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봄’ 수 “군사 훈련조차 받은 적 없는 사람들이 무기를 들었어요. 우린 그만큼 간절해요”

미얀마 유학생 수

[아시아엔=인터뷰 민다혜 기자, 사진 ‘미얀마의 봄’ 제공] 한국 문화에 관심 많던 평범한 유학생 수의 삶은 2021년 2월 군부 쿠데타 이후 완전히 뒤바뀌었다. 수는 “한국의 5.18 광주항쟁과 미얀마 민주화 항쟁은 공통점이 많다. 한국을 모델 삼아 미얀마도 민주화를 이룩했으면 한다”고 했다. 이는 군부독재에 신음하는 미얀마가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얀마는 우릴 바라보며 새로운 세상을 꿈 꾸고 있지만 우리는 이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미얀마의 봄’을 맞이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건 이들의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공유한다.

인터뷰에 앞서 이번 사태로 희생된 분들께 깊은 애도를 전한다.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미얀마 양곤의 외국어대학에서 한국어 학위를 취득했고, 2020년 9월 한국에 와서 광고홍보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얀마의 봄’에서 활동하고 있다. ‘미얀마의 봄’ 활동을 통해 한국과 전세계에 미얀마 현지 상황을 알리고 있다.

지난 3월 21일 경기아트센터에 열린 ‘미얀마의 봄’ 행사

‘미얀마의 봄’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가.
‘미얀마의 봄’은 2021년 2월 재한 미얀마학생연합회원 6명이 뜻을 모아 결성했다. 3월과 4월에는 경기도의회와 경기문화센터와 협업해 미얀마 상황을 알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엔 현지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지원하기 위해 온라인 마켓을 열어 티셔츠나 에코 백 등 굿즈(Goods)를 팔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미얀마의 봄’ 페이지를 통해 자세한 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현지에 전달되는 모금 내역도 투명하게 공개할 계획이니 많은 관심 부탁 드린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의 원인은 무엇이라 보는가.
2015년 11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총선에 승리하면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 2020년 11월 총선에서 NLD가 또다시 승리하면서 5년을 지켜본 군부에 비상신호가 켜졌다. 미얀마 새 의회 출범일인 2월 1일 새벽, 군부는 미얀마 총선결과에 불복하며 ‘부정선거’라는 명분으로 쿠데타를 감행했다. 민간으로 넘어갔던 권력을 되찾고 싶은 것이다. 군부는 총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MEHL과 MEC라는 거대기업을 운영하며 벌어들이는 자금으로 경제권까지 장악하고 있었다. 군부는 이 모든 것을 유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미얀마의 유혈사태가 확대되면서 전세계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유학생 신분으로 외국에 나와있지만 고국의 소식을 전해 들으면 어떤 감정이 드나.
지난 1월에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말들이 돌았다. ‘21세기에 그런 일이 벌어질까’ 싶어 루머로 치부했다. 그러나 며칠 뒤, 뉴스로 소식을 접하게 됐을 때는 정말 놀랐다. 지금은 연락을 취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가족, 친구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무척 불안했다. 한국에서 사망 소식만 접하게 되니 매우 힘들었다. 그럴수록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러다 ‘미얀마의 봄’에 참여하게 됐다.

미얀마국민통합정부(NUG) 피켓을 들고 있는 수

불교가 국교인 미얀마 국민들은 체제에 순응하는 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시위에 뛰어들게 된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시위에 뛰어들고 있는 젊은이들은 어린 시절엔 군부독재를 경험했으나 성인이 된 후엔 민주주의를 누렸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 가장 클 것이다. 쿠데타 이후 초기에는 너나 할 것 없이 거리로 나와 평화적인 방법으로 시위했다. 경찰들과 시민들은 서로 지켜만 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군대가 투입되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군대의 무력진압이 심해져 현지 친구들은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고 들었다.

