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 이어 ‘한복공정’ ‘김치공정’ 마침내 ‘아리랑공정’까지?
중국의 역사왜곡이 또 시작되는 것 같다. 역사왜곡인 ‘동북공정’에 이어 이제 문화공정인 ‘한복공정’, ‘김치공정’ 그리고 ‘아리랑공정’까지 이어가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대회 초반부터 오심 논란으로 얼룩지고 있다. 이번에는 명백한 규칙 위반을 한 중국 선수들은 입상을 하고, 경쟁국 선수들은 잇따라 실격 처리되는 등 도를 넘는 오심이 이어지고 있다. 지구촌 손님을 모아놓고서 ‘중국체전을 여는 중이냐’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특히 2월 7일 남자 1000m에서 우승후보인 한국대표팀의 황대헌, 이준서 선수는 준결승에서 각각 1위, 2위로 통과했지만, 심판진은 레인변경 반칙을 했다며 실격 처리했다. 결승에서도 1위로 들어온 헝가리 선수가 옐로카드를 받고 탈락하면서 중국 선수가 어부지리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오죽하면 대한체육회가 즉시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준결승 경기를 제소했을까? 그리고 개막식 행사에서는 한복 차림의 여성이 등장해 중국이 올림픽에서 비뚤어진 자국중심주의를 선전하려는 것 같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개막식 전 전광판으로 상영된 홍보 영상에도 한복은 물론 윷놀이와 김장, 강강술래 장면까지 담겼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이 2021년 10월21일 부터 11월 22일까지 전국의 1006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 10명 중 7명은 중국이 가장 위협적인 나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니까 북한보다도 중국을 더 위협적인 국가로 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통일연구원은 이렇게 중국이 부정적인 이미지가 높은 것은 중국의 ‘전랑외교’(戰狼外交, 늑대전사외교) 등 강압적이고 주변국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대한민국 대표 민요인 ‘아리랑’까지 자기나라 노래라고 떼를 쓰는 ‘아리랑공정’까지 저지르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이 노래 아리랑은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작곡가들로 구성된 선정대회에서 82%라는 높은 지지율로 단연 1위에 올랐다. 선정단에는 단 한명의 한국인도 없어 더욱 놀라게 했다. 한국인이 가장 즐겨 부르는 아리랑은 강원도의 ‘정선아리랑’, 호남지역의 ‘진도아리랑’ 경상남도 일원의 ‘밀양아리랑’ 등이다.
아리랑은 구전으로 전승되고 재창조되어 온 우리나라의 전통 민요다. 약 60여 종 3600여 곡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리랑은 인간의 창의성, 표현의 자유, 공감에 대한 존중을 덕목으로, 누구라도 새로운 사설(辭說)을 지어 낼 수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토착성이 강하고, 일상생활상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민간전승다운 전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민요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글과 한국어 열풍이 불고 있는 해외에서는 지금 우리나라 아리랑이, 세계문화유산의 탯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한 한글보급으로 국가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매순간에, 세계인을 하나로 묶어 주는 힘을 지닌 아리랑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자리 매김되고 있다.
아리랑은 작가 미상의 우리나라 민요로 남녀노소 누구나 잘 알고 부른다. 우리는 아리랑을 흔히 사랑에 버림받은 어느 한 맺힌 여인의 슬픔을 표현한 노래로 대충 알고 있다. 그러나 원래 참뜻은 ‘참 나를 깨달아 인간 완성에 이르는 기쁨을 노래한 깨달음의 노래’라고 한다.
‘아(我)’는 참된 나(眞我)를 의미하고, ‘리(理)’는 ‘알 다, 다스리다, 통한다’는 뜻이며, ‘랑(朗)’은 ‘즐겁다, 다스리다’란 뜻이다. 그래서 ‘아리랑(我理朗)’은 ‘참된 나(眞我)를 찾는 즐거움’이라는 기쁨을 노래한 것이다. 그러니까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것은, 나를 찾기 위해 깨달음의 언덕을 넘어간다는 의미이고, 고개를 넘어간다는 것은 곧 ‘피안의 언덕’을 넘어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의 뜻은 진리를 외면하는 자는 얼마 못가서 고통을 받는다는 뜻이다. 진리를 외면하고 오욕락(五慾樂)을 좇아 생활하는 자는 그 과보로 얼마 못 가서 고통에 빠진다는 말이다.
이러한 아리랑의 이치와 도리를 알고 나면, 아리랑은 ‘한(限)의 노래’나 저급한 노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깊은 뜻이 담겨 있는 아리랑은 우리의 민요이고, 전 세계인의 노래가 된 것이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2022 베이징올림픽’에서부터 문화공정 나아가 ‘아리랑공정’까지 감행할지 모르겠다.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일본에 이어 중국에까지 외침 당하는 수모를 겪지 않도록 잔뜩 경계를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