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작품, 삶의 경계를 허문 맥스 달튼
“영화는 동적이다보니 관람자 입장에선 아무것도 할 게 없지만 그림은 정적이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림이 어렵다고들 하잖아요.”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2021.04.16.~2021.07.11. 마이아트뮤지엄)의 도슨트는 그림과 영화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맥스 달튼(Max Dalton)의 작품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의 작품 중 반지의 제왕 ‘모르도르는 아무나 걸어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요’의 주사위 게임 스타일이라든지, ‘기생충’ 횡단면 구조를 보면 영화의 전반적인 스토리를 그림 하나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관람객은 그의 작품 속에서 영화의 요소들을 곳곳에서 발견하며 숨은 그림을 찾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의 전시 구성은 작품 주제에 따라 5개 부로 나뉜다.
SF 영화를 보며 상상력을 먹고 자란 맥스 달튼, 그에게 인생은 상상력 그 자체다. SF영화광 맥스 달튼은 스타워즈, 스타트랙 같은 영화들을 독창적인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공상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1부 ‘우주적 상상력’에서 맥스 달튼만의 색다른 캐릭터 해석은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우주, 환상의 공간에서 나오면 2부 ‘우리가 사랑한 영화의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다.
주사위 게임 스타일을 선보인 ‘모르도르는 아무나 걸어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요’는 3부작으로 이루어진 반지의 제왕 줄거리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담아냈다. 흔히들 답은 없고 정해진 길도 없는 인생이라고 하지만 때론 운명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주사위 게임에서는 항상 같은 답이 나올 수는 없다. 불확실과 우연의 연속이지만 결국에는 정해진 종착지에 도달하게 돼 있다. 인간에게 운명이 있다면 그런 것이 아닐까.
2부 ‘우리가 사랑한 영화의 순간들’의 작품들은 1950년대 카툰과 빈티지 동화책 등에서 영향을 받아 물 빠진 듯한 아날로그 색채가 진하게 묻어 있다.
그 중에서도 ‘러브 스토리’는 2부의 상징과도 같다. 다수의 로맨스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 속 연인들을 한데 모은 ‘러브 스토리’의 매력은 작품 속 캐릭터들의 포즈만으로 그들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점이다.
연인들 사이에서 홀로 서있는 남자가 눈에 띄었다.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Samantha)와 사랑에 빠진 영화 HER의 테오도르(Theodore)였다. 다른 커플처럼 나란히 서있지 않은 사랑의 주인공들도 있다. 바로 킹콩과 그에게 안겨 있는 앤(Ann)이다. 포즈 하나만으로 복잡미묘한 연인관계를 압축한 달튼. 캐릭터를 향한 그 애착의 깊이는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3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리고 노스탤지어’는 이 전시관의 핵심이다.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감독 웨스 앤더슨(Wes Anderson)과 맥스 달튼, 이 둘을 봉준호와 송강호의 관계로 생각하면 어떨까? 색감 천재에다 강박적 대칭의 대가로 알려진 웨스 앤더슨이다. 맥스 달튼은 섬세한 디테일로 독특하고도 까다로운 웨스 앤더슨의 스타일을 잘 구현해냈다.
좌측 벽에 있는 벨보이 제로를 눈 여겨 보자. 제로는 다른 캐릭터들과 달리 정면을 보고 있지 않다. 그의 눈은 사랑하는 여성(아가사)를 향하고 있다. 영화를 향한 맥스 달튼의 애정은 이렇게 하나하나 특성을 살려 캐릭터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준다.
디테일의 대가 맥스 달튼의 전시회에 걸맞게 전시장 화장실도 평범하지는 않다. 남자화장실 문에는 제로가, 여자화장실 문에는 아가사 캐릭터가 붙어있다. 풍성한 사운드 없이도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이곳 ‘맥스, 영화의 순간들’은 순간순간 곱씹어볼거리로 가득하다.
4부 ‘맥스의 고유한 세계’는 다른 테마관보다 색감이 다소 차분하다. 맥스 달튼의 인생관을 담았기 때문일까.
이 두 작품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각 그림 옆에는 맥스 달튼이 쓴 짧은 동화가 적혀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심 속 한 켠에서 아날로그 감성에 취해보자.
다양성을 포용하는 시대를 나타낸 작품도 있다. “꾸미지 않아도 우린 모두 판타스틱한 존재니까” 영화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의 대사이자 맥스 달튼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기도 하다.
다양성에 대해 ‘틀리다’가 아닌 ‘다르다’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린 모두 달라. 그래도 다르다는 건 환상적인 일이잖니?” 이 작품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유다. 빨강과 파랑이 섞이면 보라색이 나온다. 보라빛은 분홍색으로, 하늘색으로도 이어지는 복합적인 색상이다. 보라빛이 가득한 배경이 이 작품에 담긴 메시지와 잘 맞아떨어진다.
전시를 관람하며 몇 가지 궁금한 게 떠올라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주최측 마이아트뮤지엄에 물었다.
Q1. 전시를 5부로 분류한 기준은?
맥스 달튼이 인생에서 가장 몰입해 있던 것들을 생각하며 나눴다. 각각의 섹션에서 그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Q2. 맥스 달튼이 기생충이란 작품을 내놓은 이유는?
국내 첫 전시인만큼 한국 작품이 들어갔으면 했다. 마침 맥스 달튼도 영화 기생충에 관심이 많다고 해서 같이 작업할 수 있다.
Q3. 전시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맥스 달튼의 가치관과 취향을 서로 공유하며 각자의 즐거움을 찾아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개인의 영화적 취향을 알아볼 수 있는 MvTI(Movie Type Indicator)를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뭐든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평생 그걸 하는 게 행복인 것 같아요.”
맥스 달튼은 그가 좋아하는 영화와 책을 재해석하면서 행복을 느끼지 않았을까? 맥스 달튼이 ‘영화의 순간들’ 속에서 행복을 느꼈듯, 자신의 행복을 찾아 삶의 순간순간이 즐겁기를 바란다.
좋은기사 감사합니다-^^
맥스달튼 일러스트레이터를 좀 더 알 수 있게 되었네요.