군부독재와 잠시나마 경험했던 민주주의, 어떻게 다른가.
‛질문’이란 게 없었다. 무조건 수용해야만 했으며, 개인의 의사는 묵인됐다. 권력을 등에 업은 군부는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지 않았음에도 국가기관의 고위직을 독차지했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국가의 발전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와 반대로 NLD가 정권을 잡았던 지난 5년간 교육과 보건, 교통, 통신 등 전반적인 인프라가 개선됐으며, 인권 상황도 나아졌다. 학교에선 궁금한 것을 질문하거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개인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것을 깨달았다.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자 가장 먼저 시민 불복종 운동에 나선 이들이 의사들이었다. 이들 집단이 시민 불복종 운동을 이끈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인력 부족으로 의사들이 힘들어 했다. 혹시 모를 감염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1년동안 집에도 못 가고 의료센터에서 생활하는 의사들도 많았다. 미얀마에 코로나19 백신이 도착하긴 했지만, 군부가 권력을 앗아가고 백신 또한 압수하면서 희망이 사라졌다. 의료진의 허탈감도 컸을 것이다. 쿠데타 사흘째 되는 날, 의료진들은 ‘군부의 시스템을 따르지 않겠다’며 정부가 운영하는 병원을 떠났다. 불복종운동은 군부가 이뤄놓은 시스템을 붕괴시키는데 있어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1988년 8월 8일, 당시 미얀마 수도였던 양곤을 중심으로 승려들이 주도한 대규모 민주화 항쟁 ‘8888 항쟁’은 전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8888 항쟁’은 최근 미얀마에서 벌어진 ‘22222 항쟁’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미얀마가 여러 차례 대규모 민주화 항쟁을 일으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쿠데타 이전엔 미얀마 젊은이들 대다수가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나 역시 ‘8888 항쟁’을 교과서에서 글로만 접했고, ‘군인도 사람인데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정도였다. 그런데 불행이 또다시 일어났다. 1988년 항쟁부터 2007년 샤프란 혁명, 2021년의 미얀마 군부 쿠데타까지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에 대한 분노와 군부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 복합적으로 합쳐져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미얀마 민주화 항쟁에 나선 사람으로부터 ‛나 하나쯤 빠져도…’라는 생각으로 망설이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망설이면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런 고통과 아픔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들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로 시위에 나서고 있다.

미얀마 양곤 시내를 행진하고 있는 청년 시위대 <사진=AP/연합뉴스>

밀크티 동맹’(Milk Tea Alliance)은 2020년 아시아 각국의 민주화 항쟁을 지지하는 홍콩, 대만, 태국 등의 청년세대를 주축으로 결성됐다. 최근 미얀마의 청년들도 군부쿠데타를 계기로 밀크티 동맹에 가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밀크티 동맹과 미얀마 청년들의 연대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밀크티 동맹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미얀마 쿠데타 반대 시위의 중심에는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초반 출생)가 있다. 인터넷 활용에 능해 미얀마 현 상황을 전세계에 알리고 있다. 홍콩과 대만 민주화 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평화적 시위에 대한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한다. 미얀마에서도 군부에 저항하는 의미를 담은 ‘세 손가락 경례’가 행해지고 있는데, 이는 태국의 시위에서 가져온 제스처다.

최근 홍콩과 미얀마 민주화 항쟁에서도 볼 수 있듯이, 주축은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세대다. 이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저항하고 있다고 들었다.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거나 시위에 나서는 방식이 과거와는 달라졌다. 요즘은 플래시몹(Flashmob, 불특정 다수인이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모여 주어진 행동을 하고 곧바로 흩어지는 것)을 통해 기습적으로 시위를 벌인다. 이는 군부의 귀와 눈을 피해야 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미얀마 민주화를 지지하는 국가들이 있는 반면 일부 국가들은 ‘내정’이라며 미온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미얀마에서는 예전부터 중국-미얀마 군부의 유착에 대한 보이콧 운동이 잦았다. 양측이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건 명백한데 이럴 때만 ‘내정’이라고 표현한 부분은 유감스러웠다. 개인적으로 아동폭력에서 학대하는 것 만큼 나쁜 건 방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피해아동이 방치되는 시간이 길어줄수록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미온적 입장을 취하는 이들은 방관자라 생각한다. 무기를 가진 군부가 힘 없는 시민들을 탄압하고 있는데 ‘왜 방관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쿠데타를 종결시키고 민주주의를 회복시킨다면 군부 독재를 겪고 있는 나라들에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봐 주길 바란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이 즉각 폭력 중단이라는 합의를 낸 지 이틀 만에 미얀마에서 또다시 군경의 총격에 의한 사망자가 나왔다. 미얀마를 비롯한 전세계에서 아세안 합의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과 비판이 커지고 있다.
군부는 아세안 특별정상회의 합의사항에 준수하는 척만 하고 있다. 실행력 없는 합의안 만으로는 폭력을 막기에 역부족이다. 미얀마 국민들도 현재 아세안과 유엔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에 크게 기대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주체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합의안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군부가 어떤 말을 해도 믿지 않을 정도로 신뢰가 무너진 상태다. 과거 쿠데타 때도 “상황이 좋지 않아 잠시 동안만 권력을 행사하겠다”고 말했던 게 군부다. 지금도 군부는 이 상황을 모면할 궁리만 하고 있을 것이다. 군부 목소리가 아닌 미얀마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

