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오징어게임 ‘문화강국 대한민국’, 사상누각 안 되려면···
[아시아엔=박준석 예술인연대 고문, 연극배우] 예술계 4대 거짓말이 있다. 첫째,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둘째,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 셋째, 예술가는 광대다. 넷째, 고로 헝그리 정신이 필요하다. 아니다!
다음과 같이 바꾸어 표현해야 한다. 1. 예술가는 소중한 사회적 구성원이다. 예술은 길지만 예술가의 삶은 짧다. 예술가들에 집중해야한다, 예술은 덤이다. 2.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을 빨리 구축해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 지금은 팔길이 할 때가 아니다. 3. 예술가가 광대인 시대는 농경사회다. 지금은 예술가는 하나의 직업이다. 예술가가 가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는 예술가의 적이다. 4. 예술하는 귀족은 없다. 예술가가 귀족이었던 적은 없다.
첫 문장에 사용된 art는 의술로서 히포크라테스의 잠언이 출처라고 한다. 당시의 히포크라테스의 의술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며, 기술의 연마는 끝이 없지만 인생은 짧다는 안타까움은 예술가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예술은 소중하고 인생은 보잘 것 없다는 말이 아니다. 이 유명한 문장이 예술계에서는 최악의 저주로 작용한다. 예술을 찬양하면서도 예술가를 백안시한다. 민족문화의 창달을 헌법에 명시하면서도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예술인권리보장법)은 2021년에야 만들어졌으며, 이 법은 그야말로 제목 말고는 아무 쓸모없는 법이다.
권리를 보장해야 할 만큼 예술가들은 모든 것을 빼앗긴 채로 살고 있다. 우선, 문화예술회관이라는 극장을 보자. 전세계 예술가들은 이런 공공극장을 직장으로 삼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예술가들은 그들에게서 나오는 지원금에 줄서서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를 강요받고 있다.
좌우, 진보보수를 망라하고, 예술가들을 정책의 목적으로 하는 정책은 없다. 예술가들은 민족예술창달의 수단일 뿐이며, 국가경쟁력의 수단이고 한류 등의 성과를 내야 하는 수단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말 그대로 예술가라는 사람에 초점이 맞춰진 정책은 없다.
2. ‘팔길이 정책’이라고 하는데 이는 대한민국에선 도둑들이 도둑질을 편하게 하기 위해 주장하는 말일 뿐이다. 병원만 지어놓고 의사와 간호사를 뽑지 않고, 병원장을 서무나 회계도 하게 하고 임금체계도 정해주지 않고 팔길이 하자는 것이다.
학교만 지어놓고 서무부장이 교장 하고, 관리직원이 교무주임하고, 소방서 건물만 지어놓고 소방재단을 만들어 운영하는 꼴이다.
미술관이나 문화예술회관은 기능적 기관으로서 예술창작기관이다. 거기에 예술가들이 있고, 정책을 만들고, 거기에 충분한 예산이 있을 때 그때 비로소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예술기관과 정책기관 어디에도 예술가들의 당사자주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90년대말 장애인계에서 주장되었던 그 당사자주의다.
예술의전당을 예로 들어보자. 예술의전당 직원이 380명이고 청소 및 경비 인력도 있지만 예술가들은 단 한 사람도 고용이 없다. 이런 예술의전당이 팔길이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예술정책의 현주소다.
이 말은 누가 했든, 대통령을 속인 말이다. 그 말로 다시 속이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예술가를 이용해먹는 자들로서 그들의 밥이 예술가들이다. 정치권은 이 사태를 알아야 한다.
3. 예술가는 광대이다. 현대사회의 모든 산업인들은 광대정신이 필요하다. 기업의 경우 창의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 기업은 계속 사라지고 있다.
100년 전의 기업 가운데 아직도 살아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 페이스북과 아마존이 하는 일이 광대적 아이디어이며 예전의 산업사회에서는 없던 업태이다.
반면에 현재 대부분 국가에서 예술가들은 공무원이다. 바꾸어 말하면 광대적 공무원이다. 세금을 창의적으로 사용하여 가성비, 가심비價心比 높게 시민에게 서비스하는 예술공무원체제가 대부분이다.
