어그로를 끄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가 하는 금식기도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통독본문인 이사야 58장은 하나님이 금식에 대해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7)

하나님의 귓가에는 기독교인들의 기도 소리만큼이나 크게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억압과 압제 속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절규입니다. 음식이 없어서 배고픈 사람들의 신음소리도 들립니다. 하나님의 귓가에 잘 먹지 못하는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쟁쟁한데 고작 며칠 굶은 것 가지고 생색내며 기도한다면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마음이 어떠실까요?

주린 사람과 밥 한끼 같이 하는 것이 며칠 금식기도하는 것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더 값진 금식일 수 있습니다. 그 밥 한끼가 그 사람에게는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베이직교회 아침예배(8.2)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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