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서울 가던 날’ 이춘우
전날
윗녘으로 눈이 제법 내렸단다
오후 네 시
KTX는 잘 길들여진 쇠짐승이다
회색하늘 밑 차창에 붙은 나는
수묵화 가운데를 가르며 서울로,
풍경은 나와 반대편으로 손살 같다
黃澗 부근 파밭이 눈에 확 들어온다
팟대 사이로 눈이 알맞게 숨어들어
마치 새봄 쑥버무리 같은 파버무리
술 생각에 목구멍이 간질하다
그날 밤
인사동 불빛은 자정 전에 꺼진지라
어쩔 수 없이 피맛골 포장마차에서
새벽 3시 40분까지
최동식 교수, 素荷 선생, 曉丁 화백과
술 취한 새벽을 들이키자
사십 대 雄山 화백은
주당들의 묘수라도 배울 양
난롯불 연통에 귀를 대고
간간이 꾸벅대며 볼때기를 굽는다
서울까지 세 시간 거리
마음만 먹으면 당일치기로
서울 풍류를 즐기고도 남는 세상이 좋다
* 黃澗 : 충북 영동군 황간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