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든의 교훈 ‘형식과 원칙의 공유’
[아시아엔=박현찬 <경청>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저자] 1946년 9월 27일자 <뉴욕타임즈>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시인이자 비평가인 오든(W. H. Auden)이 뉴스쿨대학(New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셰익스피어 강의를 개설한다.”
이 소식은 곧바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강의가 시작되자 매 회 500명이 넘는 청중이 강당을 가득 메웠는데, 오든이 아니라 셰익스피어가 강연을 하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분위기가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은 오든의 말을 듣기 위해 장거리 여행도 기꺼이 감수했다. 두 학기에 걸쳐 셰익스피어 희곡 작품 전체를 다루는 강의는 매주 수요일 저녁에 열렸다. 10월 2일 입문강의에 이어 ‘헨리 6세’로 시작된 본강의는 다음 해 5월 14일까지 계속되었다.
대학 인근 그리니치 빌리지에 거주하던 영국 출신의 젊은 거장은 당시에 이미 여러 대학에서 문학 강의로 성가를 높이고 있었다. “오든의 강의는 정말 경이로웠다. 오든의 언어를 통해 셰익스피어를 읽던 즐거움이 지금도 생생하다.” 오페라에도 조예가 깊었던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수업에서는 이 작품의 유일한 미덕이 베르디의 오페라 ‘팔스타프’(Falstaff)의 탄생에 기여한 것이라며 작품 대신에 공연 녹음을 감상하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오든은 이 역사적인 강의를 원고로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성실하고 열정적인 학생들이 있었고, 그들이 기록해 둔 강의노트를 통해 오든의 언어와 사고는 되살아났다. 덕분에 우리는 오든의 명강의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책 에서 만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종강 수업에 있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드라마는 왜 그렇게 단명했으며 거의 대부분이 졸작에 머물렀는가. 유일한 예외는 셰익스피어라는 천재뿐이다.”
오든은 그 이유를 또 한 명의 걸출한 시인이자 비평가인 엘리엇(T. S. Eliot)을 인용해서 설명하고 있다. 뛰어난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서는 실제 삶을 추상화’해서 그것을 일련의 예술형식으로 만드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드라마 장르에는 작품 창작에서 반드시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에 대한 공유된 형식과 원칙이 없었다.”
이러한 자유로움이 천재에게는 기회가 되었지만 평범한 재능의 다른 작가들에게는 극복하기 힘든 장애로 작용했다.
한편,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가 성취한 위대한 영광은 정확히 그 반대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몬테베르디에서 시작하여 모차르트에서 꽃피우고 다시 벨리니, 로시니, 도니제티, 베르디로 100년 넘게 이어지는 다채롭고 풍성하면서도 뛰어난 작품들의 성취를 보라. 이탈리아 오페라의 황금기는 사람들의 삶에서 추출되고 추상화된, 창작자들이 함께 공유하는 창작의 형식과 원칙들이 있었고 그것을 준비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오든은 강조한다.
BTS와 봉준호라는 뛰어난 콘텐츠를 일궈낸 한국의 문화적인 역량은 어디까지 펼쳐질 수 있을까. 몇몇 천재적 개인의 단기적 성취에 머물지 아니면 세계를 이끌어갈 K-Culture로 성장할 수 있을지 한번쯤 오든의 문제의식을 가져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