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란 무엇이옵니까?” “바람이니라”

풍경

삼독심(三毒心)은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근본적인 세 가지 번뇌를 말한다. 인간의 탐욕과 진에(瞋?)와 우치(愚癡), 즉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이다.

탐욕은 탐애(貪愛)라고도 한다. 자기가 원하는 것에 욕심을 내어 집착하는 것, 자기의 뜻에 맞는 일에 집착하는 것, 정도를 넘어서서 욕심을 부리는 것, 명성과 이익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불가에서는 5욕(五慾)이라고 하여 식욕·색욕·재욕·명예욕·수면욕 등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을 구하는 것 자체가 탐욕이 아니라 그것이 정도를 지나칠 때 탐욕이라고 한다. 어느 수행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욕심(慾心)이란 무엇이옵니까?”
“바람(風)이니라.”
“?”
“하늘의 저 ‘달’이 몇 개이더냐?”
“?”
“그리고 전혀 물결이 없는 잔잔한 호수에 비치는 ‘달’은 몇 개이겠느냐?”
“분명, 하늘의 ‘달’도 하나이고 호수에 비치는 ‘달’도 하나이옵니다.”
“그러하니라.”
“?”
“하지만, 바람이 불어 물결이 심하게 일면, 하늘의 ‘달’은 분명 하나인데 호수에 비치는 ‘달’은 헤일 수 없이 많아지느니라.”
“?”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따라야 할 진리는 언제나 하나이며, 그 진리에 따라 살면 편안하고 평화로우련만, 욕심이라는 바람이 불어 닥치면 사람에 따라, 때에 따라, 경우에 따라 수도 없이 많은 탐욕이 나타나느니라.”

수행자가 잠시 후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인간이 그 어떤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할는지 몰라 허상(虛像)에 현혹되어 방황하게 되고, 삶이 힘이 드네 괴롭네 하며 불평하게 되며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
“그러므로, 진정 평화롭고 편안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속에 일어나는 욕심이라는 바람을 잠재울 줄 알아야 하느니라.”
“!”

어떤가? 어느 정도 욕심의 실체가 짐작되는가? 필자가 여든 넘는 나이까지 살아봐도 욕심을 끊기란 그리 쉽지 않다. 말로는 ‘난 욕심이 없는 사람이야!’ 하면서도 경계(境界)를 당하면 문득 문득 솟아오르기가 십상이다.

이 욕심을 잠재우는 방법은 없을까? 그나마 오랜 세월 수행해오면서 체험한 몇 가지를 실행해 보면 욕심 끊기가 훨씬 수월해 질 것 같다.

첫째, 솟아오르는 욕구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욕심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행동으로 옮긴 후 후회하는 일이 많다. 실제로 욕구가 치솟을 때 그 정체를 파악하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알 수 있다.

둘째, 나의 욕구가 현실에 타당한지 판단하는 것이다.
어떤 욕구가 올라오는지 파악했다면 문제는 조금 더 쉬워진다. 자신의 욕구가 현실에 어느 정도 타당한 것인지 판단해 보는 것이다. 스스로 판단하기가 어려우면 가까운 도반(道伴)이나 동지(同志)와 의논해 보는 것도 괜찮다. 장기를 두는 사람보다 훈수꾼이 경기의 흐름을 더 정확하게 읽듯이 오히려 주변 가까운 사람이 자신의 문제점을 더 잘 알 수도 있다.

셋째, 자신의 욕구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자꾸 자신의 욕구가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 경우 되레 생각이 떠오르도록 욕구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본다. 그럼 ‘아, 내가 이런 욕심이 있구나!’ 하고 욕심의 실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욕심을 잠재우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세 가지 방법으로라도 실행해 보면,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욕심을 없애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 어떤 때는 욕심이 없어진 듯 잠잠하다가 어떤 때는 또 불쑥 고개를 쳐들고 다시 나타나는 것이 욕심이다. 그럴 때마다 계속 떠올려 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 사이에 점점 그 강도가 약해지고 결국에는 별 것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욕심을 끊어 버린 사람의 심경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절 추녀 밑에 달려 있는 ‘풍경’을 그려본다. 왜 절 추녀 밑에 물고기를 달아 놨을까? 그윽한 풍경소리! 물고기가 바람을 맞아 풍경소리를 울려 퍼지게 한다. 그 물고기 뒤로 펼쳐진 푸른 하늘이 곧 푸른 바다다.

그 바다에 물고기 한 마리가 유유히 노닐고 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삼아 물고기를 매달아 놓음으로써 그곳은 물이 한없이 풍부한 바다가 된다. 그 풍부한 물은 어떠한 큰 불도 능히 끌 수 있다.

물고기는 깨어 있을 때나 잠잘 때나 혹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는다. 수행자도 물고기처럼 부지런히 도를 닦아 탐진치 삼독 심을 버리고, 번뇌에서 깨어나길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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