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부 쿠데타 120일 간의 기록 “비극, 우리 세대에서 끝나길”
“미얀마라는 국가 안에 군부가 지배하는 또 다른 국가가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현역 군인뿐 아니라 퇴역한 군인들, 그리고 군 가족들까지도 특혜를 누립니다. 군인들만 가는 학교가 있고요. 군인들만 가는 병원이 있고, 군인들만 즐길 수 있는 골프장이 또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 장준영(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책임연구원)
미얀마의 국가 지도자는 의회가 간접선거로 뽑는 대통령이다. 그러나 군통수권은 대통령이 아닌 군 총사령관에게 있다. 군 총사령관은 국방부, 내무부, 국경부 장관의 임명권도 갖고 있으며,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대통령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는다. 민주주의 국가에는 국가의 운영에 군의 개입을 배제하고 문민(민간인)이 국군의 통수권을 가진다는 문민통제 원칙이 있다. 하지만 미얀마는 문민통제가 아닌, 군부가 민간을 지배하는 ‘군민통제’ 국가다.
미얀마는 1948년 1월 4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민간 정권을 세웠으나, 1962년 3월 네 윈 육군총사령관이 쿠데타를 일으킨 이래 군부가 권력을 장악해 왔다. 1988년 3월 미얀마는 3월 ‘양곤의 봄’, 8월 ‘8888 항쟁’으로 뜨겁게 타오르며 한때 군부정권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9월 18일 미얀마 군부는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재건했다.
미얀마 독립의 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 아웅산 수치는 1988년 4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과 학생, 승려들이 군정의 총칼에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에 군정은 1989년 아웅산 수치를 국가보안법 위반을 빌미로 가택연금 시켰고, 그녀는 이로 인해 15년간의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혔다. 1990년 군부가 관리한 총선에서 민주화 운동의 주축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이 압승했지만, 군부는 총선을 무효로 돌리고 집권을 이어갔다.
군부 통치에 대한 실망감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뒤섞여 있던 그때, 연금에서 풀려난 아웅산 수치가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으로 등장했다. 2015년 11월 8일 NLD는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고, 아웅산 수치는 국가고문의 자리에 올라 미얀마의 권력을 얻게 됐다. 5년 후인 2020년 11월 8일 미얀마 총선거에서 NLD는 상원, 하원 총 476석 중 396석을 확보하면서 압승을 거뒀다. NLD가 원하는 것은 군부에게 과도한 권력을 보장하는 현행 헌법의 개정이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군부는 수치, 윈민 대통령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을 구금하고,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사실상의 군부 쿠데타를 일으킨 셈이다.
2월 1일 미얀마 쿠데타 이후 5월까지 민주화를 갈망하는 시위대와 군부가 충돌, 800명 이상이 사망했고, 4천300명 이상이 체포 및 구금됐다. 그럼에도 미얀마의 국민들은 민주화라는 결실을 맺기 위해 항쟁을 이어가고 있다. <아시아엔>은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약 4개월 간의 주요 사건들을 정리한다.
2월: 또 다시 쿠데타…피로 물든 미얀마
1일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과 윈 민 대통령 등을 가택연금 시켰다. 미얀마 경찰은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을 수출입법위반 혐의(소형 무선장치가 발견, 이를 불법 수입해 허가를 받지 않고 사용)로 기소했다. 군부는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한다며 권력이 민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에게 이양됐다고 밝혔다.
2일 이날 밤 미얀마 옛 수도 양곤에서 냄비 등을 두드리는 ‘소음 시위’가 시작됐다. 미얀마에서는 냄비 등을 두드려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것이 악마를 쫓아내는 의미를 가진다. 군부는 시위대를 쇠파이프로 폭행하거나 실탄과 최루탄을 발포하는 등 진압 수위를 높였다.
4일 육군 총사령관과 부사령관의 정년 제한 규정을 삭제했다. 이에 따라 군부의 리더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과 소 윈 부사령관은 권력을 잃거나 자발적으로 퇴진하지 않는한 계속해서 현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10일 미얀마의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태국의 쁘라윳 짠오차 총리에 “양국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자”는 서한을 보냈다. 태국은 체제 상 군부독재 국가는 아니지만 선거를 통해 압도적 지지로 선출된 여성 정치인을 쿠데타로 몰아내고 군부가 정권을 잡았다는 면에서 미얀마와 유사하다. 역사적으로 태국과 미얀마는 오랜 세월 전쟁을 치르며 관계가 좋지 않았지만 태국 학생들은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폭압적인 상황에 공감하며 독재정부에 대항하는 청년들의 국제적 연대를 이끌었다.
19일 경찰이 쏜 실탄에 맞아 첫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다.
22일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총파업이 벌어졌고, 수 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2021년 2월 22일에 총파업을 통해 벌이는 쿠데타 규탄 시위라는 뜻에서 2를 5개 붙여 ‘22222 시위’로 명명됐다. ‘22222 시위’는 1988년 당시 민주화를 요구했던 8888시위가 모티브다. 이날 시위에는 공무원과 은행직원, 철도근로자 등 각계 각층이 참여하며 쿠데타 이후 가장 많은 시민들이 참가한 시위 중 하나로 기록됐다. 시민들은 SNS 게시물에 ‘2Fivegeneralstrike’라는 해시태그를 붙이며 군부의 실상을 세계에 알렸다.
