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0일] 독일, ‘원전’을 ‘완전’히 포기한 날
2011년 독일, 원전 포기 선언
2011년 5월30일 독일은 오는 2022년까지 원자력발전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노르베르트 뢰트겐 독일 환경부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연립정부는 오랜 협의 끝에 원자력 발전을 끝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주요 산업국 가운데 원자력 발전을 완전히 포기한다고 공식 선언한 첫 국가가 바로 독일이 된 것이다.
독일의 전면적 원전 중단 결정은 하루 전인 29일 일요일 기민련-기사당-자민당 등 연정을 구성한 3개 정당이 무려 7시간에 걸친 난상토론을 거쳐 잠정 결정한 결과였다. 2010년말까지만 해도 “원전 가동 시한을 평균 12년 연기하겠다”고 공언해왔던 앙겔라 메르켈 총리실은 수 시간 동안의 최종 검토 끝에 연정 정당회의의 결정을 최종 확정했다.
일부 기업들은 원전 폐쇄에 따른 전력 부족이 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신중한 결정을 촉구하기도 했으나 대세를 거스르진 못했다.
이미 가동이 중단된 7기 등 총 8기를 즉각 폐쇄하고, 2021년까지 대부분의 원전을 폐쇄한 뒤 비상사태용으로 3기만 1년간 더 연장 가동한다고 한다. 이에 따른 전력 부족분은 풍력 등 재생에너지, 가스 등 화석연료, 그리고 장차 지금의 절반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에너지 효율 향상 등으로 보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당시 원자력 발전은 독일 전력공급의 22%를 차지해왔다. 갑작스런 원전폐쇄가 에너지 부족을 낳지 않을까하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지구촌 최대의 신재생에너지 강국인 덴마크는 1985년 원전을 포기하고도 10년간 경제 덩치를 70%나 키우면서 전력증가율은 18%로 억제했다. 그 사이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인프라가 급격히 성장했다. 원전을 버려야 대안 에너지 체제가 시작됨을 보여준 귀중한 사례다.
한국의 원전 시설용량은 세계 6번째. G20 정상회담이 열렸던 2010년 기준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투자는 G20 나라 중에서 꼴찌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런 꼴찌를 되레 자랑스레 생각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아랍에미리트(UAE)에 성공적인 원전 수출 계약을 따낸 한국 정부는 곧이어 터키, 베트남 등에 원전을 수출할 마음에 오히려 뿌듯해 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독일과 한국 둘 중 하나는 후진국이라는 점이다.
2011년 아웅산 수치, 홍콩학자들과 화상회의
2011년 5월30일 버마 민주화의 상징 아웅산 수치 여사는 홍콩 학자·학생 1000여명이 참석한 인터넷 화상회의에 참석, 미얀마 정치투어에 나설 계획을 밝혔다. 2010년 11월 군사 정권으로부터 가택연금에서 해제된 뒤 6개월 만에 정치 행보를 본격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이날 화상회의는 ‘아웅산 수치와의 세기의 대화’란 제목으로 90분간 진행됐다. ‘미얀마 전역에서 정치집회를 개최할 것’이란 보도가 사실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한두달 내에 양곤 밖 지역을 돌아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답변했다.
이날로부터 꼭 8년 전인 2003년 5월30일 수치 여사는 3번째 가택연금을 당했다. 그 한해 전인 2002년 5월6일 가태연금에 풀려난 뒤 수치는 전국의 소수민족의 지역과 많은 지역을 순방했다. 3차 가택연금을 당한 날인 2003년 5월30일 저녁8시 경에 버마 사가잉(Sagaing)도 쉬웨 보(Shwe Bo)구 관할인 데파잉(Depayin)지역의 키(Kyi)마을 근처에서 수치 여사와 NLD 부의장 우틴우를 비롯한 NLD의 지도부를 겨냥한 것으로 추정되는 암살시도가 있었다. 수치와 우틴우는 무사히 탈출했지만 NLD 지도부와 회원들이 사살됐다.
수치는 20년 만에 이뤄진 2010년 총선 뒤 군사정권의 유화책으로 7년 만에 가택연금에서 해제됐다.
2005년 제9차 아·태우편연합 서울총회 개최
2005년 5월30일 아·태우편연합(Asian-Pacific Postal Union, APPU) 총회가 서울의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개최돼 6월4일 폐막했다.
APPU는 아·태지역 국가간 우편협력과 우편발전을 위해 1962년 창설됐고, 사무국은 태국 방콕에 있다. APPU 총회는 매 5년마다 개최된다. 제 8차 총회는 2000년 9월 이란(테헤란)에서 개최됐다.
이번 총회에는 아·태 지역의 24개 APPU 회원국에서 장·차관 또는 우편분야 최고책임자인 우정총재를 수석대표로 약 150명의 대표단이 참석했다. 국제연합(UN) 전문기구인 만국우편연합(UPU)의 사무총장을 비롯한 주요인사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세계 유수의 우정청 관계자들도 옵저버 자격으로 총회에 참석했다.
호주와 부탄, 브루네이, 캄보디아, 중국, 피지, 인도, 인도네시아, 이란, 일본, 말레이시아, 몰디브, 몽고, 미얀마, 나우르, 네팔, 뉴질랜드, 파키스탄, 싱가포르, 솔로몬, 스리랑카, 태국, 베트남 등이 참석했다.
1998년 아프가니스탄 강진, 5천여 명 사망
1998년 5월30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북쪽 250㎞ 떨어진 ‘타흐르주 로스탁’ 일대에서 리히터 규모 7.1의 강진이 일어나 5000명 이상이 숨졌다. 이곳에는 3개월 전에도 지진이 엄습, 4000여 명이 사망했다. 50여 개 마을의 가옥 수천 채가 완전히 파괴됐다.
1989년 中 텐안먼 광장에 ‘민주의 여신상’ 등장
1989년 5월30일 이른 아침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계속하던 학생들은 광장 한복판에 10m 높이의 ‘민주의 여신상’을 세웠다. 여신상은 톈안먼에 걸려 있는 거대한 마오쩌둥(毛澤東) 초상화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횃불을 높이 치켜들고 있었다. 여신상은 베이징 중앙미술학원 학생들의 작품이었다. 금속 뼈대 위에 스티로폼과 종이찰흙을 덧붙여 불과 나흘 만에 완성한 조악한 작품이었다. 러시아의 혁명적 리얼리즘 조각가 베라 무히나의 거대한 철제작품 ‘노동자와 집단농장의 부녀자’였다.
중국 공산당은 당시 톈안먼 시위를 ‘혼란을 일으키기 위한 계획적, 조직적 반(反)사회주의 운동’으로 규정했다. 여신상 등장으로 1만명 규모로 줄어든 시위대가 30여만 명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불과 닷새 뒤인 6월4일 새벽 여신상은 인민해방군의 탱크에 짓뭉개졌다. 민주주의를 외치던 학생들의 절규도 차츰 잦아들었다.
이상현 기자 ?coup4u@theasian.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