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취임 100일 한동훈 법무장관, 검사 사직 인사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24일 취임 100일을 맞았다. 한 장관은 지난 5월 15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e-pros)에 ‘사직인사, 감사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검사가 된 첫날, 평생 할 출세는 그날 다 한 걸로 생각하자고 다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정당하게 할 일 한 공직자가 권력으로부터 린치 당하더라도 끝까지 타협하거나 항복하지 않고 시스템 안에서 이겨낸 선례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아시아엔>이 한동훈 장관의 검사 사직서 전문을 독자들과 공유한다. <편집자>
‘사직 인사. 감사드립니다’
사직서를 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검사가 된 첫날, 평생 할 출세는 그날 다한 걸로 생각하자고 다짐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세금으로 월급 주는 국민을 보고 일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했지만, 검찰 조직을 의인화해서 사랑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말이 정확하겠어요.
그렇지만 이 직업이 참 좋았습니다. 생활인으로서, 직업인으로서 밥 벌어먹기 위해 일하는 기준이 ‘정의와 상식’인 직업이라서요.
정의와 상식에 맞는 답을 내고 싶었습니다. 상대가 정치권력, 경제권력을 가진 강자일수록 다른 것 다 지워버리고 그것만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건에 따르는 상수인 외압이나 부탁 같은 것에 흔들린 적 없었습니다.
덕분에 싸가지 없단 소릴 검사 초년 시절부터 꽤나 들었는데 ‘그런 거 안 통하는 애, 술자리도 안 오는 애’로 되니 일하기 편한 면도 있었습니다. 세상에 공짜가 없으니 욕먹은 게 억울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단지 그 직업윤리를 믿었어요. 찬찬히 돌아보면 한 번도 쉬운 적은 없었습니다만, 좋은 분들과 함께 일한 덕분이고, 무엇보다 운이 좋았습니다. 물론, 제가 한 일들이 모두 다 정답은 아니었겠지만, 틀린 답을 낸 경우라면 제 능력이 부족해서지 공정이나 정의에 대한 의지가 부족해서는 아니었을 겁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제가 그렇게 말할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일해온 과정에서 상처받았을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은 무겁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자기 편 수사를 했다는 이유로 권력으로부터 광기에 가까운 집착과 별의별 린치를 당했지만, 팩트와 상식을 무기로 싸웠고, 결국 그 허구성과 실제가 드러났습니다. 그동안 두들겨 맞으면서, 저는 제가 당당하니 뭐든 할 테면 해보라는 담담한 마음이었는데, 권력자들이 저한테 이럴 정도면 약한 사람들 참 많이 억울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에 힘을 냈습니다.
저는 누가 ‘왜 남아있냐’고 물으면 ‘아직 검찰에 남아 할 일이 있다’라는 대답을 해 왔습니다. 제가 말한 ‘할 일’이란 건, 정당하게 할 일 한 공직자가 권력으로부터 린치 당하더라도 끝까지 타협하거나 항복하지 않고 시스템 안에서 이겨낸 선례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검사의 일은 ‘what it is’ 못지않게 ‘what it looks’도 중요한 영역이니, 저는 상황이 어떻게 되든 제가 검사로서 다시 정상적으로 복귀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 지 오래였습니다.
지금은, 제가 했던 떠들썩했던 사건들보다, 함께 했던 분들이 떠오릅니다. 재미없는 사람이라서 그때그때 마음을 전하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어려울 때 저보다 더 마음 아파해 주신 부산고검 관사의 安 여사님도 생각 나네요. 좋은 실무관님들, 수사관님들, 방호원님들, 행정관님들, 파견 공무원님들, 검사님들과 일할 수 있어서 저는 참 좋았습니다. 인연이 닿지 않아 함께 하지 못한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2022. 5. 15. 검사 한 동 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