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의 포토보이스 #58] ‘수포자’와 ‘리포자'(리더십 포기자)의 상관관계?
‘수포자’라는 말이 있다. 수학을 포기한 자(者)를 줄여 쓴 말로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은어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수학을 싫어하거나 포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수학의 중요성이나 필요성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수학을 잘하면 어떤 이점이 있는지 그리고 향후 진학에 있어서 더 나은 기회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내용이 어려워지고 수학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으니 어느 순간이 되면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수학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어렵고 힘든 것은 매한가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비단 수학에 재능이 있거나 탁월한 능력이 있는 이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들이 수학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포기하는 것보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유용하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이른바 왜 해야 하는지(why to do)에 대해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어렵고 힘든 부분, 즉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넘어야 할 허들(hurdle)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what to do) 어떻게 해야 하는지(how to do)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그래서 이들은 기본적으로 실시간 수업에 충실하고 예습과 복습을 빼놓지 않는다.
그런데 이와 같은 현상은 학교에서 수학 등과 같은 특정 과목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조직에서도 무엇인가를 포기한 이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리더십이다. 실제로 포기한 것은 아닐지라도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이들 역시 리더십이 왜 중요하고 필요한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리더십을 발휘하면 어떤 이점이 있고 향후에 더 나은 기회와 선택지가 있다는 것도 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모를 리가 없다. 적어도 머리로는.
이들의 문제는 실행이 뒤따르지 않는 것이다. 배운 것을 현장에 적용하거나 시도하지 않는 것인데 그럴싸한 이유들도 있다. 자신에게는 익숙하지 않다거나 조직문화나 자신의 상급자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등과 같은 이유다. 때때로 팔로워들의 문제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모두 외적 귀인(external attribution)을 하는 경우다.
한편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이나 대상 앞에서 자신의 본능을 극복하지 못하기도 한다. 배운 대로가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이다. 이는 리더십에 대한 충분한 연습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발생한다. 리더십에 대해 한 번 듣거나 읽은 것으로 자신의 리더십이 바뀔 것이라는 착각도 한몫한다.
이렇게 되면 제아무리 좋은 리더십 교육을 받고 책을 접하고 코칭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무리를 느끼게 되면 포기하는 것을 하나의 방법으로 여기게 된다.
물론 무엇인가를 포기했다고 해서 다시 시작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나아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먼저다.
리더십을 다시 시작한다면 앞서 제시한 왜(why to do)와 무엇(what to do) 그리고 어떻게(how to do)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용과 방법 측면에서는 이미 쉽게 접할 수 있다.
아울러 새로운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찾기보다는 그동안 배웠던 리더십에 대해 살펴보기를 권한다. 동서고금(東西古今), 남녀노소(男女老少)를 막론하고 리더십의 기본은 크게 변함이 없다.
다음은 실행이다. 자신이 바로 할 수 있는 것부터 실행으로 옮겨보는 것이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리더십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과 손발로 하는 비중이 훨씬 더 크다.
조직에서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이 리더십을 포기하는 것은 수학을 포기하는 것에 비할 바가 안된다. 수학을 포기하면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겠지만 리더십을 포기하면 개인은 물론,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 리더십을 포기했다면 다시 시작해보자. 자신은 물론, 조직 구성원들의 극적인(dramatic) 반전과 반등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