미술품도 정부가 사준다. 미술관은 전시가 주목적이 아니라 미술품 선별과 소장을 위한 구입이다. 사실 우리나라 갤러리는 유럽의 길거리의 숍이어야 한다. 왜 갤러리들이 많은 줄 아는가? 부동산 재테크와 부자들의 허영이 만난 결과이기 때문이다.
전시료 50%에 물감 등의 제작 비용을 생각하면 작품 하나당 500만원이어도 쉽지 않다. 미술관과 숍 체제로 가야 시민과 미술가들이 직접 만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농경사회에서의 예술가들의 존립양태와 현재의 고도화된 도시에서의 존재양태는 완전히 다르다.
예술의전당에 당장 500명의 예술가를 출연계약에 의한 일자리로 예술가를 배치해서 제작극장화 하는 일을 기재부가 막는다고 징징대는 장관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불행이다. 장관은 이런 일을 해결하라고 있는 것이다.
기재부는 100만원 자본금 재단에 수천억원, 지금은 조 단위의 건물을 무상 양도했다. 이 특수법인을 취소하고 재산을 정부에 귀속시킨 후 다른 나라들처럼 제작극장에 대한 비용을 직접 부담해야 한다. 불났을 때 기재부가 독립재단이니 알아서 하라는 만행을 저질렀었다. 기재부가 극장의 운영형태를 정하거나, 그저 민법 32조의 공익법인 설립에 의한 법에 의해 예술기관을 운영하는 나라에서 아직도 예술가들이 광대라고 비하되고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4. 귀족예술? 그런 게 있나? 노동과 민주화를 주장하는 세력들조차 이런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산다. 민족예술? 그런 게 어디 있는가? 민족은 어디까지가 민족인가? 지금은 다문화사회이고 방탄소년단이 하는 음악은 팝일 뿐 민족음악이 아니다. 손흥민과 김연아가 민족문화인가?
문제는 손흥민과 방탄소년단을 건드릴 수 없으니 대다수 약한 예술가들의 삶을 귀족예술이라는 말로 결박해서 결국 불가촉천민화 하는데 성공했다.
귀족의 시대에도 예술가가 귀족인 적은 없다. 그런데 그런 예술가들을 귀족예술이라는 주홍글씨로 정책에서 배려하지 않은 정부는 대한민국밖에는 없다. 문체부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예술가들은 사는데 무슨 문제가 있나요?” 하는 동안 부산에서 어떤 예술가가 바이올린을 안고 바다에 뛰어들어 세상을 등졌다.
하여 나는 함께 예술을 하는 ‘동지’들에게 “여러분 살만 하십니까?” 하고 묻는다.
예술가는 자유로워야 한다. 하지만 돈이 없이 자유롭기만을 바라는 것이 비단 우리 사회나 문체부의 정책 때문만일까?
보통의 사람처럼 가정도 꾸리고 싶고, 인생으로서 미래에 대한 꿈을 꾸고, 어느 정도의 소비도 하는 인생은 예술가의 인생이 아니란 말인가?
나는 이탈리아 베로나의 아레나극장에서 합창단원으로, 여권 하나 들고 시험 보고 직업인으로 예술을 했다. 그리고 이내 피렌체에서도 그랬다. 20년 전 대한민국도 그러려니 하고 들어왔다. 그땐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런데 나는 형제 중에 가장 수입이 적으며 아들 교육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애경사 챙기는 것은 언감생심, 국민연금은 최저에 맞춰 살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한국을 탈출해서 성공했다. 백남준도 그랬다. 말년에 한국에 돌아왔지만 미망인에 따르면 “백남준은 평생 돈돈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우리 예술가들이 예전과는 다른 생각을 해야 하고 후배와 제자들을 위한 방향으로 생각해야 한다. 고생해야 예술이라고? 맞다. 하지만 가난해야 예술이라고 주장하지 말라. 당신의 생각이 멍청한 것이다. 그건 미개하기 때문일 뿐이다.
우리 예술인연대와 함께 힘을 모으고, 뜻을 모아서 같이 해결해 보자. 예술계는 팔길이보다 당사자주의를 먼저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