26일 초 모 툰 주유엔 미얀마 대사는 유엔 총회에서 쿠데타를 비판하며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했다. 그 다음날 그는 군정에 의해 유엔 대사직에서 해임됐다.
28일 ‘피로 물든 일요일’로도 불리는 이날, 미얀마 전역에서 2월 1일 군부 쿠데타 이후 29명의 대규모 희생자가 발생했다.
3월: “Everything will be OK”
3일 만달레이에서 19세 소녀 치알 신이 시위 도중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사망할 당시 입고 있던 티셔츠에 새겨진 문구 ‘다 잘 될 거야'(Everything will be OK)는 안타까움을 자아냄과 동시에 시위대에 민주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불어넣는 메시지가 됐다.
4일 미국 상무부는 이날 미얀마 국방부, 내무부와 미얀마경제기업(MEC), 미얀마경제지주회사(MEHL) 4곳을 수출규제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MEC와 MEHL은 미얀마 국방부가 소유한 회사로 맥주와 담배부터 통신 부동산 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장악하고 있다. 군부의 쿠데타 및 시위 진압 과정에서 무자비한 폭력행위 등에 따른 조치로 미국 상무부는 성명을 통해 “수출관리규정에 따라 미얀마 군부가 무역으로 이익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미국 상무부의 조치는 미얀마 군부에 대한 전세계 각국의 제재로 이어졌다.
8일 누따웅 수녀는 2월 28일과 3월 8일 두 차례 진압군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시위대를 살려 달라고 간청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나도 미얀마 거리에 무릎을 꿇는다. 폭력을 멈춰 달라”고 나섰다. 이 모습은 SNS를 통해 확산돼 전세계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0일 미국 재무부가 미얀마 군사정권을 이끄는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의 두 자녀와 이들이 장악한 기업체 6곳에 대해 미국 내 자산 동결, 거래 금지 등의 제재를 가했다. 미 재무부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미얀마 문민정부를 쿠데타로 전복시킨 군부의 잔혹한 학살에 대응해 이같이 조처했다”고 밝혔다.
27일 군부의 진압으로 어린이를 포함해 하루 동안 114명이 목숨을 잃었다. 태국 방콕에서 열린 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 대회에 출전한 미스 미얀마 한 레이가 눈물을 흘리며 조국을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시위에 참여했던 시민이 산 채로 불타는 폐타이어에 내던져지며 잔혹하게 목숨을 잃는 일이 일어난 날이지만, 군부 인사들은 아랑곳 않고 호화 파티를 즐겼다.
28일 미얀마 남동부 카렌주의 마을 주 미얀마 남동부 카렌주의 마을 주민 3천명 가량이 미얀마군의 공습을 피해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피신했다. 이에 미얀마 군은 난민 캠프를 포함, 태국 국경 인근 뭇로 지역의 5곳을 공습했다.
31일 미얀마 사태를 논의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가 열렸다. 이날 크리스티네 슈라너 부르게너 유엔 미얀마 특사는 유엔의 개입을 호소했지만 안보리 회의는 미얀마 군부에 대해 미온적인 중국으로 인해 즉각적인 합의를 내놓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4월: “쿠데타 이후 70일간 700명 사망…수백만명 더 남았다”
1일 미얀마 민주진영 임시정부 역할을 하는 연방의회 대표위원회(CRPH)가 군사정권에 맞서 국민통합정부(NUG)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유엔안보리는 성명을 통해 “안보리 회원국들은 급속한 상황 악화에 깊은 우려를 표현한다. 평화적 시위대를 겨냥한 폭력과 여성,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 수백 명의 죽음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미얀마 군부를 비판했다.
2일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유엔 안보리의 미얀마 사태 규탄 성명에 대한 입장을 묻는 말에 “국제사회는 내정 불간섭이라는 기본 원칙을 견지하면서 미얀마의 정치적 화해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함부로 참견하거나 압박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미얀마 각 측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정세를 완화하기를 바란다”는 기존 입장을 강조했다.
4일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기독교 절기인 부활절을 맞아 대대적인 ‘달걀시위’가 펼쳐졌다. 시위대는 “미얀마를 구해달라” 등의 메시지를 새긴 부활절 달걀을 들고 국제 사회에 도움을 호소했다.
12일 SNS에서 “70일간 700명밖에 죽지 않았으니 UN이 서두를 필요 없다”는 피켓을 든 한 청년의 사진이 빠른 속도로 퍼졌다. 그는 “여전히 (죽을 수도 있는 사람) 수백만 명이 더 남아있다”는 반어적 표현을 덧붙였다. 미얀마 최대도시 양곤에서는 ‘R2P'(responsibility to protect·보호책임 원칙)라고 쓰인 머리띠를 두른 시위대가 나타났다. ‘R2P’는 집단학살, 인종청소 등의 반인도적 범죄가 발생할 때 주권국가가 이를 막지 못하거나 인권유린을 자행하는 당사자일 경우 국제사회가 개입할 수 있다는 뜻을 의미한다. 미얀마 시위대는 ‘미얀마 사태에 R2P를 적용해야 한다’고 외쳐왔지만 유엔은 규탄의 목소리를 내는 것 이상의 행동에는 나서지 않았다.