오월어머니회와 함께한 재한 미얀마 학생들

지난 5월 중순 강원도 영월군에서 5.18 광주 민주화 항쟁과 2021년 미얀마 민주화 항쟁을 주제로 한 사진전이 열렸다. 이와 같은 이벤트들을 통해 미얀마의 현실을 한국에 널리 알리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쿠데타 직후 ‘할 수 있는 것은 다해보자’라는 마음으로 광화문, 중국 대사관, 러시아 대사관 등앞에서 시위하며 미얀마 현 사태를 알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지난 3월 경기아트센터 제안으로 민주화에 대한 염원을 주제로 한 시 낭송과 합창을 해 미얀마가 처한 상황을 알렸는데, 이를 계기로 여러 곳에서 연락이 오고 있다. ‘경기도의회와 함께하는 미얀마의 봄’ ‘미얀마의 봄, 광주를 만나다’ 등의 공연에 참여했다. 5·18 항쟁 희생자 어머니단체인 ‘오월어머니회’ 분들과도 자리를 가졌는데, 5.18 광주 민주화 항쟁과 현재 미얀마 항쟁의 공통점이 많다는 것에 놀랐다. 광주 민중항쟁 이후 아픔과 상처를 어떤 식으로 극복할 수 있었는지,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여성들이 어떻게 주도적인 역할을 했는지 등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수 있던 뜻 깊은 자리였다. 한국은 당면한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고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번이라도 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한국에 감사할 뿐이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내전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평화적 저항에서 나섰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무장단체에서 가두시위가 아닌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내전은 미얀마의 유혈사태의 종결이 아닌 확대, 연장시키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지 않나.
군부도 (내전이 일어나면) 국가를 복구하는데 많은 시간과 자금이 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내전까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군인들이 총을 쏜 이후부터 평화적인 시위가 설 자리를 잃어갔다. 보통의 사람들부터 모델, 가수 등 유명인들까지 무장 단체에 합류해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 일평생 군사 훈련을 받아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다. 맨 몸으로 맞서다 무기를 들고 목숨을 건다는 것은 그만큼 간절하다는 걸 의미한다. 군부의 강제 진압으로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아프지만, 그럴수록 희생자들의 뜻이 헛되지 않게 국민들이 더욱 강하게 결집해야 한다. 개인적으론 유혈사태가 길어지더라도 군부 독재를 타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궁극적으로 어떤 모습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하나.
한국 유학생활을 하며 일상에서 ‘이것이 민주주의구나’라고 느끼는 순간이 많았다. 특히 한국의 교육 방식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 한국에서의 대학원 수업은 학생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그 중에서도 교수님의 “질문 있나?”라는 말이 참 인상 깊었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민주주의가 자연스럽게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자리 잡으면 다음 세대들이 역사교육을 통해 이전 세대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또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배웠으면 한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군부가 안보를 핑계로 외부와의 통신을 차단한 채 국영TV를 통해서 원하는 뉴스만 내보내고 있다. 그나마 양곤이나 만달레이 등 대도시에선 인터넷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신속하고 정확하게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또 미얀마 소식들이 가감 없이 해외로 전달될 수 있을까? 해외에서 미얀마 쿠데타 관련 보도가 줄어들면서 상황이 나아지는 것처럼 비춰질까 걱정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돌아가는 것이 군부가 바라는 바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경계해야 한다. 미얀마엔 “혁명이 성공하면 대한민국이 되고 실패하면 북한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그 정도로 한국의 민주화 사례는 미얀마에 좋은 본보기다. 한국의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도 큰 힘이 된다. 미얀마에서 왔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밥은 먹고 다니냐” “어떻게 지내고 있냐” 등의 안부를 물으며 응원한다. 그들 덕분에 포기하고 싶다가도 다시금 힘을 얻는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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