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준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이 만난 천재 피아니스트 유예은
[아시아엔=오준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 전 UN대사] 예은이를 만난 것은 주 싱가포르 한국 대사로 근무하던 2010년이었다. 처음 말을 건넸을 때 예은이는 나를 향해 얼굴이나 몸을 돌리지 않고 내 목소리를 들으려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태어날 때부터 안구 결함으로 보지 못하고 청력에 의존한 것이다. 선천성이 많은 청각장애와 달리, 대부분의 시각장애인은 살다가 질병 등으로 시력을 잃게 되는데, 예은이처럼 태어날 때부터 안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나의 유엔 대사 시절 193개 회원국 중에 두 명의 시각장애인 대사가 있었다. 그들은 각각 어렸을 때와 성인이 된 후에 시각장애가 생겼는데, 볼 수 있던 시절을 기억해서인지 누가 이야기를 하면 그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특히 최근에 시각장애가 생긴 멕시코 대사는 20% 이내로 남은 희미한 시력으로도 마치 보이는 것처럼 행동하였다.
8살의 피아니스트 유예은이 2010년 싱가포르에 온 것은 TV에 출연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 시각장애를 가진 소녀가 와서 공연을 하는데 대사가 참석할 수 있냐고 방송국으로부터 초청이 왔다. 이미 그 전 해에도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싱가포르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는 설명도 있었다. 공연을 보니 어린 시각장애 소녀가 수준 높은 피아노 곡을 외워서 연주하는 모습이 저절로 감탄을 불러일으켜, 싱가포르 TV가 유예은 양을 계속 초청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공연이 끝나고 예은이와 부모님을 만났다. 아버지(고 유장주씨)는 전동 휠체어를 사용하는 중증 장애인이었는데, 식사를 함께 하며 예은이를 입양하게 된 이야기를 해줬다. 자신이 사회복지사 박정순씨와 결혼하고 포천에서 작은 장애인 시설을 운영해 온 일들부터 설명했다. 그런데, 2002년 어느 날 누군가 시각장애가 있는 아기를 문 앞에 놓고 가서 돌보다가 결국은 입양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름도 모르니까, 자신의 성을 주고 ‘유예은’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런데 예은이가 3살쯤 되었을 때 어머니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집에 있던 중고 피아노로 음을 그대로 쳐서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집안 형편이 어렵지만 몇 번의 피아노 레슨을 받게 해 주었다. 그렇게 피아노 신동 소문이 나자 5살 때인 2007년에는 SBS ‘스타킹’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다.
최근에 서울시 디딤돌봉사단은 내가 유예은 양을 인터뷰 한 동영상을 제작했는데, 거기서 예은이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나: 그때 (3살 때) 처음에 어떤 노래를 어머니가 부르는 걸 듣고 피아노로 쳤어요?
예은: 제목은 생각이 안 나는데, 가사가 ‘이른 아침에…’ 이런 소절로 시작되는 노래였어요. (연주를 들어보니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였음)
나: 처음에는 피아노의 ‘도레미파솔라시도’도 몰랐죠?
예은: 그냥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어요. 아무 생각없이 듣고 치게 된 것 같아요.
스타킹에 출연한 후 예은이는 정식 레슨도 받고 공연도 하게 되었다. 예은이의 음에 대한 감각과 기억력은 정말 뛰어나다. 나와의 인터뷰에서 10년 전 싱가포르에 왔을 때 대사관저 식사 후 노래방 기계로 노래를 한 것을 회상하며 “그때 대사님이 부르신 노래도 제목은 모르지만 피아노로 칠 수 있어요”라고 했다. 나 자신도 어떤 노래를 했는지 전혀 기억이 없었는데, 예은이의 연주를 들어보니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라는 곡이었다.
나는 2013년 싱가포르를 떠나 유엔대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듬해인 2014년 우리 유엔대표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혼성 음악단체인 ‘뷰티풀마인드’를 한국으로부터 초청하여 유엔에서 공연을 가졌다. 그때 참여한 연주자 중에 ‘유예은’의 이름을 발견하여 너무도 반가웠다. 이제 12살이 되어서 조금 더 성장한 모습이었고 연주의 수준도 더 높아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예은의 부모님도 뉴욕에 함께 와서 반갑게 재회하였다. 특히 아버지 유장주씨와는 내가 장애인권리협약 의장을 맡게 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장애인 복지 문제에 관한 의견을 많이 나눈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내가 유엔대사를 마지막으로 외교부를 퇴직한 2년 후인 2018년 유장주 원장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예은이는 인터뷰에서 아버지를 회상하며 “같이 지냈던 시간을 생각하면 정말 많이 보고싶다”고 했다.
예은이는 또한 피아노 이외에 작곡도 하고, 바이올린과 플루트도 배워서 연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왜 그렇게 여러가지를 시도하냐고 물으니 “바이올린 소리가 너무 좋아서 배워보고 싶었고, 여러가지 악기를 하면 작곡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작곡은 10살 때부터 시작해서 여러 곡을 만들었지만 아직 악보를 사용하지 못해서 3곡 정도만 기억해서 연주할 수 있다. 모두 아름답고 서정적인 곡이다. 앞으로는 작곡한 곡을 녹음하고 점자 악보도 사용하려고 한다.
예은 양은 최근 피아노 전공으로 한세대에 수시 합격했다. 앞으로의 희망을 이야기해 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힘들고 아픈 사람들에게 힐링의 음악을 전해주는, 세상을 빛내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예은이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15년전 유엔에서 만난 이익섭 교수는 연세대 최초의 시각장애인 교수였다. 그는 2006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이 합의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후 한국인 최초로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불행히도 2010년 58세 나이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언젠가 뉴욕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에 시력을 잃어서 꿈을 꾸면 어릴 때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만 꿈에 나와요.”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한 예은이의 꿈에는 소리만이 있을 것이다. 화면은 없고 사운드만 있는 영화처럼. 하지만, 그 소리들이 예은이의 피아노처럼 아름다운 선율로 채워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밝아진다.
필자와 유예은 양의 인터뷰 동영상은 유튜브 [오준대사가 만난 사람] 유예은 피아니스트 – 희망을 연주하는 천재소녀(https://youtu.be/quZbhki-Jtl)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