24일 미얀마 쿠데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아세안(ASEAN)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특별정상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도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미얀마의 모든 당사자는 폭력을 즉각 중단한다 △평화적 해결책을 찾기 위한 건설적 대화를 한다 △ASEAN 의장과 사무총장이 특사로서 대화를 중재한다 △인도적 지원을 제공한다 △ASEAN 특사와 대표단이 미얀마를 방문한다 등 5개의 합의 사항이 도출됐다.
26일 미얀마 소수민족인 카렌족 반군이 태국 국경과 인접한 미얀마 군사기지를 공격해 점령했다. 이 전투는 반군이 군부시설을 공격한 최초의 사례다.
5월: NUG의 등장…“비극, 우리 세대에서 끝나길”
5일 시민 불복종운동(CDM)으로 대표되는 비폭력 평화 시위를 견지해 온 민주진영이 무장 투쟁으로 노선을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NUG는 군부의 폭력과 공격으로부터 지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시민방위군을 창설했다고 밝혔다.
15일 진 마 아웅 NUG 외교장관은 “군부 쿠데타는 탈법적이며 (군부가 민주화 이행을 내세우며 제정한) 2008년 헌법의 질서를 군부가 어긴 것”이라며 미얀마의 합법 정부로 군부가 아닌 NUG를 인정해달라고 요청했다. NUG는 “군부 쿠데타 타도 이후의 미래까지 바라보고 있다”며 “군사력과 관련해서 정확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부를 이끌고 있는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과의 협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당하게 구금된 정치인과 민주화 운동가의 석방 및 군부가 저지른 학살과 테러 행위, 인권 침해를 책임지겠다는 확답을 받지 않는 한 대화에 나설 수 없다”고 말했다.
17일 소수민족 카친독립군(KIA)이 17~18일 이틀에 걸쳐 중국에서 들여오는 항공유를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차량 7대를 공격했다. KIA측은 공보장교인 노 부 대령은 “이 차량들은 미얀마 군부가 사용할 제트 항공유를 싣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공격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 국영 석유업체는 지난 4월 미얀마에 대량의 항공유를 판매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로 인해 중국이 소수민족 무장세력을 공습한 미얀마군을 간접지원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21일 NUG와 미얀마 서부 친주에서 활동하는 소수민족 반군 친국민전선(CNF)이 처음으로 손잡았다. 양 측은 협정을 통해 평등과 상호 존중·인정의 원칙에서 군부 독재에 저항하고 시민들을 보호하며 연방 민주주의를 세우는데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24일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쿠데타 이후 113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수치 국가고문 고문은 이날 수도 네피도의 특별 법정에 출석해 자신에게 제기된 각종 범죄 혐의와 관련한 재판을 받았다. 수치 국가고문은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하며 군부를 비판했다. 수치 국가고문은 불법수입 워키토키 소지사용, 코로나19 예방수칙 위반(2건), 선동, 전기통신법 위반, 뇌물수수죄, 공무상비밀엄수법 위반 등 7건의 혐의를 받았다.
26일 샨민족군의 딴 차웅 부사령관이 사가잉 지역에서 총에 맞아 암살당했다. 그는 1988년 민주화 항쟁 당시 군사정권에 저항한 첫 학생 무장단체 전(全)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을 이끌었으며, 미얀마 반군 세력의 리더 중 한명이었다.
28일 미얀마 군사정권이 중국인들이 투자한 공장에 대한 방화 혐의로 체포된 28명에게 징역 20년형을 무더기로 선고했다. 쿠데타 군부의 뒷배로 여겨지는 중국에 대한 미얀마인들의 커지는 반감을 차단하기 위한 ‘본보기 처벌’이다. 중국 정부는 방화 사태를 계기로 중국인 투자 공장에 대한 보호를 강력하게 촉구했고, 이에 군부는 흘라잉 따야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러나 민주진영 측은 중국계 공장 화재는 군부가 시민들을 더 강력하게 탄압하기 위해 꾸민 음모라고 반발했다.
31일 NUG 대변인이 내전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미얀마 국민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습격, 체포, 고문, 살인 등 군부의 끊임없는 위협이 지역사회로 하여금 무기를 들게 했다”고 전했다. 또한 국제사회에 NUG를 미얀마의 합법정부로 인정하는 동시에 군부 제제를 강화할 것을 요청하며 “국제사회가 머뭇거릴수록 유혈사태는 심각해 질 것이고, 내전과 대량 학살이 다가올것 “이라고 경고했다.
군부의 탄압을 받는 것도 모자라서 병원같이 기본적인 의료시설이 붕괴되어 시민들이 서비스를 받을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특히 코로나 상황인 지금에 있어서 더욱 뼈아픈 일인것 같네요.
하루라도 빨리 다른나라나 어딘가에게 도움을 받아 다시 일어설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