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7일] 대만총통 최초로 미국 방문한 날

2011년 그린피스 한반도 ‘원전 반대’ 항해 시작

2011년 6월7일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한국내에서 가동 중인 모든 원자력발전소와 신규 발전소 후보지를 돌며 원전 반대운동을 벌인다고 선언했다. 세계적인 환경운동 선박 ‘레인보 워리어호’가 투입됐다.

그린피스는 이날 인천항 제1부두에 정박된 레인보 워리어호에서 선상 기자회견을 열어 국내 활동계획을 밝혔다.

마리오 다마토 그린피스 동아시아 지부장은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원자력발전소를 보유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많은 원전을 건설하는 나라”라며 “레인보 워리어호로 원전 지역과 원전 후보지를 방문해 주민들과 연대 활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린피스는 전세계 350만 명의 회원을 둔 환경단체다. 레인보 워리어호는 역사적으로 ‘반핵운동’의 상징이다. 1985년 7월 프랑스 핵실험이 벌어지는 폴리네시아 모로루아 환초로 반대운동을 벌이려고 뉴질랜드 오클랜드항에서 정박하던 중 폭파돼 사진작가 한 명이 숨지기도 했다. 이 사건은 나중에 프랑스 정보국이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고 당시 미테랑 대통령은 실각 위기를 겪었다. 2011년 3월 한반도 연안에서 참치 조사를 벌이고 퇴역할 예정이던 레인보 워리어호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 후쿠시마 연안으로 급파돼 해양오염 조사를 벌였고 같은 해 6월4일 핵 없는 한국 캠페인을 위해 인천항에 들어왔다.

2010년 50년 백악관 출입 기자 퇴진

2010년 6월7일 당시 89세의 미 백악관 출입기자 헬렌 토머스 기자가 유대인 관련 발언 파문으로 만 50년을 지켜온 백악관 기자실을 불명예 퇴진했다.

레바논계 미국인인 토머스는 열흘 전인 5월27일 백악관에서 “이스라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한 유태인 랍비의 질문에 “유대인들은 ‘염병할’ 팔레스타인을 떠나 (자신들의 집인) 폴란드나 독일, 미국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답했다.

이 랍비가 자신의 아들이 찍은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고, 이 동영상은 인터넷 공간에 급속히 퍼져나갔다. 토머스가 ‘자신의 실수’를 사과했지만, 결국 ‘은퇴’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다.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감이 충만했던 그는 때로 하마스나 헤즈볼라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백악관 기자단은 “도저히 옹호하기 힘든 발언”이라는 성명을 내놨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모욕적이며, 비난받을만한 발언”이라는 논평을 하기도 했다.

최초의 백악관 출입 여성기자로, 백악관 출입기자단 대표까지 지낸 토머스는 미국 언론계에서 여성의 장벽을 허문 선구자였다. 그러나 90살 생일을 불과 2개월 앞두고 설화로 불명예 퇴진한 것이다.

2008년 일본서 연쇄 묻지마 살인

2008년 6월7일 일본에서 휴일 대낮에 지나가는 사람을 특별한 이유 없이 칼로 마구 찌르는 사건이 발생해 7명이 숨지고 10~11명이 다쳤다. 이날 낮 12시30분 전자제품 판매점이 몰려 있는 도쿄 제이아르 아키하바라역 부근 네거리에서 가토 도모히로(당시 나이 25세)가 빨간불을 무시하고 트럭을 몰고 돌진해 사람 5명을 치었다. 곧이어 그는 차에서 내려 가지고 있던 칼로 주변의 쇼핑객들을 마구 찔렀다. 사망자는 19살, 47살, 74살의 남성 등 3명이었으나, 중상자가 많아 곧 사망자가 7명으로 늘어났다.

범인은 범행 장소 인근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폭력단원이라고 밝힌 그는 “세상이 싫어졌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아키하바라에 갔다. 누구라도 좋았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 장소는 휴일 차량통행금지 지역인 ‘보행자 천국’이어서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같은 해 3월 23일 일요일 이바라키현 쓰치우라의 한 쇼핑센터에서 아무런 이유 없는 칼부림 사건이 발생, 다수의 dlsaudv해가 있었다.

2006년 알 자르카위 사망

2006년 6월7일 요르단 태생의 이슬람 테러리스트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아랍어:??????? ?????????, 1966년10월 30일)가 사망했다. 미군의 공습을 받고 7명의 다른 보좌진들과 함께 죽은 것이다.

본명은 아흐메드 파델 나잘 알 할라일레(아랍어:???? ???? ?????? ?????????)였던 알 자르카위는 911 테러이후 오사마 빈 라덴 대신해 알카에다를 지휘해왔다. 또, 이라크의 무장단체인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를 지휘해 자폭 테러, 외국인 납치, 살해 등을 주도하였다.

알 자르카위는 요르단 자르카에서 태어나 1980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 무자헤딘과 함께 소련에 맞서 싸웠다. 종전 후인 1992년 요르단에 귀국, 과격 이슬람 운동에 참여했다. 1999년 압둘라 2세의 즉위에 따른 사면으로 석방된 그는 아프간을 거쳐 이라크 북부 쿠르드로 숨어들었다. 이후 2004년 이라크에서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를 세우고 여러 저항세력을 주도했다.

1995년 대만 총통 대만 역사상 최초 미국 방문

1995년 6월7일 리덩후이(李登輝)?대만 총통이 대만 지도자로는 최초로 미국을 방문했다. 모교인 코넬대학 동창회 참가를 위한 개인자격으로 이뤄졌지만, 탈냉전 이후 달라지고 있는 미-중관계를 선명히 드러냈다. 이 총통의 이날 방미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대만의 노력이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중화민국의 존재를 부각시켰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이등휘 총통은 중국이 대만의 외교를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발언은 당시 미-중, 중-대만간 갈등을 반영한 동시에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중국은 대규모 군사훈련을 통해 대만을 위협했다. 주미대사도 소환했다. 미국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을 방해했고, 인권 후진국이라고 비난했다.

이상현 기자 coup4u@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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